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정의 든든한 아버지였고, 누구보다 믿음직한 동료였던 공장 직원이 한 명 있었어. 저녁 9시 어둑어둑할 즈음 그는 아무도 없는 공장으로 가 휘발유 한 통을 뒤집어썼지. 이어서 그는 몸에 불을 붙였어. 남은 것은 초라한 유서 한 장, 그리고 타버린 시체 한 구.

김재기 씨는 말 수가 적고 잘 웃지도 않는 평범한 공장 직원이었어. 하지만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는 직원들을 챙겼고, 항상 회사 일에 앞장서 동료들을 리드했지. 그래서 김씨가 그렇게 노조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는지도 몰라. 

지난해 12월 말 금호타이어는 정규직의 업무를 비정규직에 맡기는 도급화를 추진했어. 도급화를 한다고 해고되거나 정규직이 비정규직이 되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회사 생활이 지옥같이 변하겠지.

도급화가 되면 기존 정규직은 다른 일을 해야 돼. 새로운 일을 배워야 하는 거지. 과연 10년, 20년씩 한 가지 일만을 해온 사람이 다른 일을 시킨다고 바로 적응할 수 있을까? 주변에서도 일을 못 한다고 차갑게 보겠지. 설상가상 월급도 줄어들지. 직무를 끊임없이 옮겨야 할지도 몰라. 회사에서는 직원이 손가락 까딱하면 움직이는 체스말 정도로 보이나 봐.  

김 씨의 업무 역시 도급화 대상이 되었어, 회사로부터 다른 일을 하라는 통보를 받았지. 이런 부당함에 가만있을 김 씨가 아니지. 김 씨는 법원에 도급화 중단 가처분 신청을 했어. 그리고 김 씨는 회사에 “법원에 이야기했으니 도급화 문제를 놓고 대화를 하자”고 요청했어. 그러나 회사는 묵묵부답 인채 도급화를 강행할 기세였어. 김씨는 도급화를 막아야만 했어. 양측 노사 대표가 도급화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가 열렸지. 하지만 그 사무실을 채운 것은 노조 대표뿐. 회사 측 사람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고 논의는 취소됐어. 회사는 이미 도급업체를 선정하고 정규직을 대신할 비정규직 직원들 또한 채용한 상태였어. 게임 끝난 거지. 이후 김씨는 주유소에 들러 휘발유 한 통을 사게 돼.

그런데 제일 웃긴 게 뭔 줄 알아? 세상은 노동자를 대표해서 부당한 회사와 싸운 이 사내의 이야기에 귀 귀울여 주지 않았어. 주요 신문과 방송도 김씨의 분신을 다루지 않거나 고작 단신 기사로 취급했어. 또한, 일부 언론은 김씨가 부부 싸움 때문에 분신한 듯 보도했지. 하지만 이를 계기로 노조는 더 분노했고 부분파업을 벌였어. 이 때문인지 회사는 예정됐던 운반직 48개 직무의 도급화를 철회하고 김 씨의 유족에게 지원을 약속했어. 김 씨는 목숨과 맞바꿔 한 노동단체를 지킨 셈이지. 한 단체가 변화하려면 몇 명이 죽어야 하는 걸까. 또, 한 사회가 바뀌려면 몇 명이 죽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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