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지난 학기 나는 학보사에서 ‘기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었다.

6개월 전 나는 기사를 채우는 것에 급급했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내용, 더 필요한 내용을 담을지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적당히 기사의 모양을 갖출 정도로만 취재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민감한 사안은 피했고, 깊은 내용에 대한 공부는 겉핥기식으로 했다. 그렇게 기자가 사안에 대해 파악하지 못하니 나 스스로도 내 기사를 믿을 수 없었다. 기사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졌다. 그러다보니 취재를 하러 가는 것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다른 누군가의 책임도 아닌 내 책임이었다. 내가 쓰는 기사가 무서웠다. 내가 나의 기사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무서웠다. 신문이 나올 때마다 내가 취재를 대충한 것 때문에 누군가 피해를 보지 않을지 걱정됐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가 적었던 기사에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었다. 

그렇게 방학이 왔다. 신문사에서 미디어 교육을 받았다. 지역 신문사 기획취재팀장님이 오셔서 수업을 해주셨다. 수업이 진행됐고, 질문 시간이 됐다. 나는 질문했다. “누군가 나의 기사 때문에 피해를 받는 것이 무섭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나요?” 대답은 간단했다. “기자가 더 부지런하면 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띵’ 해졌다. 더 부지런해야 한다는 말은 취재할 때 사실 확인을 두 번, 세 번 해서 기사에 정확하게 실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자는 그렇게 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면 기사 때문에 혹시라도 피해를 입는 사람을 최소한으로 할 수 있다고 말하셨다. 기자님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머리를 관통하는 것 같았다. 문제를 해결하는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답을 알고 있었다. ‘피곤하다’라는 이유로 애써 답을 외면하려고 했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성적이 오른다. 공부를 안 하면 성적이 떨어진다.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공부를 잘하는 방법은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정해져있다. 실천의 차이다. 취재도 마찬가지다. 기자가 해야 하는 일을 얼마나 실천하느냐에 따라 기사의 질이 결정된다. 인터뷰 내용 중 의문이 생기는 것이 있으면 한 번 더 물어보면 된다. 어려운 내용은 공부를 하고 인터뷰하러 가면 된다. 발로 뛰면서 취재를 해야 한다. 알고 있는 것들을 실천으로 옮기기만 하면 된다.

교육을 받은 후 이번 학기부터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취재를 하고 있다. 마음가짐은 바뀌어도 여전히 실천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도 이제는 취재를 가는 것이 두렵지는 않다. 글이 무섭지는 않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지난 학기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다. 

만년 수습기자일 줄 알았던 내가 이제 기자유변을 쓰고 있다. 15학번 수습기자들도 들어왔다. 시간은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여유를 많이 주지는 않는다. 내가 경북대신문에서 직접 취재를 할 수 있는 시간도 올해가 마지막이다. 남은 시간을 ‘게으름’이 아닌 ‘실천’으로 꽉 채워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게으른 학보사 기자를 깨닫게 해주신 기자님에게 감사를 표한다. 

이슬기 기획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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