우리가 역사왜곡 운운하는 동안 일본이나 서구인들은 기억과 기억 정치에 대해 상세히 연구하고 그 작동원리를 알고 그것을 실천하기에 이르렀다. 역사가 정적인 기록에 의존하는 만큼 기억은 살아있는 사람의 욕망과 의도에 의존한다. 이렇게 본다면 역사왜곡이란 결국 기억정치를 이르는 다른 말일 것이다. 비슷한 듯 다른 두 개념의 차이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역사왜곡에 대응할 것인지를 생각해본다.

최근 들어 동북아시아는 그야말로 역사전쟁에 돌입했다. 너무 심한 말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뒤통수를 맞나 싶더니, 일본의 근대사 왜곡으로 뺨까지 맞았다. 그런데 이런 역사왜곡은 단순히 있었던 사실을 왜곡하거나, 새로운 사료를 찾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집단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토대로 현재에서 재구성해 나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역사왜곡이 중국의 경제적, 정치적 부상이나 일본 우익의 대명사인 아베 정권의 등장과 더불어 심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과거 우리가 역사학자의 태두라고 할 수 있는 레오폴트 랑케 식의 역사인식, 역사를 “실제 있었던 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케케묵은 역사이론이 될 수밖에 없다. 잘 알다시피 역사는 “있었던 그대로” 인식할 수 없다. 왜냐하면 토마스 홉스가 말한 대로 인간은 자기의 욕심을 채우고 나면, 내일 먹을 것, 그리고 후세에 자식이 먹을 것까지 확보하려 이웃나라와 전쟁을 마다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쇼펜하우어가 본대로 인간은 “천성적으로 사악하며 부정직하고, 늘 자기 생각이 옳다고 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 존재를 니체는 그의 글 「삶에 대한 역사의 공과」에서 “(인간은) 하나를 행하기 위해 대부분의 것을 망각하며, 자신의 배후에 있는 것에 대해 불의를 행한다. 그가 아는 유일한 권리는 이제 생겨나야 할 것의 권리다.”라고 매우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기억과 역사

기억이라는 우리말은 서양어처럼 다양하게 분리되어 있지 않다. 당장 암기를 뜻하는 메모리로서의 기억과 무엇을 기억해내는 회상으로서의 기억, 의도하지 않게 떠오르는 아남네지스로서의 기억이 우리말에서는 생각하다, 떠올리다, 상기하다, 기억하다, 떠오르다란 말과 겹쳐져 있다. 역사도 기억하려는 주체의 감정이나 정체성, 의지 등에 의해 다양하게 굴절되므로 역사학자 카아는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관계라고 정의하였다. 그러나 필자의 관점으로는 이는 시원한 설명이 못된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역사는 객관적인, 다소 무심한,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기억을 출발점으로 삼지만 개인의 이해관계에 의해  언제나 재해석되고 재구성될 수 있는 주관적인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생각하고, 느끼고, 의지하는 인간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역사 보다는 기억이 인간학적 개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아베의 역사왜곡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왜곡이 아니라, 그가 속한 집단의(일본일 수도 있고, 일본 우익일 수도 있고, 외조부의 가계에 속한 사람일 수도 있다) 기억정치의 일환으로 보는 것이 맞다. 전후에 일본은 불행히도 (자기네들 측에선 다행히도) 핵심전범들 이외에는 처벌되지 않았다. 미국의 이해관계 때문에 그들은 미국에 굽신거리며 호시탐탐 시간을 기다려왔다. 이제 자기네들은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 정치적으로 중요한 나라가 됨으로써 그들이 원하는 과거(기억), 그들이 원하는 정체성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그런 재구성(!)에 침략은 그렇다치고라도, 731부대의 만행, 위안부 만행이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물론 ‘기억’의 이런 뻔뻔스런 행위에 역사의식이라는 양심이 가만히 있지는 않는다. 일본의 역사학회 및 역사교육자단체가 아베 정부의 위안부 문제 왜곡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강제 연행된 위안부의 존재는 이제까지 많은 사료와 연구에 의해 실증돼 왔다”며 “위안부가 된 여성은 성노예로서 필설로 다하기 어려운 폭력을 받았다”고 규정했다. 또 “일부 정치가와 언론이 사실로부터 눈을 돌리는 무책임한 태도를 계속 보인다면 일본이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국제적으로 홍보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런 양심의 소리는 권력을 가진 기억 정치가들에 의해 무참히 깨질 수밖에 없는 것이 역사의 현실이다. 왜냐하면 기억은 권력의 편이고 역사는 양심의 편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양심이 양보하고 만다.  만약에 인간이 천성적으로 정직하다면, 우리는 역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 연구란 오로지 진리만 찾아내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이라는, 특히 일본의 우익이라는 집단기억은 자신들에게 수치스럽거나 죄의식이 있을 만한 부분은 끊임없이 삭제하고 빼버리고, 미화하고 조작한다. 다른 한편 그들에게 유리한 업적이나 명예에 관한 것이라면 드러내고 포장하여 널리 알리고자 한다. 심지어 그들은 강제 징용시설까지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작용을 기억의 왜곡작용이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베의 역사관은 역사왜곡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집단기억에 가까운 것이다. 문제는 그가 속한 집단의 기억이 (일본의, 일본 내에서의) 역사에 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철학자 로크는 기억을 “마음의 힘” power of mind으로 이해했다. 역사적 현장이나 환경이 사라지면 마음의 힘인 (회상)기억도 약해지고, 마음의 힘이 약해지면 당연히 환경(역사)에 대한 의식도 약해진다. 이런 관계를 피에르 노라는 그가 편찬한 책  『기억의 장소』에서 기억과 역사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기억은 삶이고, 언제나 살아있는 집단에 의해 생겨나고 그런 이유로 영원히 진화되어 가며 (…) 끊임없이 왜곡되며, 활용되거나 조작되기 쉽고, 오랫동안 잠자고 있다가 갑자기 회복되기도 한다.” 노라에 따르면 역사는 분석과 비판적 담론을 요구하지만, 기억은 감정적이고 전논리적이다. 그러므로 역사가 보편적인 객관성을 지향하는 반면, 기억은 전이되거나 왜곡, 검열, 투사되기 쉽다.역사와 기억은 서로 비슷한 말이면서도 때로는 정반대가 될 수도 있다. 이것을 피에르 노라는 “기억의 터 lieux de memoire가 존재한다는 것은 기억의 환경 milieux de memoire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역설한다. 여기서 노라가 말하는 기억의 환경이라는 것은 바로 역사를 말한 것이다. 그렇다. 역사는 사라지지만 기록된다. 그 기록이 바로 기억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 즉 저장기억이 된다. 이런 대비를 모리스 알브박스(Maurice Halbwachs)는 전혀 다른 방식, 즉 역사와 기억의 차이로 설명한다. 그의 관심은 무엇이 살아 있는 인간들을 결속시키는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그에 대한 답으로 그는 가장 중요한 결속력의 수단이 바로 공동체의 정체성을 만들어주는 “집단기억”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알브박스에 의하면 정치적 환경의 변화가 기억의 부상과 소멸을 가져 올 수 있다. 그의 이론에 따라 우리는 (집단)기억과 역사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역사왜곡에 대한 대처방안

그러면 우리는 이런 역사왜곡에 대해 어떤 대응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먼저 기억과 역사가 결코 동의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미 70년대 이후에 서구나 일본의 기억정치는 이 두 가지 개념을 전적으로 구분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홀로코스트의 피해자들과 위안부 피해자들은 차츰 현실에서 사라진다. 심지어 독일에서도 유대인수용소 시설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전후세대는 전범의 후예로 기억되길 원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경험기억은 역사라는 순수기억에서 약화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기억정치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기억은 항상 현재 활성화되고 있는 현상이며, 영원한 현재에서 체험하고 있는 것들을 말한다. 그에 반해 역사는 과거의 재현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탈마법화를 지향하는 역사의 연구로는 마법화를 먹고 사는 기억정치를 따라잡을 수 없다. 근래의 기억정치를 살펴보면 역사가 역사에 대한 의미부여, 즉 기억행위와 집단의 정체성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지 않는 경우가 없는 것 같다. 대장금 같은 드라마는 민족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있어서 역사서적보다 더 큰 역할을 한다. 그렇게 본다면 역사와 기억이 단호히 대립한다고 보기도 그렇지만(독일의 경우 홀로코스트에 대한 인식을 보라) 그 둘을 전적으로 동일하게 보는 한국의 역사가나 정치가들은 이 문제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실천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필자는 역사와 기억을 상호간에 서로를 배제하지도, 억압하지도 않는 두 가지 양태로 보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우리나라에서 역사를 보는 눈이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즉 조선식민주의 사관, 또는 친일파들의 사관으로 기억행위가 이루어지지 않는지 살펴봐야 한다. 저장기억이라 부를 수 있는 역사가 잘못 해석되지는 않았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다음으로, 역사학의 광활한 지붕 아래 저장기억의 유물들과 주인 없는 유품들은 잘 보존되어 있는지 점검해보아야 한다. 지난 번 훈민정음 해례본에 대한 문화청의 접근방법은 안이하기 그지없다. 그런 유물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만드는 소재로서  그저 사극이나 뉴스거리 수준의 것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정체성을 보장해줄 수 있는 수준에서 기억정치에 호소해야 하지만 사실에 입각해야 한다. 역사에 대한 연구가 그저 역사 스페셜이나 드라마의 안주거리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데서 나쁜 영향을 받아 자라나는 세대가 역사와 허구를 혼동하지는 않는지 연구와 교육이 필요하다. 나아가 일본(의 역사)에 대한 연구와 일본의 기억정치를 시대별로 점검해 그들이 앞으로 어떤 역사왜곡을 준비하는지 미리 연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수치스런 역사나 상처에 대해 용기 있게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일 사람들은 나치가 (자기네들이) 유대인을 상대로 한 생체실험까지 모두 기록해두고 상영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상한 것은 왜 우리는 아직까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리얼한 영화나 드라마가 나오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왜 학교에서 읽는 책에 마치 이것이 수치스러운 일로 기록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일본이나 미국에 대한 기억정치에 있어서 우리는 한없이 나약한 모습이라는 점도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그들을 기억정치로 압박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역사왜곡은 현실이 될 것이다. 피해자들을 힘들게 할 기억일 수 있고 한민족의 정체성에 오점을 남길 수 있지만, 교육과 문화매체들은 그것을 의식적으로 떠올려서 그것을 재구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러한 문화적 기억정치에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오럴 히스토리와 스토리 개념이다. 사람들이 활성적으로 체험하는 인생사는 기억과 경험(역사)을 하나의 구조 속에서 연결하는데, 그 구조는 자아상으로 만들어져 자신과 집단의 삶을 규정하고 행위의 방향을 제시한다. 우리는 성웅 이순신이나 명량 같은 영화를 통해서 이런 일을 해왔다. 그러나 정확하고 개연성 있는 역사의 고증 없는 스토리는 오히려 혼란만 가중할 뿐이다. 독도문제, 위안부 피해 같은 경우는 당사자의 기억 속에서 아직 상당부분 활동하지 않은 채 숨겨져 있다. 우리의 주의력 밖에 있으며, 많은 부분 고통스러운 것이어서 찾기도 힘들 수 있다. 이런 기억이 방향을 설정하는 힘을 펼칠 수 있도록 이런 기억의 요소들은 최적화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의 역사들을 중요도에 따라 선별되고, 통로를 만들고 어떤 의미를 띤 스토리로 만들고 해석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그런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들의 경험을 조직하고 해석한다면 역사는 이러한 이야기들의 힘을 빌려 역사의식을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변학수 교수(사범대학 독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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