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늙은 젊은이’들은 꿈같은 현실 속에서, 꿈을 잃고 현실적인 삶을 꿈꾸고 있다. 청년 실업률은 높아만 가고 빈부 격차는 커져만 간다. 이른바 평범하게 살기가 가장 어려운 세상 속에서 우리는 평범하게 살겠다는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바늘구멍보다 좁아져버린 취업의 문턱에서 그로 인한 불안과 압박 속에서 이 시대의 불행한 ‘청년’들은 흡사 힘없이 돌아가는 코드 뽑힌 선풍기 날개와도 같다.

‘현실’ 이라는 놈이 내리는 이토록 반인권적이며 비인격적인 테제는 아주 막연하고 구체적이지 않을 뿐더러 우리를 늘 불안에 시달리게 만든다. 그런 불안과 압박 속에서는 개성, 도전, 용기, 적성, 공감, 배려 등은 ‘배부른 자들만의 전유물’이 된다. 우리의 불행한 청년 ‘멘티’들에게 요구되는 건 오직 ‘인내’뿐이며 그들이 지를 수 있는 가장 인격적이고 상식적인 소심한 일탈은 ‘치맥’정도가 전부이다.

이렇게 눈 먼 청년들은 ‘꿈’ 꿀 수 없다. 이렇게 눈 먼 청년들에게 차별받고 소외된 ‘이웃’들이 보일 리가 없다.

한때는 지식의 상아탑이라 불리던 대학은 실용적인, 즉 ‘스펙’을 얻기 위한 학문을 추구하는 곳으로 변했다. 학내에 게시된 현수막이나 건물 게시판, 화장실에 붙은 포스터 & 자보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최근 학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3대(大) 학회만 놓고 봐도 대학 내에는 온통 ‘나’를 위한 행위들 뿐 ‘우리’를 지향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대학 공동체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학교 곳곳에 ‘젊은이가 왜 그러니’ 학회 자보를 붙였다. ‘꿈꾸지 않는 나’로 가득 차 있는 이 대학교라는 공간에서 ‘젊은이가 왜 젊은이답지 않게 살고 있니’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꿈꾸는 우리‘를 생각하는 인간(人間)들을 찾고 싶었다. 그렇게 모인 우리들은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고, 소외와 차별에 대해서 공감하고, 공통된 문제의식에 대응하는 실천적인 행동을 하며,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이 학회가 정치적 성향, 성별, 연령, 인종 등을 불문하고 모든 인격체들이 모여 토론과 논쟁, 공유들을 하는 장(場)이 되길 바란다. 보수(保守)도 좋고, 진보(進步)도 좋다.

어느 화창한 봄날 장자가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나비가 돼 꽃밭을 날아다녔다. 깨어보니 다시 장자로 돌아왔다. “내가 나비가 된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내가 된 것일까” 장자는 꿈이 현실인지, 현실이 꿈인지 헷갈렸다. ‘나비의 꿈’(호접몽·胡蝶夢) 우화다. 장자는 인생이 한낱 꿈이라고 믿었다. 마치 영원할 것만 같은 ‘차별과 소외’가 만연한 이 사회의 질서에서, ‘꿈’ 처럼 비현실적인 ‘현실’속에서 우리는 하루빨리 깨어나야 한다.

박기웅

(인문대 영어영문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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