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커졌으면 좋겠다. 모델 같은 작은 사이즈의 머리 크기가 찬양받는 사회에서 웬 말이냐 싶겠다. 물론 외모지상주의와 함께 성장한 나에게 이 머리는 물리적 의미가 아니다. 여기서 머리는 질문의 머리를 말하며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는 질문의 서론이고, 둘째는 질문에 담겨진 생각이다.

질문에서의 서론은 단순히 날씨가 좋네요, 식사 하셨어요? 같은 인터뷰 초반의 안부 물음이 아니다. 서론은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질문에 관한 답을 들으려 설명하는 배경을 뜻한다. 기자를 시작한 초반에는 ‘어떻게 생각하세요?’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 사안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담당자가 알아서 말해 주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전화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확히 어느 범위를 말씀하시는 건지요?’, ‘음 그러니까 그것에 대해서 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아니, 그러니까…’ 뭘 어떻게 말하라는 건지 앞뒤 설명 없이 질문하는 나도 내가 답답했지만 수화기 너머에선 꾸역꾸역 답이 왔다. 이런 식으로 전화를 해도 대답을 잘 해주는 사람이 있어 내 버릇은 더욱 나빠졌다. 그 때문인지 한 부처의 담당자 선생님께서 다음 취재 때는 공부하고 오라는 말씀에 엄청나게 뜨끔했다. ‘이 정도만 해도 기사에 쓸 멘트는 나온다’ 라는 적당한 게으름에 빠져 있었던 것이었다.

한 작가가 ‘지금은 표현의 자유보다 표현의 생각이 없는 사회’라고 했다.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은 어느 정도 마련됐지만 그곳에서 표출할 자기 생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말에 상당히 공감했다. 질문을 하고 싶어도 질문이 생각나지 않는다. 아는 게 없으니 궁금하지도 않다. 그래서 무작정 인터뷰하기보다 잠시 멈춰서 알아보는 시간이 중요하다.

머리를 굳이 두 가지 의미로 나눴지만 결국 하나를 향한다. 질문이 뚜렷해야 한다는 것.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서는 그걸 끌어낼 수 있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질문을 누구에게 하는지, 무엇에 관해 묻는지, 왜 묻는지 세세하게 나누면 나눌수록 대답도 세세해진다. 

그렇게 신경써서 준비한 질문에는 딱 그만큼의 기쁜 대답이 돌아온다. 기획 취재를 위해 질문지를 미리 꼼꼼히 만들어 교수님께 인터뷰를 갔을 때의 일이다. 환경에 오염이 되지도 않으면서 새로운 에너지로 부상한 미세조류에 대한 설명을 듣다 마지막으로 예상되는 부작용이 있는지를 물었다. 이 질문에 교수님은 당황하며 한 번도 부작용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기자다운 날카로운 질문이네요’라는 말을 했다. 그 말 한마디가 질문의 맛을 느끼게 해줬다. 이후 다른 인터뷰에서도 종종 들려오는 아주 중요한 질문이에요 라는 말들이 질문지를 더욱 구체적으로 짜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벼도 사람도 머리가 굵어지면 고개를 숙인다. 나는 확실히 머리가 커지고 있는 것 같다. 칭찬 몇 마디 들었다고 붕 떠다니는 게 아니라 더 침착하게 질문을 준비한다. 오늘도 전화하기 전 혼잣말로 질문을 중얼거리고 있다. 

안녕하세요? 저는 경북대신문 이정아 기자라고 합니다…

이정아 취재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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