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이 있다. 희망사항이나 욕구불만이 있을 때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에게 이익이 돌아간다는 말이다. 누군가 나의 고충과 아픔을 이해해줄 것이라 기대하면서 침묵하는 사람에게 돌아갈 몫이나 이득은 상대적으로 적어진다. 당연하지 않은가! 침묵의 언어는 순례자나 종교공동체에 속하는 제한된 수행자들의 몫이니까.

1980-90년대 한국의 대학사회에서 당연시되었던 대학생들의 활발한 사회ㆍ정치적 의사표명과 노학연대 내지 농촌봉사활동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2014년을 기준으로 본다면 요즘 대학생들의 최대 관심사는 취업이다. 대졸실업이 남의 일이 아닌 지금, 대학생들은 사활을 걸고 취업전선에 나서고 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학생들은 친구와 가족의 범주를 넘는 사회나 정치적인 문제에 냉담하고 무심하다. 

더욱이 취업의 좁은 관문 때문에 학생들은 가까운 친구마저 경쟁자로 인식하기 십상이다. 4년 넘게 동고동락했던 벗이 경쟁상대로 둔갑하게 되는 것은 경쟁사회의 불가피한 단면이다. 문제는 무한경쟁의 사슬에 엮이기 시작하면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풀 수 없다는 데 있다. 대문이나 자동차 열쇠처럼 주머니에서 무시로 꺼내서 열고 닫을 수 없는 것이 경쟁하는 세계의 단단한 사슬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출간되어 불과 7개월 만에 200만부가 넘게 팔린 <분노하라>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93세 나이에 <분노하라>를 펴낸 스테판 에셀은 히틀러의 나치에 저항한 레지스탕스 출신 지식인이다. 그가 학창시절에 분노했던 대상은 세계시민을 억압의 사슬로 묶어 지배하려던 나치의 전체주의 체제였다. 

스물두 살 나이인 1939년에 프랑스 최고 지성들의 배움터인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한 그는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드골의 프랑스 망명정부에 합류한다. 저항운동을 지속하던 그는 1944년 파리에 잠입하여 활동하던 중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는다. 사형집행을 며칠 앞둔 시점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에셀은 <유엔인권선언문> 초안 작성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전개한다.

저항하고 투쟁하는 인간 에셀이 보기에 21세기 프랑스 사회와 세계는 부의 불평등, 기회불균등, 외국인 혐오증 등이 만연한 불의한 시공간이다. 하지만 프랑스 대학생들은 70년 전 자신과 달리 침묵과 굴종의 길을 선택한다. 이에 크게 절망하고 좌절한 그는 증손자뻘 되는 20대 청춘들에게 소리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분노하라>에 담겨 있는 에셀이 가진 생각의 고갱이자 내용이다.

경제적 불평등은 사회ㆍ정치ㆍ문화 같은 인간생활의 전면적인 영역의 불평등을 야기한다. 소수의 부자들이 세계의 부를 독점하고, 대다수 시민이 제한된 재원을 쪼개 써야 하는 현실에 눈 감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면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서로 공유하면서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 에셀의 신념이다.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나아가라는 것이다.

오늘 침묵하면 여러분은 편안하고 안온할지 모른다. 하지만 침묵의 대가는 이내 그대들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매우 불편하게 여러분을 옭죌 것이다. 침묵으로 야기된 불평등과 불의가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침묵하는 원인은 귀찮고, 힘들며, 당장에 생기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가진 자들은 그것에 기대서 없는 자들을 지배한다. 그들은 소비와 향락의 유혹수단을 앞세우면서 여러분의 정치적 의식과 사회적 인식을 우아하게 마비시키고 뿌리까지 세뇌한다. 

이제는 분연히 일어나서 손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크게 소리 내서 울어야 한다. 언제까지 이런 불평등하고 불의한 세상을 방관할 것인가?! 여러분이 울지 않고, 잠들어 있다면 여러분의 일자리도, 여러분의 장밋빛 미래도, 여러분의 꿈과 기획도 결코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할 일이다. 분노하되 인식하고, 공유하면서 연대하라! 그것이 여러분의 남은 인생 장장 80년 세월을 좌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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