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의 마음은 대부분 아프다힐링, 테라피, 카운슬링! 요즘 이런 말들이 많은 매체들에서 대세를 이룬다.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철학자 강신주의 ‘감정수업’,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등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누구나 한 번쯤 그 이름을 들어 보았음직하다. 이들은 출판이나 강연 등 다양한 언론 매체들을 통해 몇 년 사이 대중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출판물 베스트셀러를 비롯하여 다양한 강연 등에서도 청중들을 구름처럼 몰고 다닐 만큼 그 인기와 대중에 대한 파급력은 대단하고 그 열기도 식을 줄 모른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삶 속에 감추어진 욕망과 고통으로 신음하지만 좀체 그것들을 해소하거나 치유하지 못하는데, 바로 저들의 노력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일상에 다가와 삶 속 불편과 고통에 귀를 기울이며 공감하려는 아주 섬세한 터치로 여겨졌기 때문에 크게 호응하는 것이다.

2. 마음의 병은 오직 자기반성을 통해서만 치유된다“어떠한 인간의 고통도 덜어 주지 못하는 철학자가 내세우는 주장은 공허하다.” 이 문구는 고대 철학자인 에피쿠로스의 말이다. 철학자가 삶의 고통에 다가서서 그 고통을 해소하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그의 수많은 이론이나 주장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그렇다면 철학이 어떻게 삶의 고통에 주목하고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삶의 고통은 수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철학에서 주목하는 고통은 마음의 고통이다. 우리는 몸의 고통을 치료하기 위해서 외과의사에게 가지만,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정신과의사에게 간다. 더욱이 개인적 배경이나 문화적 습성에 따라서는 더 많은 경로를 통해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려고도 한다. 한편으로는 정신과 전문의가 있는 병원을 찾아 상담이나 ‘약물(Prozac)’ 처방을 받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주나 점과 같은 점술가의 도움에 기대기도 한다. 더욱이 장기적으로는 다양한 종교에 도움을 받기도 하는데, 도심 속 교회나 성당을 찾아 목사나 신부의 설교로 위안을 삼기도 하고, 한적한 산사를 찾아 스님의 설법을 듣고 깨달음을 통한 수행에 희망을 걸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심적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리는 정신과 의사이든, 점술가든, 목사-신부-스님이든 그들의 도움을 구하기는 하지만 결국 심적 고통의 치료는 ‘자기 치유’라는 점이다. 만일 이러한 치료가 자기 치유가 아니라 그들의 진단이나 처방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방식이라면 이것은 일시적으로 효과를 보일지는 모르지만 결국에는 또 다른 문제를 낳기 마련이다.

3. 철학은 합리적 자기반성을 하게 하는 학문이다그런데 이런 자기 치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 가운데 가장 합리적인 방식을 찾는다면 바로 철학적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철학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 삶에 대한 가장 비판적인 시각을 지닌 채 인간 삶의 문제들에 대해 다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이성에 기댄 채 자기 스스로 문제 자체에 직면하여 그 문제의 진상을 파헤치고 그 결과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을 고민하는 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 삶의 다양한 국면들에 대한 다양한 성찰들을 사안별로 아주 세밀하게 연구하고 그 결과물들을 철학사 전체에서 무궁무진하게 축적해두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철학은 더 이상 추상적 사유와 이론에만 머무르지 않고 구체적 일상인의 삶에 다가가서 그의 욕망과 고통에 대한 해소와 치유에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흐름들은 오늘날 어느 정도 표면화되고 있다. 특히 1980년대를 전후로 하여 철학을 단순히 이론을 연구하는 상아탑에 갇힌 학문이 아니라 일상의 구체적 실천 영역에 참여하여 실질적으로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표출되었다. 1981년 독일에서부터 시작된 ‘철학적 실천’이라는 활동이 대표적이다. 이 운동은 유럽뿐만 아니라 북미지역, 심지어 아시아의 일본이나 한국으로도 확산되면서, 대체로 ‘삶의 기예’, ‘철학적 상담’, ‘철학적 치료’ 등 세 갈래 정도의 흐름으로 구체화되었다. 한 갈래는 철학이 일상인들의 삶에 대해서 길을 안내하고 영혼을 살피는 데 주목하는 ‘삶의 기예(art of life)’와 같은 운동이다. 다른 갈래는 ‘철학실천(philosophical praxis)’이나 ‘철학상담(philsophical counseling)’의 활동이다. 마지막 갈래는 철학의 치유적 효과에 주목하는 ‘철학적 치료(philosophical therapy)’나 ‘임상철학(clinical philosophy)’의 움직임이다.

4. 삶의 기예로서의 철학먼저, 삶의 기예는 ‘우리의 삶을 어떻게 성찰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가, 어떻게 아름답게 이끌어 갈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과 연관된 활동이다. 철학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삶의 방법, 삶의 지혜, 삶의 예술’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인간의 구체적 삶의 문제에서 삶을 안내하는 기술이나 지혜를 모색하는 활동에 종사해왔다. 마찬가지로 삶의 기예라고 불리는 활동은 주로 라디오, 텔레비전, 책 등을 통해 대중과 접촉하면서 ‘나는 누구인가, 삶은 의미가 있는가, 감정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등과 같이 매우 일상적이고 평범한 물음들을 쉬운 철학적 언어로 설명하면서 대중에게 다가간다. 전문적인 철학적 고전이나 사상가들의 지식과 지혜를 활용하지만, 대중에게 어렵지 않게 이 지식과 지혜들을 접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그들의 삶의 태도나 입장을 스스로 점검하고 수정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1992년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 시도된 소테(Marc Sautet)의 ‘소크라테스를 위한 카페’처럼 카페, 레스토랑, 공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철학카페와 같은 활동도 있다. 여기에서는 전문적인 철학 지식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나 자신의 삶의 문제를 공동으로 생각하는 계기를 제공함으로써, 공적인 철학적 의사소통을 통해 스스로 생각할 수 있고,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5. 상담학으로서의 철학다음으로, 철학상담 활동은 공식적으로 1981년 독일의 아헨바흐(Gerd B. Achenbach)라는 철학자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1981년 ‘철학실천(philosophical praxis)’이라는 이념을 정립하고 실제로 ‘철학상담센터’를 마련하여 ‘철학적 상담’을 하나의 운동으로 만들었다. 이 운동은 일상의 삶에서 직면하는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개인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을 점검하고, 추론적 사고나 소크라테스적 대화법과 같은 철학적 방법을 통해 내담자의 고통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후 네덜란드 철학실천운동협회의 설립자인 용스마(Ida Jongsma), 미국 뉴욕시립대의 매리노프(Louis Marinoff), 캐나다 프레이저 밸리대의 라베(Peter B. Raabe), 이스라엘 하이파대의 라하브(Ran Lahav) 등 수많은 철학자들에 의해 방법론, 접근법, 기술, 절차, 실천가와 내담자의 관계, 세계관 해석, 치료의 효과 등을 둘러싸고 많은 논쟁을 야기하면서 발전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여전히 철학상담의 정체성 문제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철학적 실천이나 철학적 상담 영역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6. 심리치유학으로서의 철학마지막으로, 철학치료나 임상철학적 활동도 있다. 이 활동은 철학적 활동이 단순히 삶의 지혜나 기술에 그치지 않고 ‘임상(clinic)’에서 철학적 치료를 실천하려는 더욱 구체화된 목표를 갖고 있다. 그 시작은 통상 1971년 미국의 쾨스텐바움(Peter Koestenbaum)에게서 시작되었다고 평가되는데, 그는 의미, 불안, 책임, 소외, 죽음 등 인간의 다양한 실존적 문제들을 다루면서 현상학, 실존주의, 정신의학, 심리학 등 철학과 심리학을 통해 저 문제들을 융합적 시각에서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는 ‘심리치료(psychotherapy)’의 현상학적 기반을 파헤치면서 철학적 치료의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철학치료’라는 용어도 그가 처음으로 사용하였는데, 그는 이론과 실천, 삶의 치료적 기능을 통합하려고 시도함으로써 심리치료에서 심리학뿐만 아니라 철학적 깊이도 더하는 작업을 하려고 한 것이다. 한편, 유럽에서는 21세기 들어 철학적 사유에 근거해 자기 치유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방법으로서 철학적 심리치료가 시도되고 있다. 불안, 의존성, 중독, 자살, 죽음 등 인간 실존의 다양한 고통들을 다루면서 병원에서 행하는 정신치료에 철학을 통합하려고 하는 임상철학이 최근까지도 시도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04년 김영진이라는 한 철학자에 의해 ‘왕따, 잘못된 의리, 잘못된 민족주의, 광신주의, 논리적 모순이나 오류 등에서 생기는 문제’ 등을 중심으로 소위 ‘철학적 병’에 기초해 이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임상철학’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7. 경북대 철학과 BK21+ 사업: 임상철학 창의 인재 양성이와 같은 철학의 실천적 활동들은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더욱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특히 2009년 ‘한국철학상담치료학회’의 창립과 더불어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본교에서도 2013년 9월부터 실시된 한국연구재단의 ‘BK21 플러스 인문사회’ 사업 분야의 일환으로 <임상철학 창의 인재 양성(Education of Creative Human Resources in the Clinical Philosophy)> 프로젝트가 실행되고 있다. 이제 시작 단계이기 때문에 이 영역의 활동 범위와 연구 방법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아직 미흡하여 정체성에 대한 의문과 함께 다양한 논쟁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일상인의 삶의 불편과 고통에 대해 철학의 ‘치료적 본성’을 규명하고 나아가 ‘치료적 역할’에 대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는 활동과 연구를 진행해 나가고 있다. 더욱이 철학이 하나의 치료적 활동이 되기 위해서는 삶의 불편이나 고통에 대한 ‘진단, 처방, 치료’ 등 철학적 방법론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와 관련한 여러 논쟁과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박대원 연구교수(BK21 플러스 임상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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