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4일부터 9월 10일까지 대구미술관에서 국내 최초로 <장샤오강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이 전시회에서는 그의 1980년대 초부터 2014년 최신 작품까지 총 107점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어 관람객들에게 작가의 작품세계 전반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장샤오강은 그의 대표작인 ‘혈연-대가족’이 지난 4월 소더비 경매에서 약 125억 원에 팔릴 정도로 세계미술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는 핫한 작가이다. 장샤오강은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천안문사태 그리고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로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자라났다. 슬픈 폭력의 시대, 파괴적인 시간 속에서 그는 중국인이기 때문에 받은 상처와 고뇌를 서정적으로 풀어나가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했다. 그는 기존에 자신이 해오던 작업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실험적인 작품을 만드는 것에 도전하고 있다. 중국 근현대사를 관통해온 그의 작품들을 따라가 보자●

한 장의 캔버스를 겨우 받다그가 살았던 20세기의 중국은 회화에 있어서도 사회주의적 가치를 요구하던 시대였다. 사회적인 이념을 표현해 주던 그림, 즉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 입각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만이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노동자, 인민, 농민들이 열심히 근로해서 이상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그림을 그려야만 캔버스를 제공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장샤오강은 그를 거부하고 밀레, 반 고흐,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들에 영향을 받아 후기 모더니즘에 대한 탐구를 고집하였다. 그래서 그는 캔버스를 제공받지 못하고 많은 작품을 종이에 그려야 했다. 그러다가 그는 스찬예술대학 졸업을 앞뒀을 때서야 그의 재능을 인정받아 한 장의 캔버스를 받을 수 있었다. 그 캔버스에는 그가 동경했던 밀레와 고흐의 화풍을 닮은 '하늘에 구름 (Cloud in the sky)'이 그려졌다.

천안문 사태로 정체성의 전환을 맞다다양한 서구모더니즘 그림을 그리던 장샤오강은 그가 작가로서 빛을 발하려하는 찰나 천안문 사태가 일어나버리는 바람에 다시 암흑기를 가져야 했다. 천안문 사태는 1989년 6월 4일 미명에 민주화를 요구하며 베이징의 톈안먼 광장에서 연좌시위를 벌이던 학생, 노동자, 시민들을 계엄군을 동원하여 탱크와 장갑차로 해산시키면서 발포, 많은 사상자를 낸 사건이다. 이사건을 기점으로 중국은 개방정책을 펼치게 됐고 많은 중국인들이 해외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때 장샤오강도 생애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가서 자신이 동경하던 서구 미술작품들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자신이 존경하던 고흐의 그림을 직접 본 쟝사오강은 ‘고흐는 고흐다웠을 때 명작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중국적인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러고 나서 중국으로 귀국 후 그린 그림 중 하나가 바로 천안문 No.2 (Tian'anmen No.2)이다. 이 작품은 어두운 파랑색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림의 가장자리에는 검은 묵으로 그린 듯한 액자가 있고 전체적인 붓 터치의 느낌도 거칠다. 천안문은 중앙에 빨갛게 칠해져 있고 그 밑의 집의 지붕들은 날카롭게 그려져 있다. 아직까진 그림에 액자 같은 틀과 거친 느낌이 남아 있는 등 모더니즘의 특성을 버리진 못하였다. 하지만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자신의 스타일로 변하는 전환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검은색의 거친 질감은 정부에 대한 불신을 나타내며 아무도 없는 거리지만 거친 아우성이 남아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든다.

문화대혁명이 낳은 붉은 아이쟝사오강만의 스타일이 드러나는 작품들에선 붉은 색 또는 노란 색으로 칠해진 사람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들은 1949년 중국이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바꾼 후에 태어난 세대를 상징한다. 즉 1958년에 태어난 장샤오강 자기 자신도 붉은 아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붉은 아이들이 어떤 일들을 겪고 자랐는지 알 수 있다. 나무 상자 위에 누운 붉은 아이의 탯줄에는 빨간 실선이 사방으로 뻗어나가 있다. 그 선들은 각각 잔칭과 천안문, 그리고 심장 이미지를 띄우고 있는 티비들과 칼, 책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붉은 아이가 탯줄과 연결된 것들을 양분삼아 자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잔칭은 마오쩌둥의 부인으로 잔칭의 이미지는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간 중국의 최고지도자 마오쩌둥에 의해 주도된 극좌 사회주의운동인 문화대혁명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천안문은 1989년에 일어난 천안문 사태를 의미하고 책과 칼은 각각 사상을 중요시하고 교육 시키던 당대이념과 문화대혁명과 천안문사태의 폭력성을 나타낸다. 즉 이 그림을 통해 쟝사오강은 사회적인 체제 안에서 중국인이 가지는 규범 정체성을 노골적으로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붉은 실로 무표정한 중국인들을 연결하다중국인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고민을 하고 있었던 장샤오강은 어머니의 옛 흑백 사진을 우연히 발견하고 거기서 힌트를 얻게 된다. 어머니가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단체로 같은 옷, 같은 자세, 그리고 표정까지도 같은 표정을 짓는 집단주의적 문화가 두드러져있었다. 그것을 본 그는 중국이 사상적 가치를 위해서 개성과 자유를 완전히 말살하여 획일화 시켰음에서 영감을 얻어 그의 대표작인 ‘혈연-대가족’시리즈를 제작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은 우중충한 회색이 주를 이루고, 작품 속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무표정한 얼굴에 똑같은 자세, 똑같은 옷을 입고 있다. 그 작품이 사진과 차이를 이루는 점은 바로 빨간 실선이 그들을 연결하고 있는 것과 빛 또는 얼룩으로 보이는 흔적이 인물들에게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빨간 실선은 혈연관계를 뜻하는데 대가족이라는 제목을 통해 단순히 작은 가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중국인의 집단적인 가족을 뜻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얼굴에 있는 빛 또는 얼룩은 역사적 슬픔을 자진 아픈 기억, 시간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혈연-대가족 no.1 (Bloodline : Big Family No.1)의 작품 속에서의 붉은 아이의 눈이 사시인 것도 큰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문화대혁명기 시대 때 반항적인 아이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또 이 작품 속에는 세 명의 인물이 나오는데 그들은 엄마, 아빠, 그리고 아들로 보인다. 이들 부부는 똑같이 우중충한 자켓스타일의 옷을 입고 있으며 아들은 멜빵바지를 입고 헝클어진 셔츠를 입고 있다. 이 작품을 보면 장샤오강이 그전의 모더니즘적인 액자틀이나 강한 붓 터치 표현방식을 완전히 버리고 얼룩과 색을 입힌 사람 그리고 세밀한 붓 터치 등 자기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한 것을 알 수 있다.

개인을 조명하여 상처를 표현하다대가족 시리즈가 지나고 나서 장샤오강의 그림들에서 등장인물들의 수가 하나씩 줄었다. 이후 결국엔 한 인물에게 초점을 맞춘 작품들이 많이 제작되었는데, 무표정한 얼굴, 정적인 자세, 우중충한 배경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 전과는 달리 유독 그들의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것을 발견 할 수 있다. 특히 스쳐지나가는 듯한 붓 터치의 배경과 흐릿한 그림들 사이에서 선명한 눈물은 유독 눈에 띈다. 이는 흐릿한 그림처럼 기억들은 희미해지지만, 한 개인이 받은 상처는 아직 선명해 그 슬픔에서 벗어나지지 않음을 뜻한다. 장샤오강은 이러한 그림들을 반복해서 그림으로써 과거에 받은 깊은 상처를 치료하고 상처받은 이들을 애도하고자 하였다. 작가가 작품 속에서의 대상을 강조하기 위해 자주 쓰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빛이다. 빛은 작가의 개성을 강조하면서도 빛을 받는 대상을 통해 미의식을 표현할 수 있다. 소녀 No.4 (Girl No.4)의 작품은 한 소녀의 무표정한 얼굴이 강조되어 있다. 머리와 배경은 무언가로 문지른 듯이 흐릿하고 눈에선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다. 그리고 빨간 실선이 그려져 있고, 오른쪽에서 강렬하지 않은 빛이 얼굴을 비추고 있다. 노란색 얼룩이 빛으로 강조된 오른쪽 얼굴엔 새겨져 있어 소녀가 받은 아픔을 도드라지게 나타내는 듯 보인다.

⑥억눌린 체제 속의 중국과 방그의 작품이 2000년대에 들어서고 나서 어느 순간 인물 밖에 없던 그의 그림에 하나 둘 씩 사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구와 책 등이 나타나다가 어느 순간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건물은 밑부분은 초록색, 위에는 흰색으로 과거 중국의 공공시설이라면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인테리어였다. 그리고 실내는 현대의 가구가 아닌 공산당 시절의 가구들과 책, 전구 또는 꺼져버린 초들로 채워져 있다. 이는 과거에 자유와 개성을 억압하고 사상과 이상을 중요시한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분재, 도자기, 도자기에 담긴 매화 등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중국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오후 No.2 (Aternoon No.2)라는 작품을 보면 이 특징들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초록방은 결국 억눌린 체제 속의 중국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 후로 장샤오강은 다양한 예술의 표현방식을 시도했다. 캔버스 대신 거울에 작품을 붙이고 설치한다든가, 옛날 사진 위에 현재의 생각을 중첩시킨다든가 자신의 작품에 나왔던 사람, 사물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것 말이다. 그의 그림은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근현대적 화풍이지만, 본인의 독특한 묘사 또는 감성을 통해 의미를 담음으로써 추상적인 것을 지향하는 현대미술에 가까워졌다할 수 있다. 이에 미술학과 박남희 교수는 “눈물을 흘리려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과거 어두웠던 시절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쟝사오강 작품 속에서 독자들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라고 말하며 “특히 회색톤 그림 가운데 인물 몇 명에 색을 입혀서 새로운 볼거리와 재미를 주었다. 장샤오강은 고난을 겪으며 자라서 그의 작품 속에 그 고뇌가 담겨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더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며 소감을 밝혔다.

① 하늘에 구름 (Cloud in the sky) 1981作② 천안문 No.2 (Tian'anmen No.2) 1993作③ 붉은 아이 (The Red Baby) 1993作④ 혈연-대가족 No.1 (Bloodline : Big Family     No.1) 1994作⑤ 나의 딸 No.1 (My Daughter No.1) 2000作⑥ 소녀 No.4 (Girl No.4) 2006作⑦ 오후 No.2 (Aternoon No.2) 2012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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