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퇴거를 앞둔 독거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현장에는 “고맙습니다. 국밥이라도 한 그릇 하시죠. 개의치 마시고”라고 적힌 봉투와 10만원 가량의 현금이 있었다. 최근 다큐멘터리를 찍는 과제 때문에 쪽방촌에 다녀온 나로서는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본 쪽방촌의 모습은 유명 시사다큐 프로그램에서 본 모습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절대 덜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이야말로 쪽방촌에 거주하는 독거노인들의 단면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대구 중구 달성동에 위치한 한 쪽방촌에는 각설이 삼돌이 아저씨가 사신다. 밝아 보이는 아저씨에게도 슬픈 사연은 있었다. IMF 때 사업실패 이후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은 물론 10살 때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져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술병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형제라고는 여동생 하나가 전부지만 여동생마저 어렸을 때 잃어버리고 찾지 못했다고 한다. 여동생에 대해 묻는 말에 아저씨는 눈물을 글썽이며 이내 말을 잇지 못하셨다. 아저씨는 50살이 넘은 나이에 내 집을 마련하고, 결혼해서 소박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꿈이라고 하셨다.

옆집에 사는 할머니는 더욱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가 없어 음식을 제대로 씹지도, 먹지도 못하시는 할머니는 그날도 누가 먹다 버린 짬뽕이 담긴 그릇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할머니가 기초생활수급자 선정에서 탈락한 이유는 있으니 못한 자식 때문이란다. 할머니를 혼자 남겨둔 채 따로 사는 아들은 그래도 일주일에 한번 꼴로 찾아온다고 했다. 기초생활수급자 선정 기준은 소득인정액과 부양의무자기준, 크게 두 가지다.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미만이고, 부양의무자기준에 결격이 없을 시 기초생활수급자로 급여를 보장받을 수 있다. 할머니처럼 부적절한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해 수급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의 수는 대한민국에만 약 117만 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47.2%로 OECD 회원국 중 1위다. 2위 아일랜드(30.6%)보다 16.6% 더 높고, 30개국 평균(13.5%)의 3배 이상이다. 한류 열풍, 정보화 시대에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 대한민국의 노인의 위상이 겨우 이 정도다. 쪽방촌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이 동정에서부터 시작한다 한들 그들을 위한 진정한 걱정이라면 좋다. 문제는 그들을 완전한 ‘남’으로보는 사람들의 시선이다. 부모는 우리 사회의 빈곤층을 마주하는 아이들에게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고 가르친다. 공부 많이 해서 저런 사람들을 도우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최근 세월호 사건 때문에 노란 리본 사진을 카톡 프로필 배경으로 해놓은 지인들이 많았다. 하지만 현재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프로필 사진에 더 이상의 노란 애도를 읽을 순 없었다. 쪽방촌 사람들을 비롯해 사회보장제도 밖에서 추위에 떨고 계신 분들은 단지 그냥 남일 뿐인 것일까. ‘작은 움직임’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분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나에겐 적은 돈일지라도 그 분들에게는 큰 돈일 수 있다는 생각, 외로움을 덮어줄 따뜻한 만남 등. 부디 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기희경 기획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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