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염색공단 

 묽게 염색된 구름의 거리에 

 굳은 염료처럼 뭉쳐 앉은 네가 있었다

 ‘오늘은 괜찮았어요, 한국어 일기를 써보려 해요’ 내 눈이 훔쳐 읽은 버스 옆자리 

 줄공책 볼펜 글에 스무 살 너의 오늘이 있었다

 빗물에 더 선명해지는 그림이 있다 

 우산을 쓰고 공단 외벽 벽그림 속을 걸어가는 너,

 키 큰 꽃나무와 호수와 무지개가 있는 풍경의 낯설음은 

 만져볼 수 없는 거인의 정원에 선 소년의 감정과 가까울까

 그림나무 물관은 흙의 수분 대신 독한 염료냄새를 빨아올려 잎을 피운다

 네가 계약한 계절이 몇 단순한 가지 끝에 새와 나비를 불러두었다 

 불 켜진 공단 

 얼어붙은 공기 속으로 수조에서 풀려난 물안개가 거대한 몸을 벋는다  

 이 겨울도 우리는 안개성의 주민으로 살 것이다 

 잠 없는 너의 별이 간혹 사막고양이 같은 눈을 깜박일지도

류인서 시인

경북 영천에서 출생했으며 2001년 계간『시와 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 『여우』,『신호대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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