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부터 낯가림이 심했다. 수업시간에 내게 시선이 집중되는 게 두려워 선생님께 질문해 본 기억도 잘 없고 지나가던 사람에게 길을 물어본 적도 몇 번 없다. 당연하게 발표는 학창시절 내가 싫어하는 활동 1순위를 차지했다. 학창시절 나에게 있어 발표는 피할 수 있으면 최대한 피해야 하는 장애물이었고 실제로 발표한 횟수도 몇 번 되지 않았다. 그 장애물은 몇 년에 한 번씩 모든 학생에게 발표시키는 악마 같은 선생님을 만났을 때 나타났는데 매번 내 차례가 됐을 때 다른 사람들이 내 발표에 비웃지 않을까? 내 목소리가 떨리는 게 느껴지지 않을까? 얼굴이 빨개져 우스워 보이지는 않을까? 라는 걱정을 하며 절대 앞을 쳐다보지 않고 항상 고개를 푹 숙인 채 받아 적은 노트를 읽고 들어가는 게 나의 학창시절 발표의 전부였다. 나에게 있어 좋은 수업이란 선생님은 가르치고 학생은 받아 적는 일방적인 관계였으며 선생님과 학생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인 원어민 수업과 과학 실험 수업은 매년 내가 싫어하는 수업의 1순위를 차지했다. 여기까지 보면 나를 소심하고도 소심한 사람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업을 제외하곤 평범한 학생 아니 그 이상의 활발한 학생이었다. 쉬는 시간엔 항상 웃고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고 점심, 저녁 시간은 친구들과 축구를 하며 나름대로 활발하게 보냈다. 하지만 다시 수업만 들어가면 선생님이 발표를 시키지 않을까 가슴 졸이며 선생님 눈을 피하기 급급했다. 이런 이중적인 내 모습에 때로는 걱정도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막상 대학교를 오자 몇몇 수업은 학생 간 토론으로 진행하고 조 발표로 평가하는 등 장애물이라 생각했던 발표가 주가 되는 수업들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원래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 ‘낯가리는 게 죄는 아니잖아’ 라고 자기위안을 하던 내 가슴 한 켠에는 스스로에 대한 답답함과 자책이 쌓여만 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신문사에 들어오게 됐고 3개월, 6개월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에 철판이 깔리기 시작했다. 캠퍼스에서 가끔 보이는 인터뷰하는 학생들을 보곤 ‘저걸 어떻게 하지’, ‘무슨 말로 대화를 시작하는 걸까’라고 생각했던 내가 지나가던 학생을 아무나 붙잡고 인터뷰를 하게 됐다. 실제로 ‘내가 얼굴에 철판을 제대로 깔았구나’라고 느낀 것은 지난주 금요일이었다. 급하게 섬유와 관련된 회사들의 인터뷰가 필요해서 서대구산업단지를 갔는데 사전약속도 없이 무작정 아무 섬유 회사나 들어가서 인터뷰를 요청하는 패기 아닌 패기를 보였다. 당연하게도 많은 곳에서 사전 약속도 없이 찾아온 나를 보고 비웃기도 했고 바쁘다며 쫓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그 사람들은 내가 낯을 심하게 가리는 학생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다!영화배우 사무엘 존슨은 ?자신감은 위대한 과업의 첫째 요건?이라고 말했다. 현재도 나의 철판은 더욱 두꺼워지고 있다. 나도 내가 어느 정도로 철판이 두꺼워질지 예측하지는 못하겠으나 이런 나의 변화가 내 삶에 있어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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