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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획

내려치는 붓끝에서 새로운 예술을 보다

"무아지경 상태에서 붓을 놀리다 보면 어느새 글씨가 완성된다. 그 순간에 멋진 황홀경, 쾌감이 온다"


‘서예’, 이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정적이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먹을 갈고 먹물에 붓을 적셔 한지에 곱게 써내려가는 붓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리홍재(57) 씨의 서예는 조금 다르다. “서예는 살아 움직이는 기운을 표현하고, 귀로 듣고 눈으로 즐길 수 있는 예술”이라고 말하는 그는 10년 전 ‘타묵(打墨) 퍼포먼스’를 창안해 선보였다. 그의 퍼포먼스는 가히 파격적이고 힘이 넘친다. 문방구에서 파는 붓과는 완전히 다른 거대한 타묵용 붓으로 넓게 펴진 한지 위에 글자를 새긴다. 서예와 행위예술,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지 장르를 결합한 타묵 퍼포먼스의 창시자 서예가 리홍재 씨를 만났다●

Q.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율산(栗山)’ 리홍재라고 한다. 예전에는 ‘추홍’이라는 호를 사용했는데 스승님이 지어주신 율산으로 호를 바꾸게 됐다. 서예 스승이신 죽헌 선생님께서는 내 삐죽한 머리카락이나 머리 모양새가 알밤과 닮았다며 이런 호를 지어주셨다. 1999년 대구 봉산미술제에서 타묵 퍼포먼스를 처음 선보인 이후 지금까지 퍼포먼스를 해오고 있다. 올해 5월에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타묵을 선보였다.

리홍재 씨는 대학교 때 대구에 처음 오게 됐다. 그 후로 계속해서 대구에 살고 있는 그는 ‘내가 있는 곳이 곧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으로 타묵 퍼포먼스를 널리 알리고 있다. 봉산문화거리 안쪽으로 5분정도 걷다보면 그의 작업장이 보인다. 도심명산장(작업실 겸 전시실)으로 들어섰을 때 오감 중 시각이 가장 먼저 반응한다. 서예가의 작업실이라는 것을 나타내듯 곳곳에 걸려있는 작품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다음으로 후각이 반응하는데, 바닥에 놓인 아직 먹이 마르지 않은 글씨들이 코에 진한 먹향을 남긴다. 한 쪽 벽에는 서예를 할 때 사용하는 붓들이 모여 있다. 액자들을 지나치고 눈을 사로잡는 것은 항아리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타묵용 붓이다. 손으로 잡는 부분이 닳아있고 끝이 거칠게 된 붓의 모습에서 그동안 리홍재 씨가 해온 퍼포먼스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듯 했다.




Q.서예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미술반에 들어가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붓을 처음 잡게 된 것은 5학년 때인데 잘하는 것은 아니었다. 중,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꾸준히 서예를 해오다가 서예가가 됐다. 옛날에는 종이가 귀해서 함부로 글씨를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땅바닥이나 돌같은 곳에다 글씨를 쓰면서 연습을 했다. 처음부터 서예가를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도학(道學)에 관심이 있고 좋아해서 공부를 하다가 서예가의 길에 빠지게 됐다.

Q.타묵 퍼포먼스를 소개한다면?
흐르는 음악을 따라 큰 붓을 들고 춤추듯 글씨를 써내려가는 행위예술이자 무대공연이다. 관객들은 내가 무대에 나와서 뭘 하는지 궁금해 한다. 큰 붓으로 춤추듯 글씨를 휘갈기는 나의 모습에 한 번 놀라고 퍼포먼스가 끝난 뒤 높이 들어 보여주는 초대형 화선지에 다시 놀란다. 정적 예술이라고 생각한 서예의 색다른 모습에서 관객들은 새롭고 놀라운 감정에 휩싸인다.

군위 인각사 ‘2014 삼국유사 문화의 밤’에서 타묵을 하는 리홍재 씨의 모습에서 힘이 느껴지면서도 춤을 추는 듯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관람하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놀라움이 느껴졌다. 몇몇 관객들은 퍼포먼스를 마친 리홍재 씨와 즐겁게 기념사진을 찍곤 했다. 먹물에 검게 물든 그의 손도 거리낌 없이 잡으며 타묵의 기운을 받는 듯 했다.




Q.이렇게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하게 된 배경은?
서예는 춤, 음악, 스포츠와 같다. 몸을 움직이고 리듬에 맞춰 글씨를 써내려가는 것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타묵에는 그 모든 것들이 들어가 있다. 퍼포먼스를 하면서 음악이 흐르고 글씨를 쓰는 동작은 스포츠처럼 격렬하다. 또 글씨를 쓰는 중간에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한다. 그런 것을 작은 붓과 종이, 먹물로 모두 담아낼 수 없기 때문에 크기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옛 것을 지키기만 하지 않고 새롭게 발전시켜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타묵을 만든 것도 진정한 서예의 의미를 잘 모르는 것이 안타까워 개발한 것이다.




Q.타묵 퍼포먼스를 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
퍼포먼스 자체가 힘들다. 먹물을 적시면 수십 kg에 달하는 타묵용 붓을 들고 넓은 초대형 화선지에 글씨를 쓴다. 한 번 퍼포먼스를 보이고 나면 온몸이 녹초가 된다. 게다가 글씨를 쓸 때는 글자 하나 하나에 집중해야 한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글씨도 같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가끔은 쓰고나서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지만 이미 끝난 일이기에 어쩔 수 없다. 이런 아쉬움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신을 가다듬고 있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육체보다 정신이 더 힘들다. 하지만 이렇게 고통이 큰 만큼 끝내고 나면 큰 희열을 준다.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산을 오르는 중에는 무지막지하게 힘들다. 왜 이 산을 오르려 했는지에 대한 의문과 후회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고생 후 산 정상에 올랐을 때 상쾌하고 뿌듯한 기분이 타묵을 한 번 하는 것과 비슷하다.




Q.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과일의 씨나 계란 같은 알에 작품을 새기고 싶다. 이미 시도한 작품이 몇 개 있지만 아직 더 도전할 것이 많다. 씨나 알에 작품을 새기는 것은 입체 예술이다. 화선지에 새기는 평면 예술작품 대신 공간적인 느낌을 주는 것을 만들고 싶다. 재료는 실생활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로 쓰려고 한다. 그 외에도 색깔을 쓰는 현대 서예를 하고 싶다. 서예라고 해서 검은 먹만 쓰라는 법은 없다. 여러가지 색을 써서 색감을 살린 작품들을 만들어가고 싶다.




Q.씨나 알에 새기는 것 같이 서예나 그림의 범주에 들지 않는 작품에 도전을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글씨를 쓰는 것 자체가 서예라고 했다. 하지만 서예란 단순히 글자를 쓰는 것만 뜻하는 건 아니다. 서예라는 큰 틀 안에 글씨가 들어있는 것이다. 붓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서예라 하는 것이 옳다. 재료를 따지지 않고, 쓰는 동작 모든 것을 서예의 범주에 넣는다. 그렇게 되면 씨나 알에 새기는 것도 서예라고 할 수 있지 않나.

Q.예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비교하면?
예전이든 지금이든 그저 붓을 잡고 있는 것이 좋다. 글씨를 쓰는 순간의 집중력도 좋고 완성된 결과물을 볼 때의 느낌도 좋다. 20대에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때는 당당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런 실력으로 개인전을 열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또 다르다. 이제는 내가 예전에 개인전을 열겠다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자랑스럽다. 과거의 내가 그런 결정을 했다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의 차이는 아마 이렇듯 시간이 지나면서 바뀐 마음가짐이 아닐까 생각한다.

Q.2000년도에 경북대학교에서 타묵 퍼포먼스를 했는데 그 당시의 소감은?
솔직히 말하면 소감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타묵 퍼포먼스 중에는 정신을 집중한다. 집중력이 점점 깊어지면 어느새 무아지경에 빠져든다. 무아지경 상태에서 붓을 놀리다 보면 어느새 글씨가 완성된다. 그 순간에 멋진 황홀경, 쾌감이 온다. 이렇게 말해도 퍼포먼스를 마친 후의 소감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순간의 느낌은 온전히 나만이 느끼는 것이니까.

리홍재 씨는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인터뷰에 응했다. 필자가 보기에 리홍재 씨는 활력으로 가득 차있는 사람이었다. 손짓 하나하나가 사람의 눈을 끌어당기는 듯했다. 이렇게 힘이 넘치는 사람이기에 타묵같은 격렬한 예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Q.마지막으로 경북대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요즘 학생들은 한자공부를 하지 않는다. 나는 한글뿐만 아니라 한자도 우리의 글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쓰는 한자는 중국의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또한 한글을 구성하고 있는 많은 단어가 우리나라의 한자다. 이 정도면 우리의 글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우리가 쓰는 문자의 뜻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을 모르는 것은 큰일이다. 학생들이 한자공부든 서예든 결과가 빨리 나오지 않아서 금방 포기 하는데 이것이 안타깝다. 좀 더 인내심을 가지고 모든 일을 해 나갔으면 좋겠다. 어떤 일이든 꾸준히 하다보면 결과는 나온다.
서예에 관해서도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서예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 타묵 퍼포먼스를 만들었을 때도 사람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다. 감상을 시작으로 해서 조금씩 단계를 높여가면 좋겠다.

리홍재 씨는 기존의 것을 답습하고 과거의 자신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아니다. 언제나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자신을 생각했다. 서예계의 이단아, 그는 자신만의 예술관과 신념이 확실하게 있었기에 타묵이라는 새로운 예술을 세상에 내보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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