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에 미국의 워너브라더스가 만든 영화 「인터스텔라」는 국내에서 무려 천만 명 이상이 관람하는 초대박을 터뜨렸다. 약 5천만 명에 이르는 우리나라 인구와 영화를 잘 보지 않는 연령대 등을 감안하면 영화를 볼 수 있는 국민의 반 정도가 무려 2시간 49분에 걸쳐 도대체 왜 그런 이야기가 전개되는지 알기 어려운 이 SF 영화를 보았다는 것은, 이 분야를 연구하는 나로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놀라운 사건이었다.영화 「인터스텔라」는 「메멘토」, 「인썸니아」, 「배트맨」 시리즈 같은 인상적인 영화들을 만든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이 자신의 동생 조나단 놀란과 함께 각본을 쓰고 감독했으며 명문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의 물리학자 킵 쏜 교수가 제작에 직접 참여한 영화이다. 킵 쏜 교수는 미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부를 수 있는 상대성이론의 대가로서, 상대성이론을 공부하는 모든 물리학자들이 너무 두꺼워서 전화번호부라고도 부르는 교과서이자 백과사전인 책 「중력」의  저자이다. 킵 쏜은 1997년 SF 영화 「콘택트」를 통해 알게 된 영화 제작자들과 영화의 기본 개념을 세우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통해 영화화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후 스필버그의 제작사 드림웍스가 디즈니 영화사로 이적되면서 조나단 놀란이 형 크리스토퍼를 감독으로 끌어들여 파라마운트-워너브라더스에서 영화가 제작되기에 이르렀다. 각본을 쓴 조나단 놀란은 이 영화의 기초가 되는 물리학적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4년 동안 공부를 하였고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인 킵 쏜이 영화 제작의 첫 단계에서 마지막까지 참여하면서 과학적인 엄정함을 뒷받침하였으니 지금까지의 어떤 SF 영화보다 과학적인 내용이 정확하게 반영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전 지구가 극심한 식량 문제로 우주비행사인 주인공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근근이 옥수수를 재배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어려운 상황에서 우주에 인류가 이주할 만한 장소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SF 영화들은 극 영화적 줄거리가 있고 과학적인 내용은 곳곳에 보조적으로 사용되는 데 비해 영화 「인터스텔라」는 과학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천체물리학을 공부하는 내 눈에는 현대 물리학, 특히 상대성이론을 알려주고 보여주기 위해 이야기가 짜여진 것으로 보인다.인터스텔라(interstellar)는 성간(星間), 즉 별과 별 사이를 말한다. 예를 들어 성간물질은 별과 별 사이의 기체 등의 물질을 의미하며 성간여행(interstellar travel)은 한 별에서 다른 별까지의 여행을 말한다. 영화에서 인터스텔라는 성간여행, 즉 인류가 살 수 있는 별 근처로의 여행을 말하는 것일 게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은 남쪽 센타우루스 자리의 프록시마 센타우리라는 별이다. 4.2광년 떨어져 있는데 이 거리를 시속 약 900km로 나르는 제트기로 여행한다면 무려 500만년이 걸린다. 인류가 만든 가장 빠른 탈 것인 우주선으로 초속 11km로 여행한다고 해도 무려 12만년이 걸린다. 가장 가까운 별까지의 성간여행조차 현재 인류의 기술로는 넘사벽인 셈이다.현재까지 인류가 직접 가 본 가장 먼 곳은 36만km 떨어져 있는 달이고 (달까지의 여행도 너무나 오래 전이어서 이젠 믿지 못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인류가 만든 물체로서는 1977년 9월에 발사되어 아직도 어두운 우주공간을 여행하고 있는 보이저 1호 우주탐사선으로 현재 지구에서 약 200억km 떨어져 있지만 프록시마 센타우리까지의 거리의 약 500분의1 밖에 되지 않는다. 아직 인류는 성간여행을 할 기술력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인류가 이주할 만한 행성을 찾아 250만 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 은하로 탐사를 간다. 이 부분에서 우리 은하 내에서도 인류가 살 만한 행성이 많을 듯한데 굳이 멀고 먼 안드로메다로 가야 하는지 의문은 든다. 지난 20년간 천문학자들은 태양이 아닌 다른 별들을 돌고 있는 많은 외계행성들을 우리 은하 내에서 발견했다. 2015년 3월 27일 기준으로 약 1900여 개가 발견되었고 그 중 일부는 생명이 살만한 위치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생명이 발현되고 유지되는 데 진짜 필요한 조건들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단 하나의 경우인 지구와 비슷해야 할 것으로 짐작된다. 지구는 태양에서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아서 물이 액체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생명을 위해서는 물질과 에너지가 쉽게 교환되고 다양한 화학 반응이 일어나야 하는데 액체 상태의 물은 이에 가장 적합한 용매이다. 물론 지구상의 생명체를 이루는 세포는 액체 상태의 물을 가득 함유하고 있어서 기온이 너무 낮아져 물이 얼거나 기온이 너무 높아져 물이 끓어오르면 세포들이 파괴되기에 외계생명체도 우리와 비슷한 생물학적 구조를 가진다면 액체 상태의 물은 생명의 필수 조건일 가능성이 높다. 어떤 행성의 표면 온도는 모행성의 밝기와 모행성에서의 거리에 의해 결정되므로 밝은 별 주위에는 조금 멀리, 어두운 별 주위에는 조금 가까운 곳에 행성이 존재한다면 거주가능한(habitable) 행성이 된다. 게다가 행성의 질량이 너무 크면 목성이나 토성 같이 기체로 존재하지만 지구나 화성 정도의 질량이면 표면이 고체로 존재할 가능성이 커서 생명 존재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나도 가까운 영천의 보현산 천문대에서 크고 밝은 별 주위의 외계행성을 찾는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데 아직 거주가능한 행성을 찾지는 못하였지만 천문연구원이 남반구에 설치하는 3개의 1.6m 망원경으로 24시간 별의 밝기 변화를 관측하여 행성을 찾는 KMTNet 프로젝트가 수년 내 지구와 가장 비슷한 외계행성을 발견할 것으로 기대된다.여하튼 짧은 미래에 인류의 기술로 안드로메다 은하까지 여행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영화에서는 토성 근처에서 발견된 웜홀(wormhole)을 통해 손쉽게 안드로메다 은하로 여행한다. 웜홀은 우주의 지름길을 말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는 질량이 있으면 시공간이 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휜 시공간에서는 우주의 한 위치에서 다른 위치까지 정상적으로 여행하는 경로보다 훨씬 더 짧은 지름길 통로가 생길 수도 있다.예를 들어 한국에서 아르헨티나까지 지구 표면을 따라 여행하면 오래 걸리겠지만 벌레가 사과에 구멍을 내듯이 (영화 토탈 리콜에서처럼) 지구를 관통하는 터널을 뚫어 놓는다면 한국에서 아르헨티나까지 더 짧은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지름길을 웜홀이라 부른다. 물론 시공간은 저절로 휘어지지는 않으므로 원하는 형태로 웜홀을 만들려면 우주적인 규모의 질량이나 에너지를 배치하여 시공간을 휘게 해야 할 것이다. 영화에서는 이 웜홀이 누군가에 의해 이미 만들어져 있고 탐사대는 이를 이용해 안드로메다의 거주가능 행성 후보를 찾아가게 된다.그런데 이 행성은 거대 블랙홀에 너무 가까이 있어서 조석에 의한 파도가 너무 강해 인류가 살기에 부적합함을 알게 되는데 설상가상으로 이 행성은 블랙홀의 중력에 의해 시간이 지구에 비해 느리게 흐르기에 이 행성을 가까스로 탈출했을 때 지구 시간은 이미 23년이 흘러버렸다. 앞서 설명한 대로 질량에 의해 시공간이 휘게 되면 공간뿐 아니라 시간도 다르게 흐를 수 있다. 지구같이 중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즉 시공간이 약간 휜 곳에 비해 블랙홀 주변같이 시공간이 강하게 휜 곳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가게 된다. 블랙홀 가까이 위치한 행성에서 탐사팀은 정상적으로 1시간을 보냈는데 지구에 있는 시계로는 7년이 흘렀다.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블랙홀에 가까이 갈수록 그 차이는 심해진다. 중력이 있는 곳에서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현상은 사실 내비게이션이나 휴대폰에도 이미 포함되어 있다. 이 상대론적인 시간 느려짐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GPS를 이용한 위치 추정에 큰 오차가 생기게 되기 때문이다. 다만 블랙홀 근처에서는 그 정도가 극대화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시계로는 얼마 흐르지 않았는데 지구 시간으로 많은 시간이 흐르는 상황은 사실 미래로 시간여행을 했음을 의미한다. 블랙홀 근처에 머무르면 미래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블랙홀은 강한 중력에 의해 주변 물질, 주로 기체를 빨아들이는데 이 과정에서 기체들은 뜨거워지면서 빛을 내게 된다. 끌려 들어가는 기체들은 회전이 점점 증가하면서 원반 모양을 이루게 되는데 이를 부착원반(accretion disk)라 부른다. 나는 이 부착원반을 오랫동안 연구하면서 머릿속에 언제나 그 모습을 상상하였는데 킵 쏜 교수 연구팀은 이 부착원반의 모습이 블랙홀의 시공간에 의해 어떻게 휘어져 보이는 가를 정확하게 계산하여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고(그림 1) 그 자세한 내용을 논문으로 최근 발표하였다. 나만 상상으로 짐작하던 모습을 이젠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어 개인적으로 무척 반가웠지만 나만의 비밀이 사라진 것 같은 섭섭함도 없진 않았다.  블랙홀 근처 행성에서 탈출한 탐사팀은 이제 블랙홀로 직접 뛰어 들어 블랙홀 중심부, 시공간의 휨이 무한대로 증가하는 특이점(singularity)에 대한 정보를 알아낸 후 5차원으로 들어가게 되고 여기서 중력파를 과거의 지구로 보내 주인공의 딸이 수십 년 후 최후의 중력방정식을 풀 수 있도록 하여 지구를 위기에서 구하게 된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물리학자들이 아직도 완성하지 못한 궁극의 양자중력이론과 관련된 영화의 이 막바지 부분들은 초끈 이론 등을 통해 현대물리학에서 중력과 시공간에 대해 알아낸 지식들을 대략적으로 반영하고 있다.영화 「인터스텔라」는 지금부터 정확하게 100년 전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일반상대성 이론으로 알게 된 우주 시공간의 특별한 모습들을 과학자의 시각에서 보여준 놀라운 영화이다. 물론 정확하게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난해한 과학 영화를 천만 관객이 자발적으로 보았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더 놀랍고 이해하기 어렵긴 하지만 왠지 우리나라 과학에 희망이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박명구 교수 (자연대 천문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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