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개가 계단을 오를 줄 아는 걸 보고 신기했던 적이 있다. 그 전까지는 개가 무서워 계단 위로 재빨리 도망치면 개들은 밑에서 올려다보며 어떻게 하지 못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곤 했다. 그런데 계단을 오를 수 있는 개들도 있었던 것이다. 마치 아무런 장애물이 없다는 양 껑충껑충 뛰어다녔다. 어리숙하게 계단을 넘을 수 있는 개들도 있다. 그런 개들이 가장 흥미로운 대상이다. 그들은 계단 앞에서 멈칫한다. 그리고서 계단 턱에 몇 번 걸리는가 싶더니 이내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마치 어렸을 적 우리들의 모습도 그랬을 것이다. 몸집만한 계단을 팔과 다리를 이용해 낑낑대며 오르기도 하고, 그러다 키가 자라 올바른 자세로 오를 수 있을 정도가 되어도 한 번 씩 발을 헛디뎌 굴러 떨어지기도 하고 말이다. 두 발 자전거가 그렇게도 무서웠는데 어른이 된 지금에야 어느 정도 조종 가능한 나조차도 그런 과정을 거쳤다니 재밌기도 하고 믿을 수 없기도 하다.

수습교육을 마치고 드디어 개강에 맞추어 개강호를 발행하면서 본격적인 기사 작성에 뛰어들게 됐다. 나름대로 방학동안 열심히 기획한 주제를 갖고 어리숙하지만 여러 곳을 누비며 취재도 했다. 일주일의 취재 결과를 모아 글로 정리하고, 정신 차릴 새 없이 개강호가 발행됐다. 시간은 참 빨라서 눈 깜짝할 새 1549호도, 1550호도 발행됐다. 이것으로 2015년 들어 3번의 신문 발행을 거쳤다. 그리고 지금 내가 쓴 글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면 모두 하나의 공통점을 가진다. 바로 내 역할이 없다는 점이다. 선배가 내게 조언해주시기도 했던 점이다. 내 글을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앵무새 같다. 전문적 견해를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주는데 그칠 때가 많다. 사실 고해성사하듯 말하자면 그런 점을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고쳐지지 않는 것은 용기의 문제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많이 보고 살아왔던 성격상 나의 의견이 개입되었을 때 독자의 판단이 부정적일까 봐 지레 겁을 내는 것이다. 여러 사람에게 이런 고민을 상담한 적이 있다. 신기하게도 돌아오는 답변은 하나다. 기자가 열심히 공부해서 내용을 명확히 설명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된다. 마치 시험 시간이 두려운 이유는 공부하지 않은 내용이 있기 때문이라는 점과도 같다.

그 때문에 기사를 맡게 되면 그 내용에 대한 지식을 익히는 것을 우선적으로 한다. 하지만 아직은 내 의견이 드러나게 재구성하는 데 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그러나 용기가 있어야 성장이 있다. 모든 것의 처음을 떠올려보면 지금은 아무렇지 않은 것들도 언제나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더 나은 기사를 내보일 수 있기 위해서는 계단 턱과도 같은 그 ‘겁’의 문을 열고 극복해내야 할 것이다. 내가 아는 선배는 더 많은 경험을 위해 그 문을 열고 이번에 해외로 떠났다. 그 순간의 용기를 낸다면, 우리는 더 값진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나도 계속해서 일단 그 문을 두드릴 것이다. 언젠가 그 문을 박차고 기자의 재구성이 돋보이는 멋진 기사를 써낼 수 있기를 바라며. 기사에 벌벌 떠는 기자가 되는 게 아니라 기자의 기사를 쓰기 바라며.

저작권자 © 경북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