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도 끝나고 뉴스를 봐도 속상한 데다 얼굴에 뾰루지까지 나서 ‘에잇, 모르겠다’ 하며 하던 과제를 던지고 여행을 떠난다. 여행이랄 것도 없이 약간의 노자와 가벼운 옷, 썬크림이면 준비 끝이다.바다도 보고 싶고 좋은 공기도 쐬고 싶거나 기분이 꿀꿀한데 어딜 가야 할지 모를 때 이 코스를 추천한다. 동부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포항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 바로 앞 횡단보도를 건너 버스를 타면 몇 코스 내로 영일대 해수욕장에 도착한다. 그 곳의 아침은 자전거를 타러 나온 주민들과 발목까지 오는 물 속에서 물장구를 치는 고등학생들로 적당히 소란스럽고 적잖이 상쾌하다. 뒤에 아이들을 태우고 자전거를 타는 가족이 내 앞을 쌩 지나가도 천천히 걷다보면, 옆으로 여러 조형물과 해상누각의 형태인 영일교가 보인다. 긴 해변가로 공사해놓은 자전거도로와 인도는 걷기에도 좋아 눈으로 바다를 즐기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해가 정수리 위로 걸릴 때쯤 허기가 지면 물회를 먹어야 한다. ‘1박 2일’에서 은지원이 먹고 감탄한 물회로 가장 유명한 음식점이 북부해수욕장 바로 옆에 있다. 함께 나오는 매운탕과 밥 한 그릇이 든든하면서도 그렇게 맛있을 수 없다. 해안가 안쪽으로 줄지은 카페에 들어가 창문 너머로 바다를 보며 커피 한 잔 하는 것도 좋다. 수평선 너머로 포항제철소와 영일만을 보다보면 속이 뻥 뚫린다.날이 더 뜨거워지기 전 다음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북부해수욕장 밖으로 나와 600번 버스를 타고 15분쯤 달리면 오늘의 목적지인 양동마을 입구에 내려준다. 배차간격이 30분이 넘기 때문에 포항버스 어플을 다운받거나 다시 시외버스터미널 앞으로 가 양동마을을 가는 여러 버스 중 하나를 탈 것을 권한다.양동마을 입구 정류장인데 버스가 찻길에 내려준다고 당황하지 마라. 바로 옆에 보이는 철도 길을 따라 길가의 꽃도 보고 간이역도 구경하며 5분 정도 걷다보면 양동마을 입구가 금세 보인다. 주차장과 매표소를 지나면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의 양동마을 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져 현재 남아 있는 4개 고택을 위주로 도는 코스를 추천한다. 서백당부터 시작해서 무첨당, 향단, 관가정까지 돌아 나오는 양동마을 핵심 루트는 왠지 처음 들어설 때보다 나의 자세를 엄숙하게 만들었다.민속촌과 다르게 실제 주민들이 집집마다 살고 있기 때문에 와 닿는 느낌이 다르다. 초가집과 기와집이 섞여있고 마당에는 차가, 빨랫줄엔 수건이 걸려있는 모습까지 사람의 체취가 배여있는 모습이 신기하고 한편으로는 정겹다. 사람들이 걷는 길 가운데로 가끔 트럭과 경운기가 지나가기도 하며 돌담이 낮아 어떤 집은 안이 훤히 보인다. 괜시리 조용하게 되고 슬쩍 보고는 시선을 앞으로 돌리며 걷다보면 무리지어 있는 해설사와 관광객 무리가 보여 슬쩍 끼어 들었다.양동마을은 조선시대에 형성돼 경주 손씨와 여강 이씨 두 가문이 약 500여 년간 대를 이어서 현재까지 살고 있는데, 두 성씨가 사는 것은 굉장히 드문 마을의 유형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선의의 경쟁을 해, 많은 인물이 났던 것 같다고 한다. 웃고 떠드는 이야기에 마을을 내줄 수 없다고 ‘1박 2일’까지 거절한 곳이 양동마을이다. 2010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많은 방문객이 찾아오고 몇 백건이 되는 촬영요청이 들어오지만 한때 인기를 타고 들뜬 관광지로 바뀔까봐 마을 주민들은 교양, 교육 우수 콘텐츠만을 가려내느라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원칙과 올바른 원형보존이 양동마을의 600년 전통을 지키고 있고 관광객들에게 조용히 교훈을 주고 있는 것 같았다. 2~3시간 해설사를 따라 구경하기도 하고 혼자 다니다가 길을 잃어 친절한 마을 주민들의 안내로 다시 아는 길로 나오기도 하면서 마을을 둘러보니 허기가 진다. 마을 입구의 떡메치기 체험을 통해 떡을 먹었는데도 배가 고파 결국 입장 때부터 벼르던 음식점에 들어간다. 담장 너머로 부침개냄새가 솔솔 풍겨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나오는 길에 양동벅스에서 웃는 인상이 좋은 아저씨가 타준 커피 한잔을 들고 경주에서 버스타고 대구로 오면 산책은 끝이 난다.

김보현 기자/kbh12@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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