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가 왜 잘못된 건가요? 더 잘 살 수 있으면 왕정도 상관없다고 봅니다.”얼마 전 TV예능 프로그램에서 잘 나가던 피부과 의사 함익병 씨가 월간조선 인터뷰를 통해 말한 내용이다. 독재는 민주주의 시민의 기본권인 자유권, 참정권, 평등권, 청구권, 사회권을 한 개인에게 양도하고 4대 의무인 국방, 근로, 납세, 교육의 의무만을 지는 것이다. 결국 그의 주장을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노예로 살아도 잘살게만 해준다면 상관없다는 말이다. 그의 인터뷰가 화제가 된 후 세간에서는 ‘함익병’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독재를 찬양하며 노예근성을 가지게 되는 질병을 뜻한다.  개인이 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가지고 자유를 누리며 권리를 행사한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피를 대가로 치르고 세운 민주주의이다. 희생의 역사를 구구절절 말하려면 수십 권의 책으로도 부족하다. 그러나 오늘날 ‘함익병’에 걸린 사람들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더구나 독재를 경험했던 세대뿐만 아니라 젊은 청년층에서도 많이 보인다. 민주주의를 글로만 배우고 체험해보지 못한 세대의 병이라 할 수 있다. 입시의 노예가 되어 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 결과다. 이제 그들이 처음으로 민주주의를 체험하게 되는 곳이 대학이다. 총학생회장을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하고 중대 사안이 있을 때는 학생총회를 통해 논의한다. 총학생회 선거와 학생총회는 대학의 직접민주주의의 꽃이다. 그러나 입시의 노예로 살아온 학생들이 대학생이 된다고 해서 한순간에 민주주의 의식이 고취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 학점 관리하고 놀기 바쁜데 왜 투표를 해야 하는지, 왜 한낮 땡볕 아래 모여야 하는지 이유를 모른다. 한 마디로 여전히 ‘함익병’에 걸려 있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이다.총학생회가 이런 학생들을 설득하여 자발적으로 모이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지 짐작이 간다. 이런 어려운 현실 가운데 작년 4월 총회가 11년 만에 성사되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물론 총회가 이루어지는 과정이나 회의 내용에 있어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학생회 차원에서 신입생을 동원하였기에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로 총회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총학생회와 일반학우들 간에 소통의 문제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장을 마련했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달 8일 몇 가지의 안건을 두고 다시 총회가 있다고 한다. 지난해에 학생총회가 성사된 만큼 총학생회는 보다 많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 할 수 있도록 안건의 내용을 알리고 참여를 독려하는 데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이다. 곳곳에 총회의 일시를 알리는 현수막과 포스터가 붙어 있지만 총회의 목적과 구체적인 안건에 대한 소개가 부족한 건 아쉽다. 물론 복현교지와 SNS를 통해 구체적인 내용을 알리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학생들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학생총회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총학생회는 학생들을 일방적으로 끌어내려 하기 보다는 소통을 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은 관심을 가지고 학생총회에 참석하여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기를 바란다. 나아가 교수를 비롯한 교직원들은 학생들의 정치적 행동을 세상물정 모르는 아이들의 생떼로 치부하고 무시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그런 교수나 교직원들이 있다면 그들이 바로 ‘함익병’에 걸려 있는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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