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날 어머니가 끓여주신 미역국은 뭔가 특별하다. 생일날 먹는 맛있는 음식도 많고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것도 많지만 유독 이 미역국이 특별하다. 왜 그럴까? 저명한 철학자 로버트 노직은 자신의 저서에서 이런 말을 한다. 인간의 행복은 쾌락의 단순한 총합이 아니라 삶의 서사(이야기)에서 온다고. 그렇다면 그날의 미역국에 담긴 것은 이야기가 아닐까? 나를 낳고 키우신 어머니의 노고, 미안하고 고마운 기억들, 일찍 일어나 요리를 준비하시던 어머니의 모습. 그날의 미역국이 담아내는 이야기들이다. 이처럼 특별한 무언가에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아이폰엔 있지만 갤럭시에 없는 것 그것도 이야기가 아닐까. 삼성은 더 크고 빠른 폰을 만들어왔다. 그런데 중국 업체들이 싼 값에 크고 빠른 폰을 만들게 되자 갤럭시의 대체품이 끊임없이 나오는 분위기다. 그러나 애플은 이야기를 제품에 담아왔다. 사과마크도 잡스의 프레젠테이션도 이야기를 엮어낸다. 아이폰은 특별해졌고 애플은 독주중이다. 성공 신화만이 아니다. 평범한 이야기에도 힘이 있다. 순천만과 함평나비 축제의 성공에선 우리의 소소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이렇듯 기업은 이야기의 힘을 마케팅에서 활용한다.

그런데 정작 우리들의 삶엔 이야기가 있나 묻고 싶다. 학기 초 들어간 수업에서 교수님이 하신 말이 생각난다. 우리 사회에는 이야기가 부재하다. 무한경쟁 속에서 우리는 이야기를 잃었고 소통이 사라졌다. 그 빈자리에는 불신과 외로움이 자리 잡았다고. 그러고 보니 나는 몇 년째 생일날 어머니의 미역국을 못 먹고 있다.

물론 우리 사회엔 통용되는 이야기가 있다.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을 가 좋은 직장에 취직. 좋은 차와 좋은 집을 사고 안정된 가정을 꾸리면 곧 좋은 인생이 된다는 이야기. ‘청춘’은 자고로 아프거나 즐겨야한다는 이야기. 그런데 이 이야기엔 주인공도 없고 배경과 줄거리도 없다. 속이 비어있다. 애초에 이야기가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누구의 것도 아닌 속 빈 이야기를 똑같이 따라하려 애쓴다. 그저 표절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잘 베낀 듯 보이는 이를 승자, 아닌 이를 패자라 부른다. 나와 너의, 우리 스스로의 이야기는 덮어 버렸고 서로의 속 찬 이야기엔 무신경하다. 그 어느 시절보다 세상과 자주 소통하지만 관계는 얕기만 하다. 외롭고 불안하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느라 ‘아픈 청춘’은 젊음을 즐기지 못해 외롭고, 술자리에서 ‘즐기는 청춘’은 머리가 아프질 않아 불안하다. 이러다 누군가 자신의 청춘은 아프면서도 즐거웠다고 말한다면 내 청춘은 화투판의 지는 패가 될 것만 같다. 크고 빠른 이야기만 쫓다 발목 잡힌 갤럭시가 생각난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의 미역국은 대체품도 적수도 없었지 않나. 그럼 우리들 청춘에 필요한 것도 진짜 이야기가 아닐까? 주인공은 ‘나’고 배경은 ‘여기’ 줄거리는 ‘각자’가 알아서!

정경한 (경상대 경영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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