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제요, 추석 안날 다 늦은 저녁답에 마누라캉 도꾸이(とくい)집에 냉면 묵으러 갔거등요. 뭐라꼬요, 허구헌날 다 나뚜고 왜 해필 그 바쁜 명절 안날에 갔나 그 말이제요. 와 그런가 카믄 그날이 올해 마지막으로 문 여는 날이기 때문잉기라요. 그 집은 해마다 사월 초하루에 문 열어 추석 안날에 시마이 (仕舞い) 한다 아입니까. 한겨울엔 메밀을 구할 수 없어서 그렇다 카데예. 글치만 참말로 돌았지예. 시내 한복판에 집세가 을매나 비싼데 근 반 년을 문 닫는다 카이. 놀라븐 게 그 집 일하는 아주무이들이 및 십년 동안 안 바끼더라 그 깁니다. 자기들이 제비도 아인데 우째 봄 되믄 고대로 돌아오노 그 말입니더.

   그 집을 첨에 간 기 사십 년 전입니더. 돌아가신 어무이 손 잡고 갔지예. 좁은 골목에 개와집 따문따문 있던 그 동네에 이젠 수십 층 빌딩이 질비하고 노래방, 안마시술소 네온이 빈쩍빈쩍합니더. 그새 도꾸이들도 다 바끼겠지예. 카지만 가실 겨울 내내 문 닫는 거 하고 소 무릎삐 고아낸 구시한 국물 맛은 고대로인 거 같데요. 참말로 귀한 일 아입니꺼. 세상 이키 정신없이 바끼도 빈치 않는 기 있다는 거. 

  동네 문구점 가서 붓펜, 플러스펜, 사인펜, 네임펜, 형광펜 오만 알록달록한 필기구 한 귀티이에 찡긴 모나미153볼펜 봤지예. 검등 치마 흰 적삼 입은 원불교 정녀 겉지 않십디껴? 지금이 어느 시절인데 아직도 죽자고 1000자 원고지만 고집하는 어떤 글쟁이나 비링내 없는 백김치를 젤로 아는 우리 마누라의 미각도 다 같은 일족이겠지예. 천년만년 보랏빛 흰빛으로만 꽃 피우는 도라지 겉은 것도 물론 끼와줘야 하겠고요. 맞심더, 그기 바로 갱상도 기질이지예. 

  덤덤하고 슴슴한 메밀 맛으로 달고 시고 매운 맛에 길들여진 샛바닥 매매 씻고 그 집의 올해, 마지막 손님으로 셈 치르고 나오다보이 빌박에 큰 조우 한 장 붙어있데예.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추석 잘 쇠시고 내년에 뵙겠습니다” 이쿠, 그 삐뚤삐뚤한 필치의 인사말이 좁쌀 겉은 잇속 쫒는 오늘 우리들의 안부를 물어왔다 그 말 아입니꺼. 

  맞심더, 부끄럽지예. 부끄럽고 말고예. 안 글찮십니껴?

장옥관 시인

1955년 경북 선산 출생. 1987년《세계의문학》으로 등단. 시집 『황금 연못』, 『그 겨울 나는 북벽에서 살았다』 등을 펴냄. 김달진문학상과 노작문학상 등을 수상. 현 계명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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