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지난 24일부터 29일까지 박남희 교수의 정년퇴임을 기념하는 회고전이 열렸다. 회고전은 박 교수의 작품인생을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여기저기서 찾아오는 손님과 취재진을 맞이하느라 분주했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정년퇴임까지 쉼 없이 달려온 그녀의 미술 인생을 만나봤다●

Q. 본교에 33년 동안 재직하셨다. 가장 보람있었던 일은 무엇인가?
A. 제자들의 성장이 가장 큰 보람이었다. 나의 수업을 듣고 논문지도를 받아 대구는 물론 전국에 흩어진 대학의 교수가 된 상당수의 제자들, 국공립미술관의 학예사, 문화재단 등 각종 미술관련 기관의 기획자, 한국미술의 무대에서 인기작가가 되어 흰 캔버스도 예약되는 미술가 제자들이 흐뭇하다. 이번 전시에도 미술현장의 후배미술가, 제자 미술가 66명이 출품했다.

Q. 미술, 미술교육, 미술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하셨다. 힘들지는 않았는가?
A. ‘물론 매우 어렵다. 서울서 미술사학자들이 모이면 예술세계보다는 학문에 몰두함이 적절하다고 충고를 한다. 학문의 논리적 세계와 예술의 감성세계를 병행하기가 매우 어렵지만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밖에 없다. 학문과 예술 사이에서 고뇌하고 방황하면서 학문은 발견이고 예술은 창조임을 인식한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도 학문과 예술 사이에서 고심해보지만, 여전히 두 마리의 토끼를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

Q. 11세라는 어린 나이에 개인전을 가질 정도로 일찍부터 미술활동을 했다. 계기가 있다면?
A. 초등학교 2학년 미술시간에 그린 돼지 그림이 유네스코아동미술전에서 특선을 하면서부터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그림일기와 그림을 좋아했던 것이 미술가에 길을 들어서게 해줬다. 어릴 적에 본 동생의 탄생과 성장과정이 작품 안에서 약동하는 인간, 생명력이 넘치는 인간으로 표현된 것 같다.

Q. 본교 미술관 건립에 큰 노력을 하셨다고 들었다. 미술관 건립에 힘쓰셨던 이유는 무엇인가?
A. 본교에 처음 임용됐던 1982년의 학내 분위기는 문화와 여성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았고, 보수적이었다. 다른 분야의 학문에 비하여 미술에 대하여 무지하면서 그것에 대한 자성과 부끄럼이 없는 분위기에 몹시 절망했다. 33년간 본교에 재직하며 문화의 가치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조직에 서 예술에 대한 인식과 예술대학의 위상을 높이고 싶었다.
처음 임용됐을 때, 사범대학에 계시던 과거 은사님께서 내가 예술대학 교수가 되어서 마음이 아프다고 하셨다. 의과대학이나 법과대학 교수이면 흐뭇할 터인데, 예술대학 교수여서 안쓰럽다는 말씀이셨다. 이런 학내 분위기가 나를 예술전도사, 양성 평등의 전도사가 되도록 자극했다. 지금은 감사하게 생각한다. 대학 내의 낮은 문화의식과 문화에 대한 관심은 지역사회로 그대로 연결된다. 대학의 인재들이 결국 이 사회의 리더가 되기 때문에 리더의 문화의식이 매우 중요하다. 상업주의를 초월한 순수예술은 정신적 가치의 소산물로서 미래를 예측하고 시대를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본교 미술관은 학내 구성원, 대구 북구 주민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킨다. 북문의 위치는 대중적 접근성이 좋은 입지이다. 미술관의 건립은 학내구성원들은 물론, 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예술을 향수하고 감상하여, 심미안을 고양하고 삶의 질은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20세기의 화두는 문화민주주의였으나, 21세기는 문화복지주의로 가기 때문이다. 본교 미술관은 21세기에 더욱 사회 속의 미술관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Q. 대구문화예술화관에서 진행됐던 전시회 이름이 ‘미술교육의 미술’이던데, 앞으로 미술 교육이 나아가야할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미술교육은 인간의 존엄성을 중요시한 학문이다. 개인의 독특한 개성과 정체성을 찾아주고, 그것을 표현하게 하는 것이 미술교육자의 역할이고 미술교육이다.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미술을 좋아하고 즐겁게 놀이 하듯 가까이 가서 향유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미술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쏟아내고 표현하는 도구로서 미술의 가능성을 찾는 것이다.

Q.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다. 학생들에게 어떤 교수님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A. 주어진 환경에서 항상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긍정적인 태도로 24시간을 48시간으로 활용하며, 성실하게 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또한 예술전도사, 문화전사(戰士)로서 최선을 다한 여성교수로 기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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