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내 꿈은 작가였다. ‘취미는 독서’라는 말이 고지식하고 가식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땐 정말 그랬다. 나는 책이 좋았다. 책장을 넘겨 내가 살아가고 있는 공간과 시대를 벗어난다는 것은, 좁고 작은 동네에 살던 초등학생에겐 꽤나 매혹적인 일이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다보니 새로운 즐거움도 발견할 수 있었다. 흰 종이를 내 글씨로 빽빽이 채워 넣는 것은, 지면에 눌러 붙어 있던 활자들을 하나씩 눈으로 삼키는 것만큼 재밌었다. 이런저런 눈요기를 한 덕분인지 글을 쓰는 게 어렵진 않았다. 여태 봐왔던 것을 비슷하게 흉내내는 건 간단했다. 학교에서 받아오는 상장은 내가 글쓰기에 재능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껍데기뿐인 얄팍한 실력을 포장해주는 상장 몇 장과 칭찬은 근거 없는 자신감을 만들어냈다. 누군가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물으면 나는 망설임 없이 ‘작가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무의식중에 꺼냈던 대답은 되풀이되며 장래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을 확고하게 만들었다. 앞으로도 계속, 이대로 쭉 나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보던 세상이 너무나도 좁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그냥 종이에 불과했던 상장이 간절해졌다. 탄탄대로까진 아니더라도 내가 걷고 있는 길이 틀리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스스로의 재능을 의심하는 생각들은 뇌리에 박혀 떠나질 않았다. 다른 방향은 생각도 해보지 않았기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나를 덮쳐왔다. 그러던 중 우연히 본 다큐멘터리는 ‘작가’를 ‘기자’로 만들었다. 하지만 목표가 바뀌었다고 글쓰기 실력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었다. 글 쓰는 게 두려웠다. 압박감에 시달리던 나는 백지 울렁증에 걸렸다. 열심히 발버둥쳤지만 내 병은 호전되지 않았다. 대학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텅 빈 공책을 보고 있으면 이 공간을 채우지 못하는 내 빈 머리가 안쓰러웠다. 뭐라도 적어야 할 것 같은데 대뜸 겁부터 났다. 차마 글을 쓰진 못하고, 몇 문장들을 꿰매는 과정을 계속 반복했다. 이 고질병이 언제쯤이면 끝날지 생각하다 친하게 지내던 선배로부터 일기를 써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효과가 있을지 궁금했지만 공책부터 샀다. 새 공책과 볼펜 끝이 맞닿는 순간. 그리고 몇 획이 지나간 후 떨어지기까지, 처음에는 어색하고 부담스럽던 움직임이 계속되자 익숙해졌다.
일기라 해서 항상 하루를 되돌아보는 성찰의 글을 쓴 것은 아니었다. 나에 대한 칭찬도 있었고, 누군가를 향한 불만도 담긴 솔직한 글들이었다. 그러면서 나의 병세는 점점 나아졌다. 고질병이 완치될 수는 없었지만 생각의 변화를 불러왔다. 적어도 종이가 더 이상 나에게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은 확실해졌다. 주위를 둘러보면 생각보다 글쓰기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다. 아직까지도 내 생각을 남에게 글로 전달하는 것이 꺼려진다면, 이는 막연한 공포감과 무기력함 또는 오만함이 빚어낸 결과일 것이다. 조금만 더 가벼운 마음으로, 그리고 조금만 더 깊은 생각과 함께 짧은 글부터 시작해라. 자신이 만든 한계와 기대를 부순다면 훨씬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이승연 취재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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