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해에 나는 수도 없이 부서졌다. 많은 경험을 통해 계속해서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됐고 그런 만큼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나를 부서뜨렸다. 

사람들은 과거의 나를 통해 자신을 한정한다. 과거의 경험, 추억으로 비추어 나의 성향, 기호, 능력을 한정한다. 그래서 나는 수학문제는 쉽게 풀었지만 받아쓰기 시험에서 40점을 맞고 책을 싫어했던 유년시절을 기억하며 내가 이공계열에 적합한 학생이라 판단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15년 동안의 내가 흔들렸다. 문학과 시가 재미있고 사회수업이 기다려졌다. 하지만 이 모습은 내가 알고 있는 내가 아니었다. 나는 예전부터 수학과 과학을 잘하고 글 읽기와 쓰기를 싫어하는 학생이었다. 결국 나는 이공계열을 선택했고 대학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나는 잘 적응하지 못했다. 19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파악했던 내 모습은 나의 전부가 아니었고 나는 C언어에 굴복했다. 그리고 나는 수학을 좋아하는 그때까지의 나를 떠나보내고 글을 좋아하는 새로운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시 수능을 쳤고 경북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다. 이제껏 관심을 가지고 다루어왔던 것과 다른 성격의 학문을 배우면서 나는 계속해서 새로운 경험을 했다. 

내성적이어서 학원 옆자리에 앉은 친구에게 1년이 지나도록 말 한 번 안건 내가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 인터뷰를 했고 수동적이어서 학창시절 내내 반장 한 번 안해 본 내가 조모임을 이끌었다. 연필만 잡으면 토할 것 같았던 내가 일주일에 몇 십 매씩 글을 쓰고 신문은 어렵고 재미없다고 절대로 보지 않았던 내가 월요일 아침만 되면 신문을 찾아 읽는다. 이 모든 것이 새로운 나의 모습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만일 내가 ‘나는 내성적인 사람이야’라고 규정짓고 포기해 버렸다면 기자를 하지 못했을 것이고 ‘나는 리더에 맞지 않아’라고 한정했다면 피디라는 진로를 꿈꾸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학기에 본교 인재개발원에서 주관하는 적성·진로 찾기 프로그램 ‘위대한 나찾기’를 수료했다. 프로그램 중 자신의 현재 환경과 능력을 배제하고 20년 후의 자신의 삶을 상상해보라는 내용이 있었다. 이때 함께 상담을 받던 많은 학우들의 미래는 자신의 전공과는 무관했다. 통계학과의 친구는 코칭 전문가가 돼서 아침방송에 나올 것이라 했고 전자학과의 친구는 한적한 집에서 친구들과 파티를 열고 있을 것이라 했으며 수의학과의 친구는 목장을 운영할 것이라고 했다. 자신을 한정하는 과거의 굴레를 내려놓으니 새로운 삶의 길이 열린 것이다.

진로를 정한다는 것은 삶의 길을 그리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내가 걸어온 길과 이어진 길만을 찾으려 했다. 내가 가는 길 옆에는 조그마한 개구멍도 있고 울창한 숲도 있는데, 궁금했지만 길이 아니기에 외면했다. 과거의 나로 지금의 나를 판단할 수는 있지만, 한정지을 필요는 없다. 나는 아직 나의 적성과 흥미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새롭게 찾을 흥미와 적성을 어제의 기준으로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어제의 나를 부수고 부서지기 위해 열심히 걷는다.

이보라 기획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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