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우리나라의 운명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초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모든 이들이 칭찬하고 모든 이들이 선망한다. 그러나 디자인의 관점에서 보면 반드시 그렇게 동의하기 힘들다. 필자의 편향된 시각일 수 있지만 거대한 조직과 기술적 우위를 가진 삼성이 디자인이라는 명제 앞에서는 한없이 초라해 보인다. 애플과 삼성(삼성전자)의 직원 수는 비슷한 규모를 가지고 있지만 인터브랜드(www.interbrand.com)에서 발표한 2014년 베스트 글로벌 브랜드 100 순위에서는 애플이 1위인 반면에 삼성은 구글, 코카콜라, IBM,마이크로소프트, GE에 이어 7위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모든 랭킹 지수가 그러하듯이 신뢰성에 대한 비판과 다양한 이견이 존재하지만 방법론적으로는 ISO인증을 받은 점을 염두에 둔다면 어느 정도의 객관성은 확보했다고 할 수 있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브랜드의 가치가 랭킹순위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조사결과들을 보면 대중적 인식과 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브랜드들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각 개인에게는 절실함의 정도나 몰입의 정도가 차이나고 여기에는 선택과 타협이 적용될 수밖에 없다. 더 좋은 가치와 교환할 수 있는 내 손에 쥔 카드가 무엇인가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한정되고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타협이라는 결과를 낳게 되기 때문이다. 브랜드 가치의 선택은 앞서 이야기한 내 손에 쥔 재화의 크기에 비례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수 있으나 상당부분은 나의 눈높이와 관계 있다고 볼 수 있다. 가치를 알아보고 만족을 느끼는 것은 브랜드의 랭킹순위와는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기능적 완성도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면 브랜드는 이미지라고 하는 가치를 먹고 살기 때문이다. 애플과 삼성의 기계적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것이 비춰진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단순하지만 다양한 내용을 비교해봄으로써 그 사이에 존재하는 치밀한 전략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애플과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출발점에서부터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성은 1938년 대구시 중구 인교동의 작은 목조건물 ‘삼성상회’에서 시작하였는데 지금의 글로벌 기업이 될 운명을 알지 못한 채 지어진 별 3개의 상징을 가진 흔하디흔한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대목에서 삼성브랜드의 출발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에게는 익숙하고 편한 이름이지만 ‘삼성’이 세계 각국에서 어떻게 읽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애플’은 삼성보다 더 흔하디흔한 명사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부터 차이점은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애플(Apple)은 영어권에서 매우 쉽고 친숙한 단어이다. 게다가 알파벳의 맨 처음 글자 ‘A’를 사용하는 까닭에 검색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우선순위를 가진다. 중국 최대의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Alibaba) 역시 ‘A’로 시작하는 단어를 브랜드네임으로 정한 마윈(馬雲)회장의 탁월한 선택에 탄복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누구나 쉽고 빠르게 인지할 수 있는 명확한 의미와 이미지 그리고 상징을 가진 단어를 선택함으로써 많은 이점을 태초부터 안고 출발했다고 보면, 다르게 오해하거나 오류가 생길 위험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삼성은 이미 한 수 뒤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삼성은 애니콜, 갤럭시 등의 브랜드 런칭을 통한 만회를 시도하고 있지만 오히려 전체적인 브랜드 네이밍을 혼용하게 됨으로써 복잡한 모델명으로 기억하기 싫은 현대인의 감성에 어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애플도 초기에는 매킨토시 등에서 다양한 기계적 브랜드명을 사용했으나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것처럼 ‘i’를 통한 집합적 결속력을 과시하고 있다. 단순할수록 인지하기 쉽고 인지하기 쉬울수록 기억하기 쉬우며 기억하기 쉬울수록 행동에 나서게 하기가 쉬워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출발선에서부터 삼성의 어려움을 엿볼 수 있다.

인류의 탄생을 다루는 창세기에서 이브를 유혹한 뱀이 사용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바로 애플이다. 인류 태초의 신화적 세계에 존재한 유혹의 상징이 사과인 것이다. 물론 유혹을 이기지 못한 대가는 남성의 목에 아담스 애플(Adam’s apple)을 남길 정도로 혹독한(?) 것이었지만 그 덕에 오히려 인간의 몸에 남은 과일이름이 되었으니 ‘애플사’의 입장에서는 그 스토리텔링의 존재로 인해 살아 숨 쉬는 인류의 절반에게 브랜드명을 남기는 성과를 누리고 있는 것이며 인간이 신의 보호 아래 유토피아에서 영원히 살 수 있었지만 애플이라는 매개를 통해 신의 세계가 아니라 인간 중심의 세계로 내려오게 되는 계기를 제공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하여 창세기의 애플, 아이작 뉴튼의 애플, 스티브 잡스의 애플을 인류의 삶을 변화시킨 터닝포인트로서 제시하곤 한다.

기계적으로 매우 어렵고 지루하며 딱딱한 것이라 여겼던 컴퓨터를 대중의 품에 안기고자 한 전략의 구사는 매우 현명한 판단이었다. IBM(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은 듣기만 하여도 어렵고 접근하기 쉽지 않은 존재로 느껴지지 않는가! 다양한 계층의 유저를 확보한다는 마케팅 차원에서 보면 친근한 사과를 매개로 한다는 것은 더없이 훌륭한 전략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직장에서만 남성들이 사용하던 전유물처럼 인식되고 있던 컴퓨터를 가정주부와 어린아이들이 부담 없이 접근하고 사용하게 함으로써 대중적 가치를 가지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애플’이라는 친숙함이 기여하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더군다나 사과라는 과일은 상큼함이라고 하는 아주 매력적인 맛을 통해 오감을 자극하는 공감각적인 묘한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가!

삼성은 별 3개를 상징적으로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어 문화권에서만 해독 가능한 일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미국의 세계패권에 따른 결과이긴 하지만 애플은 영어 문화적 범주에서 전 세계적으로 동일한 메시지와 이미지를 갖는다. 즉 심벌을 보는 순간 애플로 읽을 수밖에 없는 효율적인 의미인지 시스템을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은 애초의 별 3개를 없애고 우주를 상징하는 갤럭시를 상징화하여 심벌에 도입함으로써 오히려 태생의 근원적 뿌리를 들어내고 일상적인 타원을 들어앉힌 참담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삼성에서 만든 대부분의 제품에는 삼성의 심벌이 자리하고 있지만 타원형상의 완성된 조합형이 아니라 로고타입만 따로 분리하여 적용하고 있음을 보면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의 정석을 비켜가는 매우 안타까운 상황에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브랜드라고 하는 것이 하나의 시각적 초점을 유지한 상징과 지속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만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분산된 혼동을 유발하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변화는 있지만 변함이 없어야 하는 것이 기업의 브랜드 가치이기 때문이다.

소위 조형적 완성도에 못지않게 전달력이라고 하는 주제에 있어서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반적 도형과 평이한 서체의 결합을 통해 메시지의 단순화에는 삼성이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있어서 정확한 인지적 정보도 중요하지만 감성적 어필이 더 매력적인 요소라는 점을 간과한 결과로 보인다. 애플사의 심벌이 그냥 사과이었다면 별로 대수롭지 않은 조형요소로 치부되고 말았겠지만 한 입 베어 먹은 사과의 모양을 가짐으로써 가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적절하게 상징하게 되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제품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상징으로서의 가치를 볼 때 삼성은 논리적인 측면이 강조되어 있고 애플은 감성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단순한 기계를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의 가치를 구입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도 심벌의 적용성에 대한 가치기준으로 고려해 보면 삼성의 심벌은 밋밋하고 경직되어 있으며 사물과의 조화도 변변치 못하다. 주변의 삼성 제품들을 관찰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애플은 매우 적절한 균형과 변화를 동반한 심벌을 가지고 제품과의 조화를 이루는 놀라운 묘수들을 두고 있다. 기계와 상징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너지를 갖게 하는 효과를 이룩해 내고 있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의 측면에서도 애플이 이기고 있다고 보여 진다.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식의 단편적인 표현이나 상징은 불만족스러운 성과를 낼 수밖에 없다. 뉴욕시티(New York City)는 빅 애플(Big Apple)이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닉네임은 세계의 경제, 문화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뉴욕이 가지는 상징적 힘을 애플이라고 하는 상징을 통하여 전 세계와 공유하게 하는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되고 있다. 삼성은 우리나라에서는 성공적인 기업이미지와 브랜드 가치를 확실하게 가지게 되었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을 여유로운 공유가 없는 것이다. 애플은 이미 인류의 역사와 같이한 수많은 스토리들에 등장하여 사람들과 자연스러운 친밀감을 형성해가고 있는 소재적 가치가 충분함으로써 이미 브랜드로서의 친숙함이라고 하는 이점을 안고 있다. 백설 공주를 잠들게 한 것이 사과이지만 그 사과를 매개로 오히려 행복한 결실을 맺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백설 공주가 사랑한 사과’라는 사과 브랜드가 있다. 얼핏 보면 무슨 황당한 브랜드인가 할 수 있겠지만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과마저 사랑하게 되었다면 그 사과의 품질은 두말 할 나위가 없지 않은가. 스토리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일곱 군데의 사과 과수원을 선택하여 일곱 난장이로 등장시킴으로써 스토리를 완성하고 있다. 그냥 맛있는 사과라는 타이틀보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스토리가 존재함으로써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브랜드가 된 것이다. 이처럼 기계를 생산하는 브랜드일지라도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스토리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점을 비추어 볼 때 삼성은 스토리텔링에 너무 무관심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사소한 작은 차이가 돌이킬 수 없는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 기업의 초기단계에서부터 미래를 예측하고 그에 따르는 신중하고 섬세한 전략이 필요한 이유이다.

요즘에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보다는 기계와 대화를 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아 보인다. 오히려 그럴수록 기계적 가치가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 감성적 가치에 무게를 두어야함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여전히 훌륭한 기계를 만들고 있다. 더 이상의 성능 좋고 훌륭하기만 한 기계가 우리에게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조철희 교수

(예술대 시각정보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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