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은 일찍 와서 오래 머물렀다.’ 소설가 김훈이 쓴 <남한산성>의 한 구절이다. 역사 속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때 인조가 스스로 걸어 나가 청나라에 무릎 꿇은 치욕의 장소로 기억된다. 3백7십여 년 전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광주시 남한산성을 찾았다. 광주 하면 전라도를 떠올리지만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에 있다. 

등산 경험이 적거나 체력이 약할 경우에는 버스를 타고 남문까지 가는 것을 추천한다. 젊은 패기로 무턱대고 덤볐다가는 남문에 오르기도 전에 지칠지 모른다. 남문 이후로 펼쳐지는 코스도 만만치 않으니 등산에 대한 아쉬움은 접어두자.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오르다 보니 멀미가 났다. 종점인 ‘남한산성 정류장’에 하차해 남문주차장까지 걸어가면 커다란 등산 안내판이 보인다. 남한산성이 더욱 가치 있는 것은 단순히 문화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둘레길’이 있기 때문이다. 탐방로는 2.9km의 1시간 코스부터 7.7km의 3시간 20분 코스까지 다섯 코스가 있다. 이렇듯 가볍게 걸을 수 있는 산책로와 흠뻑 땀을 흘릴 수 있는 등산로가 있어 하루 8천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남한산성을 찾는다. 나는 등산에 소질이 없으니 다섯 코스 중 1코스를 걸어보기로 했다. 시작점인 산성종로 로터리에서 북문으로 올라가 서문과 수어장대를 거쳐 남문으로 내려오는 데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생명의 길’이라 불리는 1코스는 숲의 생명력과 산성 곳곳에 전하는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길이다. 

로터리에서 400m 정도를 오르면 병자호란 최대의 전투이자 최대의 참패로 기록된 북문이 나온다. 북문의 또 다른 이름이 ‘모두 승리한다’라는 뜻의 ‘전승문’이니 슬프면서도 아이러니하다. 47일간의 치열했던 전투의 상흔을 뒤로하고 북문에서 1km 정도 쉬엄쉬엄 산을 오르면 서문 전망대의 탁 트인 전경이 펼쳐진다. 맑은 날이면 잠실벌과 하남시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아름다운 야경 포인트로 유명한 장소다. 잠시 한숨을 돌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가슴까지 뻥 뚫리는 느낌이다.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 피톤치드 가득한 산길을 걸으면 생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쌓여왔던 힘든 마음이 치유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에게 서문은 땀을 식히며 한 걸음 쉬어가는 곳이지만 병자호란 때에는 인조가 항복하러 갈 때 지나간 문이다. 말을 타고 지날 수도 없는 작고 초라한 문을 지나며 인조는 얼마나 극심한 비참함을 느꼈을까. 서문을 지나 남한산성을 쌓을 때 만든 4개의 장대 중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수어장대로 향한다. 장대란 지휘관이 올라서서 군대를 지휘하도록 높은 곳에 쌓은 대를 말한다. 수어장대로 가는 길은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해 최적의 요새로 만들어졌다. 우거진 소나무 사이로 굽이치는 성곽을 걷다보면 땀이 흐르기 시작하고 지쳐간다. 그래도 산성 곳곳을 살펴보며 걷는 여유는 잃지 말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된 남한산성답게 총 둘레 12km가 넘는 성벽을 구축한 우리나라의 훌륭한 축성술을 만나볼 수 있다. 오랜 세월에도 꿋꿋이 그 자리를 지켜온 것은 성곽의 돌 하나하나에 조상님의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수어장대를 나와 남문까지 이어지는 길을 내려오며 고립무원의 성 안에서 벌어진 싸움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청나라 군대에 포위당한 상황에서도 조선 조정은 신념과 실리를 두고 입씨름을 계속했다. 지금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본질은 잊은 채 입씨름만 지속하다가는 오해와 불신, 왜곡된 정보가 넘쳐날 것이다. 상처를 잊은 자들에게 역사의 아픔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경북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