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보상은 누가 책임져야 할까?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에서 담배회사를 상대로 진료비 반환 청구소송(이하 담배 소송)을 제기했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국민은 건강증진법상의 부담금을 물고 있는데 반해 원인 제공자인 담배회사는 책임지지 않아 사회적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전과 달리 흡연과 질병 발생의 인과관계를 보여주는 건보공단의 빅데이터가 동원되면서, 손해 배상 규모만 530억 대로 예상됐다. 이에 이번 소송이 담배관련 국내 소송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는 점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에 소송의 배경과 상황, 논란에 대한 건보공단의 입장을 들어봤다 ●

지난 26일, 건보공단은 담배회사를 상대로 담배를 30년 이상 태운 폐암, 후두암 환자 3천 484명을 원고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기로 결정했다. 소송대상에는 KT&G, 한국필립모리스, 브리티시아메리칸토바코(BAT)코리아로 확정됐으며 소송내용은 2003년 이후 10년간 건강보험이 지불한 진료비 537억원을 물어내라는 내용이다. 건보공단은 같은 날 홈페이지에 담배 소송을 대리할 법무법인을 모집하는 소송 대리인 선임공고를 게시했다. 착수금은 1억 3천 790만원이며 승소했을 시 성공보수는 2억 7천 580만원에 달한다. 다음 달 11일까지인 공모절차가 완료되면 4월 중 소장이 법원에 접수될 예정이다.

 

한 번도 승소한 적 없는 담배 소송, 왜?이번 건보공단의 소송이 화제인 것은 이것이 국내 최초로 공공기관이 제기한 담배 소송이며 소송가액이나 원고 수가 역대 국내 담배 소송 중 최대 규모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에서 제기된 담배 소송은 총 4건 있었다.모두 개인이 담배회사에게 낸 것인데, 지금까지 원고가 전부 패소했다. 1999년에 2건의 소송이 제기됐으나 1심과 2심에서 패소하고 대법원에 계류된 상태다. 또한 2005년에 1건의 소송이 제기됐으나 역시 원고 패소 판결을 받고 고등법원에 계류됐다. 나머지 한 번은 1심에서 패하자 원고가 항소를 포기했다. 4건의 소송이 패소 ? 계류된 이유는 담배 제조과정에 결함, 불법이 없고 흡연이 질병을 일으켰다는 개인별 인과관계를 증명하지 못했으며, 원고인 개인이 피고인 담배회사만큼의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당시 국내 담배 소송에 대한 법원의 판결의 요지는 ▲담배를 결함있는 제조물로 보기 어려움 ▲담배 제조상 하자 불인정 ▲표시상 결함 불인정 ▲위법행위 사실 불인정 등으로 위법성이 없다는 이유로 담배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흡연과 폐암의 직접적인 인과관계에 대한 적극적 판단도 보류했다.

세계보건기구(WHO) 기본협약에서 ‘담배의 중독성·치명성을 전제로 정부가 담배규제를 위한 공중보건정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는 의무를 부여한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판결이다. 즉 ‘각종 발암물질을 포함한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것은 당연한 전제지만 ‘담배가 폐암, 심장질환 등 생명에 치명적인 질병을 유발하는데 직접적인 원인이다’는 아직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 캐나다 사례로 보는 승소 가능성국내에서는 승소 사례가 없지만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담배 소송에서 승소한 사례가 있다. 미국에서도 개인소송은 전부 패소했지만 소송주체가 정부로 바뀌어 46개 주정부가 담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 결과 1998년 11월 2천 60억(약 220조원)의 배상이 합의됐다. 1999년 연방정부가 담배제조회사인 필립모리스를 대상으로 제소한 사안에서 케슬러 판사는 “담배회사들은 강력한 중독성 물질을 생산·판매해 많은 질병을 일으켰고 이로써 엄청나게 많은 사망과 측정할 수 없을 정도의 개개인의 고통, 경제적 손실을 가져왔다. 그리고 국가 보건제도에 대한 엄청난 부담을 통해 이득을 올렸다”고 기술해 담배회사가 질병을 일으키는 강한 중독 물질을 생산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캐나다는 1997년 ‘담배손해 및 치료비 배상법(담배 소송법)’을 제정하여 2005년 연방대법원의 합헌 결정을 받았다. 담배 소송법이란 진료비 회수에 대해 주정부에 직접적인 소송권한을 부여하고, 역학적·통계적인 방법을 통해 인과관계 및 손해 입증을 인정하며 담배회사들이 자신의 의무위반으로 질병 위험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해야 책임감면이 가능하도록 하는 법률이다. 합헌 결정이 난 이후 이 법률을 근거로 주정부들이 대규모 소송을 진행 중이다. 때문에 국내 전문가들은 담배 소송에서 승소하기 위해서는 관련된 소송법이 우선 제정돼야 한다고 말한다.

빅데이터 기반의 방대한 연구결과가 담배 소송에 힘실어건보공단은 지난 2012년 6월 국민의 진료기록, 건강검진, 자격, 소득·재산, 요양기관자료 등 1조 3천 34억 건의 방대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약 925억 건에 달하는 ‘국민건강정보 DB’를 구축했다. 이를 토대로 연구용 표본 DB도 구축했다. 이러한 DB를 토대로 지난 8월 연세대 지선하 교수 연두팀이 연구한 결과에, 흡연자의 질병 발생위험이 비흡연자 대비 평균 2.9~6.5배 높은 것을 밝혀냈다. 또한 흡연으로 인해 암, 심장·뇌혈관 등 35개

질환에 대한 추가 진료비 지출이 연간 1조 7천억 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는 국민들이 납부한 1개월치의 보험료와 맞먹는 금액이다. 건보공단은 직접 조사한 흡연 피해 및 의료비 부담 연구결과를 근거로 의료비용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후에 개인 원고 소송에서도 사용될 수 있다.

국민을 위한 소송, 그러나 분분한 여론이처럼 이번 건보공단의 담배 소송은 흡연과 암 발생과의 인과관계를 보여주는 빅데이터가 동원된다는 점에서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다. 건보공단의 꾸준한 홍보와 언론보도 덕분에 이번 담배 소송이 알려지고 서서히 여론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건보공단은 건강보험을 운영하고, 건강검진 예방, 장기 요양 업무를 관리하며 보험료 부과 징수, 요양기관 진료비 지급 등의 역할을 한다. 이에 흡연을 예방하고 건강보험 재정에서 지출하지 않아도 될 1조 7천억 가량의 누수를 막기 위하여 소송을 제기했다. 건보공단 측은 흡연자는 담배 한 갑당 354원을 부담하고 비흡연자는 건강보험 가입자로서 1조 7천억 원을 보험료로 각출하는데 비해, 담배회사는 흡연자가 부담한 비용을 마치 담배회사가 납부하는 것처럼 왜곡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공단의 입장과는 달리 여론은 분분하다. 대표적인 몇 가지 의혹은 ▲공단이 승소해서 손실액을 보상받으면 국민을 위해 쓰이는가 ▲막대한 소송비용은 국민 세금인가 ▲패소했을 때의 피해가 크지 않은가 ▲담뱃값이 인상되는가 등이 있다. 이에 건보공단 법무지원실 선임전문연구위원 안선영 변호사는 각각의 의혹에 답했다. 우선 보상에 대해서는 “만일 승소한다면 배상은 보험 업무재정으로 사용될 것”이라며 “공단은 사익집단이 아니므로 기본적으로 공단을 위해 돈을 사용한다는 말은 맞지 않으며 보상으로 후에 보험료 부담을 낮추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고 답했다. 소송비용에 대해서는 “소송비용은 공단의 예산에서 나오는데 공단이 정부기관이므로 세금이라고 할 수는 있다”며 “하지만 금연운동에 드는 비용이나 앞으로 낭비될 금액에 비하면 크지 않다”고 말했다. 패소 시 피해에 대한 의혹에는 “패소를 하면 무슨 이유로 패소했는지가 나올 것”이라며 “이는 담배가 위해하지 않다는 뜻이며, 공단 측의 자료를 무시할 만한 근거가 무엇인지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소송과정을 전문가와 국민이 앎으로써 금연을 홍보할 수 있고 흡연의 진짜 위험성을 국민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 변호사는 “그동안의 소송은 담배 자체에 하자가 있거나 위법행위가 있다는 것을 밝혀내지 못해 패소했는데 이번 소송과정에서 밝혀 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담뱃값 인상에 관해서는 “승소한다면 담배회사의 부담이 커지니까 그 여파로 담뱃값이 오를 가능성은 있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잠잠한 담배회사, 반발은 없나?건보공단에서 엄청난 양의 DB를 구축하고 각종 보도를 통해 소송 준비를 알리는 동안 상대인 담배회사 측은 의외로 잠잠하다. 뚜렷한 입장을 표명한 보도자료조차 보기 힘들다. 담배회사 측 보다는 이익단체의 반박이 나오는 상황이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지난 26일 보도자료를 통해 <담배 소송의 불편한 진실 7가지>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승소를 하든 패소를 하든 국민이 비용 상 덤터기를 쓰게 되며 흡연으로 인한 조기사망이 인정되면 건보공단의 재정과 연금재정에는 이득이 된다는 것이다. 납세자연맹의 발표에 관해 묻자 안 변호사는 “건보공단 측의 자료가 자의적이라는 그들의 주장 역시 임의적인 판단”이라며 그에 대해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했다. 

 

앞으로의 소송 전망은?건보공단이 애초 손실액을 2천 302억 원으로 검토했던 것과 달리 537억 원이라는 훨씬 줄어든 금액을 설정한 것은 2011년 2월 15일에 선고된 서울고등법원의 판결 때문이다. 이 판결에서 흡연과 폐암(소세포암), 후두암(편평세포암)과의 인과성이 추정됐다. 이에 더 높은 승소가능성을 위해 2001~2010년 폐암과 후두암에 걸린 환자들 중 담배가 발병 원인이라는 점이 비교적 분명한 장기 흡연자를 골라 원고로 세웠다. 만일 건보공단이 승소하면 여파는 크다. 건보공단의 자료를 토대로 개인이 담배 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며 공단은 더 큰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이 때 담배회사의 부담은 만만치 않다. 건보공단은 패소하더라도 담배의 폐해에 관한 사회적 경각심을 높이는 효과가 있으며 캐나다와 같은 담배 소송법을 추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수천만 국민의 기호품이지만 그 해로움 때문에 끝없이 논란에 휩싸이는 담배. 이번 소송의 결과로 담배의 직접적인 치명성과 담배 내의 마약과 같은 위법 첨가물이 세상에 밝혀지면 그 또한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심지영 기자/sjy12@knu.ac.kr

참고자료: 흡연피해 구제소송 관련 홍보자료,흡연피해구제운동본부 홍보자료(자료제공 건보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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