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월감 느낀 적 있는  10명 중 8명이 열등감 역시 느껴 

‘학벌=능력’에 반대하는  10명 중 3명,‘학벌 = 관계’에는 찬성해

지방대와 서울 상위권대 학생들 간의 학교 서열과 학교 등급, 학과 등급을 나누는 등 단계의 차이를 과장하고 벽을 쌓는 ‘학력위계주의’가 이십대들을 지배한다. 황보미(IT대 컴퓨터공학 13) 씨는 “주변을 보면 다른 지방 사립대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반면에 수도권 대학생과 비교했을 때는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느낌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는 지역거점국립대이자 지방대인 본교 또한 우월감과 열등감이라는 양가적인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준다. 한편 지난 13일에는 대학입시와 학벌주의에 담긴 사회의 차별과 경쟁의 논리에 반대하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 기자회견에서 3명의 청소년이 대학을 거부하는 선언을 했다. 그렇다면 본교생의 차별에 대한 의식수준은 어떨까? 본지는 지난 10일부터 4일간 학력주의에 대한 본교생의 의식 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는 재학생을 대상으로 실시됐고, 총 설문인원은 323명(오프라인 257명, 온라인 66명)이다.

‘사회적 능력의 평가기준으로 학벌을 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는 설문에 참가한 학생 중 53%(171명)가 반대한다고 답했다. 반면 ‘사회적 관계에서 개인을 평가할 때 학벌이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는 54%(174명)가 ‘찬성’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사회적 능력의 평가기준으로 학벌을 보는 것에 반대하는 학생 중의 36%(54명)가 사회적 관계에서 개인을 평가할 때는 학벌이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찬성’했다. 박기철(농생대 임산공학 14) 씨는 “학벌은 개인의 노력에 의해 달성한 것”이라며 “사람을 평가할 때 학벌이 객관적인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자신보다 학벌이 낮은 상대에게 우월감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는 55%(177명)가 ‘없다’라고 답했다. 반면에 ‘자신보다 학벌이 높은 상대에게 열등감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는 52%(169명)가 ‘있다’라고 답했다. 한편 자신보다 학벌이 낮은 상대에게 우월감을 느낀 적이 있는 학생 중의 78%(83명)가 열등감 역시 느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성현(공대 고분자공학 13) 씨는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 가식적이라고 생각한다”며 “나보다 서열이 높은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공부를 안 해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편·입학 및 반수로 수도권 대학으로의 진학을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는 40%(129명)가 ‘있다’고 답했다. 이들 중 48%(53명)는 ‘지역거점국립대인 본교가 수도권 대학들과의 경쟁에서 경쟁력을 갖추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아니요’라고 답했다.

서열화에 익숙해진 우리

국립대인 본교의 대학 서열상 위치에 대해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박기웅(인문대 영어영문 11) 씨는 “요즘엔 대학공동체가 연합하는 분위기가 옅어졌다”며 “대학 내에서도 정시와 수시를 가르고 상주랑 대구를 가르는데 이러한 구별 자체가 폭력적이다”라고 말했다. 허우경(경상대 경제통상 14) 씨는 “교육이 무의식중에 학습된 우리를 계속 재생산해내기 때문”이라며 “초등학교에서 급식을 성적순으로 받게 하고, 고등학교에서 우등반을 만들어 그들에게 관심을 준다”라고 말했다. 또한 “1위는 주목을 받지만 2등은 ‘안됐다’는 식으로 투사하는 미디어도 잘못됐다”라고 비판했다. 김근우(사회대 신문방송 10) 씨는 “사회적으로 그러한 교육을 받은 세대가 자라서 지금의 우리들이 됐다”며 “인생의 모든 것을 서열화하는 것이 우리 세대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경북대학교, 지금의 위치는?

지난 2008년에 실시한 경북대학교 학생 정체성 조사에 따르면 ‘경북대학교’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 ‘국립대학’을 가장 많이 꼽았으며, 긍정적 이미지와 부정적 이미지가 동시에 존재했다. 본교가 국립대인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김도영(법대 07) 씨는 “우리 세대는 그래도 경북대라고 하면 ‘성실하게 공부했네’ 정도의 인식은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허우경 씨는 “국립대의 위상이 떨어진 것은 확실하다”며 “앞으로 등록금 면제 같은 획기적인 정책이 없으면 회복이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조여탁(농생대 생물산업기계 10) 씨는 “국립대라고 해서 국가에서 제대로 학교를 지원해주는 느낌이 없다”며 “국립대가 정부 산하에 있으니까 오히려 교육부에 끌려 다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대학교육연구소 연덕원 연구원은 이러한 위상 하락의 원인에 대해 “학벌주의 사회의 깨지지 않는 연결고리 때문”이라며 “대기업 등의 취업을 중심으로 생각하다 보니 서울에 있는 대학들을 선호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학교에는 얼마나 만족하고 있을까. 조여탁 씨는 “본교 정도면 학교 간판 때문에 대기업 지사나 중소기업 입사에 패널티를 받을 것 같지는 않다”며 “지역 안에서는 본교가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박기웅 씨는 “입시결과 본교와 서울 소재 대학을 합격했는데 본교를 선택했다”며 “단지 서울에 있다는 이유로 가고 싶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반면에 김근우 씨는 “고등학생 때까지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닐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패배감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천선영 교수(사회대 사회)는 “우리학교에 온 것에 만족하는 학생도 있고 만족하지 못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다”며 “이 때 만족하지 못하는 학생은 우월감과 열등감이 뒤섞인 생각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을 일반화해서 과도하게 포장하면 곤란하다”며 “본교만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 특정한 구도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스스로 피해자가 되다

실제로 본교생들은 우월감과 열등감을 느끼고 있을까. 천선영 교수는 “열등감과 우월감의 구성비는 사람마다 다르다”며 “약간의 우월감으로 골목대장 노릇을 하거나 열패감이 더 커서 무기력증이나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김근우 씨는 “개인차가 있겠지만 평균을 낸다면 학벌이 더 높은 대학에 교양인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박기웅 씨는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이 대학이나 학과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조여탁 씨는 “소개팅에서 경대생이라고 하니까 왠지 다르게 보는 것 같았다”며 “스스로 우월하다고 생각하기보다 대구경북 내에서 은연중에 인식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천 교수는 “어떤 행위나 말을 할 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지 질문해봐야 한다”며 “만약 다른 사람을 깔보는 행동을 할 때 그 거울은 자기 자신이 된다”라고 말했다.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학벌주의 논란, 이제는 거부하고 싶다.

2010년 3월 10일,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 다니던 김예슬 씨는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이고 1인 시위를 한 후 고려대를 자퇴했다. 그로부터 4년 6개월 뒤, 세상은 ‘김예슬 선언’ 같은 것이 있었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지난 여름에는 고려대가 중앙일보 대학평가를 거부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 거부 선언을 한 고려대 총학생회를 향해 “용기 있는 행동”이라며 박수가 쏟아졌다. 하지만 불과 한 계절이 지나고 호응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거부 운동이 좀처럼 폭발력을 갖지 못한 데에는 대학 서열화 문제의 본질에 다가서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따른다.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은 “대학순위평가 거부운동의 내용에는 한 언론사의 대학순위 매기기에 대한 비판만 있을 뿐”이라며 “대학 서열화를 조장하는 본질적 요소인 획일적 입시제도, 기득권 학생들의 특권의식, 그리고 사교육업체의 대학순위 매기기(배치표)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라고 비판했다.

한편 지난 여름에는 대학 서열화가 학교 단위에서 학과 단위로까지 세분화되는 모습을 보도한 연세대 독립언론 <연세통>의 기사(제1018호)를 두고 뜨거운 논란이 벌어졌다. 공감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소수 이용자의 언행을 일반화해 학교 명예를 훼손했다’는 여론이 학내 이곳저곳에서 분출했다. 이에 본지는 지난 8월, 연세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력주의’에 대한 스티커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총 설문인원은 117명이었다. 

‘서열이 낮은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라는 질문에 75%(88명)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연세대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지방 대학이던 수도권 대학이던 싸잡아 묶어서 평가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며 “여기나 지방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방의 한 사립대 학생은 “학벌이 무엇보다 중요한 스펙인 시대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학벌이 배제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소개팅이나 알바를 해도 상대적으로 학벌이 낮은 학생이 조금 모자란 발언을 할 경우에 그 학교 학생이라서 그렇다고 치부되어 버린다”라고 말했다. 

또한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가 지방에 위치한다 해도 나는 다시 이 학교에 입학할 것이다’라는 질문에는 71%(83명)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생은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가 지방에 있다면 나는 어떤 혜택을 준다 해도 가기 싫을 것 같다”며 “취업을 앞둔 대학생이 우리나라 정보, 산업, 문화의 중심이자 전부인 서울을 벗어나는 것은 큰 손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대학교육연구소 연덕원 연구원은 “수도권 중심의 사회가 문제”라며 “인적 자원이 수도권에 몰리다 보니 인구공동화 현상이 벌어지면서 학벌사회에 영향을 끼친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지역발전과 지방대 육성을 위해 실질적인 정책들을 마련해야 한다”며 “국립대는 재정 부분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정부에 요청하고 학생들을 위해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대안으로 ‘학벌없는 사회 모임’은 서열화된 대학을 평준화하기 위한 국립대 네트워크 등을 도입해 대학 문턱을 낮추고 출신학교에 의한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무상등록금으로 대학 교육을 개인이 부담하게 하기보다는 국가가 책임져서 누구나 고등교육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벌주의 이데올레기 깨뜨리기」에서 경상대 사회학과 정진상 교수는 “지방대학의 사정은 대학 교육의 공동화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다. 대학서열 체재로 인해 지방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대학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도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에 전공 학과 공부를 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 학생들은 하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거나 기업에서 요구하는 영어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강의실보다 독서실을 찾는다. 전공 수업은 학점을 이수하여 졸업장을 받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대학 경쟁력은 여러 대학이 공정한 경쟁을 할 때 올라갈 수 있다. 현재의 고착화된 대학 서열 체제에서는 입학성적 경쟁만이 있을 뿐 대학 교육의 경쟁이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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