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썼기 때문에 여러 번 읽었을 텐데도 그토록 즐거울 수가. 기자에게 소설의 줄거리를 설명하는 저자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대학에서 국어학을 연구하는 교수, 은사님인 김춘수 시인에게 추천을 받은 시인, 60년 만에 처음으로 장편소설을 출간한 신예작가 등 어느 분야에서든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상규 교수를 만나봤다●

Q. 첫 장편소설 '포산 들꽃'을 출간했다. 소감이 어떤가?젊은 시절에 작가의 꿈을 꾼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러했다. 지금은 교수가 되어 논리를 따지는 학문의 길에 있지만 언제나 내면에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 것은 국립국어원장을 마치고 난 후의 휴식 시간이 결정적 계기였다.

포산 들꽃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팩션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포산은 현 달성군 현풍의 고 지명이다. 왜군이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는데 있어 현풍은 중요한 길목이었다. 작품은 임진왜란에 현풍에서 발견된 진주 하씨의 편지글과 고대 정경운 선생의 「고대일기」를 팩트로 구상됐다.

임진왜란에 늘 관심이 있었는데 이순신, 권율 같은 장군들만 주인공이 되더라. 사대부가들도 많은 노력을 했지만 민초들이 혼연일체가 되어서 몸으로 왜군을 막았다. 우리나라 역사가 실증주의라고 하는데 실증주의적 역사는 기록에서만 찾을 수 있다. 기록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는 민초들은 역사에서 소외된다. 나는 문학을 통해 지도자 중심에서 소외된 자들 중심으로 이끌려고 했다. 그래서 달래라는 여주인공과 화살, 칼 등의 전쟁물자들을 공급하는 사람들이 주변 인물로 등장한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누가 참여하려 했겠나.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이 전사로서 고귀한 피를 뿌린 것이다.

Q. 운문을 다루는 시인이 산문에 도전하는 게 어려울 같은데 실제로 어떤 어려움이 있나?시하고 소설은 아주 다르다. 소설은 인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원고를 쓰는 자체도 노동이고 시도 물론 어렵지만 소설은 원고 양이 많아 시간도 오래 걸리고 몸을 움직이는 노동 이상이다. 「혼불」을 쓴 최명희 작가 같은 경우는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밖에 안 나가고 방에만 틀어박혀 담배 몇 보루와 소주를 가져다 놓으면서 글을 썼다고 하던데 이해가 되더라. 글을 쓰다가 밖의 사람들을 만나면 글이 끊겨 버린다. 장편을 쓰는 사람들은 작업실에서 칩거한다고 할까. 그런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Q. 2012년에 국어방언학, 한글 고문서 등의 연구 성과와 함께 국립국어원장 등을 지내며 학계에 기여한 점을 들어 언어과학회의 '봉운(鳳雲)학술상’ 수상자로 선정될 정도 국어학자로서 연구에 깊게 몰두했다. 국어학과 다른 국어문학의 매력은 무엇인가?국어학은 일종의 과학이다. 하지만 연구대상으로서 국어학은 한계가 있지 않은가. 실증주의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학이나 예술은 그것을 뛰어넘기 때문에 논리적인 학문보다는 논리 너머에 더 리얼리티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국어학자로서 탁월한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국립국어원장도 했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학문적 역량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한다. 남은 것은 후배들의 몫이다. 이제는 자유롭게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Q. 작년 대구문학관 건립에 있어서도 자료 기증 등으로 힘을 썼다. 이외에도 다른 활동을 하고 있거나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는가?젊은 시절부터 이상화 시인 고택 보존 운동을 주도했다. 문화운동으로서 성공한 사례 중의 하나가 이상화 시인 고택 보존 운동이고 최근에는 애산 이인 선생 기념 사업회 대표를 맡았다. 애산 이인 선생은 조선어학회 33인 중 한사람으로, 초대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을 지낸 분인데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감옥에서 형도 살았던 분이다. 대구 출신으로 아주 훌륭한 분인데 대구 사람들 중 아무도 모른다.

다른 교수들은 나의 이러한 행보들에 도리어 손가락질 하는데 내 생각에 교수는 학문만 해서는 안 되고 실천적 행동이 필요하다. 나는 한 지식인으로서 이 사회를 위해서 실천해야 할 일이 뭔가 고민한다. 남은 기간 동안 애산 선생 추모 사업을 성공적으로 하고 싶다. 이 일은 곧 대구의 정체성을 찾는 일인데 대구 출신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할 근거를 찾는 문화 운동이다.

Q. 앞으로 어떤 모습의 국어학자와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지?국어학자로 대학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이제 3년 남았다. 학자는 대학을 은퇴하면서 같이 졸업할 것이고, 사회에 나가서는 작가로서, 문화 활동가로서 대구 경북의 문화 발전을 위해서 일하고 싶다. 대구 경북 출신 젊은이들에게 꿈과 자긍심을 키워줄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일에라도 적극적으로 뛸 것이다.

글, 사진: 이정아 기자/lja13@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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