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 ‘혀 아래 도끼 들었다’ 등 예부터 말의 힘을 전하는 속담들이 많이 있어왔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소피스트들을 일찍이 언어의 힘을 알고 언어를 잘 구사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했다. 현대사회에서는 언론기관이 소피스트처럼 언어의 힘을 파악하고 이용한다. 하나의 진실도 언론이 전하는 언어, 단어 하나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둔갑된다. 전쟁을 다룬 보도가 대표적이다. 한 국가에게는 ‘급습’이 상대 국가에게는 ‘침략’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언어에 대해 순진하게 접근한다. 단어를 단순히 사물, 관념을 가리키는 개념쯤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단어가 어떤 사물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여주는 것만큼 그 사물을 상대에게 표현해 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어는 단순한 지시 그 이상으로 복잡 미묘하다. 추상적이며 부정확하고 때로는 감정을 담고 전달하기도 한다. 그래서 같은 사물을 말하더라도 사용하는 단어에 따라 전달하는 의미와 느낌이 달라진다.  

2007년 충남 태안반도 앞 바다에서 삼성중공업 크레인 선박이 홍콩 소속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에 충돌해 원유 1만 9백 톤의 기름이 유출됐다. 당시 한국 언론들은 이 사고를 두고 일제히 ‘태안반도 기름유출 사고’라는 표제로 보도했다. ‘삼성 중공업 기름유출 사고’라는 보도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분명 두 말 모두 같은 사건을 가리키고 있으며 사실이다. 하지만 두 명칭은 수용자에게 확연하게 다른 개념, 이미지를 전해준다. ‘태안반도’는 기름유출이 일어난 장소를 가리키고 ‘삼성’은 기름유출 사고의 직접적인 책임자를 가리킨다. 이에 따라 앞의 명칭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고현장, 우리 국토로 돌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고현장을 복구하는 데 더욱 관심을 기울였다. 그런데 만약 사고에 ‘삼성 중공업 기름유출 사고’라고 명칭이 붙었다면 사람들의 반응이 마냥 우리 국토를 위해 두 손 걷어붙이고 봉사하려 하진 않았을 것이다. 책임소재가 분명한 삼성에게 그 책임을 물으면서 사고 현장 복구에 대한 나의 책임감을 덜었을 것이다. 

후자와 같은 상황이 올해 다시 일어났다. 바로 ‘세월호 사고’이다. 사고가 처음 보도 될 당시 다수의 언론이 ‘진도 앞바다 여객선 침몰’이라고 보도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고에 대한 국가의 대응이 미흡했던 것이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드러났다. 이때 보니 어느 순간부터인가 일제히 모든 보도가 ‘세월호 사고’로 사건을 명칭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금세 세월호라는 사고 책임자에게 눈을 돌렸고 비난의 돌을 던졌다. 물론 다수의 시민들이 세월호 사고에는 국가의 책임이 상당부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세월호 사고를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가장 먼저 세월호와 유병언을 떠올린다. 그렇기에 이것을 단지 사고를 지칭하는 단어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단어가 내포하는 의미와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이렇게 단어는 우리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침투해 들어와 단순한 지칭을 넘어 특정한 의미와 이미지를 심어준다. 의심 없는 단어 수용은 단어를 사용한 이가 던져주는 편견에 사로잡히게 되는 지름길이다.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른 수 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지금, 언어의 폭우 속에서 젖지 않을 생각의 우산을 크게 펼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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