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4% 지난해 4년제 대학의 평균 취업률이다. 인문계와 예체능계의 평균 취업률은 50%도 안 된단다. 취업률이 문제라고 온 신문과 방송이 보도한다. 언론은 단순한 통계와 숫자로 매일 불안감을 조성한다. 저 통계 속에 우리들의 이야기들은 사라진다. 올해 취업에 실패한 40%만이 남는다. 언론에서 지적하는 스펙경쟁과 그 경쟁에 뛰어드는 학생들조차 일자리 부족이라는 사회적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대학생들의 몸부림의 결과라는 것도 언론은 애써 침묵한다.

‘이야기가 있는 경북대’ 마지막 기획은 취업준비생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지금까지 언론이 통계와 숫자 뒤에 숨겨놨던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입을 통해 들어봤다. 이 이야기는 당신의 친구, 선·후배의 이야기일 수 있다. 다음의 두 주인공의 이름은가명임을 먼저 밝힌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어제 쓰다가 던진 자기소개서 생각뿐이다. 같은 내용의 복붙(복사 붙이기)이지만 조금씩 고치는 것도 일이다. 취업준비생 이수현(26) 씨는 오늘은 어제와 다를게 없다. 취업이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아직 준비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오늘은 출석 스터디의 첫날이다. 마음을 잡고 공부하기 위해서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들어갔다. 부랴부랴 준비해서 도착했는데 모이기로 한 중도 신관 1층에는 아무도 없다. 3분까지 기다려 주고 각자 갈길 간다더니 진짜였다. 다른 스터디와 다르게 아침에 얼굴만 확인하고 헤어지니 교류가 있고 싶어도 있을 수 없는 스터디라는 생각을 하며 이 씨는 공대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 씨는 공대 8호관의 지하 1층에 있는 도서관에서 늘 공부를 한다. 뒷문으로 들어가 제일 구석 테이블 두 번째 자리는 이 씨의 지정석이다. 자리를 잡고 앉아 어제 수정하던 자기소개서를 펼친다. 글 쓰는 건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수정하던 자기소개서를 덮고 SSAT 문제지를 펼친다. 시간 싸움인데 눈이 자꾸 감긴다. 출석 스터디 때문에 평소보다 빨리 나와서 그런가 하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잠깐 엎드려 눈을 붙인다.

오전이 가기 전에는 바른주차봉사단 일을 위해 수의대 앞에 가서 인도를 막고 있는 차에 스티커를 붙인다. 나름의 사명감을 갖고 하는 일이라 성실히 일을 마무리 한 후 이 씨는 공대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간다. 6년째인 이곳은 지겹지도 않다. 밥은 그때 그때 시간 되는 친구들과 먹는다. 오늘 같이 먹는 과 친구는 공기업을 준비한다. 감자조림을 먹으며 취업도 취업이지만 외롭다는 얘기를 한다. 수다는 각자의 자기소개서에 대한 걱정에서 언제나 연애로 빠진다. 부른 배와 여자 얘기는 늘 상쾌하다. 하지만 다시 친구와 헤어져 도서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쓸쓸하다.

햇살 따스한 가을의 어느 날 1시, 공부가 될 리 없다. 이거 조금 저거 조금 하다가 답답해서 도서관에서 나왔다. 사실 오늘은 두산그룹 서류발표가 나는 날이다. 긴장이 돼서 공대 5호관 뒤편의 철봉에 매달려 턱걸이를 좀 하다가 벤치에 앉아 핸드폰을 집었다. ‘사람이 미래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는 두산은 인성시험이 1차 시험이다. 제일 열심히 준비한 기업인데다가 첫 발표라 기대를 했지만 ‘탈락’이라는 글이 핸드폰 화면에 뜬다.

가만히 앉아있는 이 씨의 표정이 멍하다. ‘내 인생이 별로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뭐해? 저녁에 술이나

한 잔 할까? 아, 일 있다고?

그래 그래, 바쁠 때지. 열공해”

친구들을 불러 술 한 잔 할까 했지만 다들 안 된다는 답만 돌아왔다. 도저히 공부가 되지 않을 것 같아 가방을 싸들고 집으로 향했다. 캔맥주와 과자 한 봉지를 사서 집에 들어오니 아무도 없었다. 라면을 끓여 먹고 컴퓨터를 켜 기업정보를 찾아보며 맥주를 마신다.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다. 하룻밤이 지나 아침이 오면 다 괜찮을 것 같다.

작년 겨울 쯤 친형과 술 한 잔 하는데 4살 위의 형이 눈물을 보였다. IMF 이후 집안이 기울어 형편이 힘들어진 이후 형은 집안을 책임져 왔다. 맏이로서 묵묵하게 가족을 받쳐오던 형이었기에 이 씨는 몰랐다. 형이 그렇게 힘들었는지. 그날 하루 만에 철이 들었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취업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돌이켜보면 중학생 때는 인문계도 못 갈 성적이었다. 주변 따라서 열심히 열심히 하다가 대륜 고등학교에 가서 고 2때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성적을 조금씩 조금씩 올려 대학도 왔다. 집에서는 이 씨가 선생님이 되길 원했다. 하지만 그는 싫었다. 그래도 경북대는 가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이 씨가 되고 싶던 건 소방관이다. 특별한 사건이나 계기 없이 처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일이다. IT대 전기과라는 전공과도 무관하고 남들도 기피하는 직업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하고 싶었다. 남들을 위해 일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 큰 욕심 없이 내 몸 뉘일 곳과 하루 세끼 굶지 않으면 된다. 나와 내 꿈을 이해해 주는 여자가 생기면 결혼하고 안 생기면 뭐 굳이 일찍 남들과 같은 시기에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 

다시 또 하루는 시작된다. 전날 마신 캔맥주 때문에 늦잠이다. 10시 40분쯤 몸을 일으켜 쓰다 만 이수그룹 자기소개서에 다시 눈을 둔다. 자기소개서는 다 비슷비슷, 하는 얘기가 다 비슷비슷하다. 자전거여행, 취미는 운동, 학년대표, 동문회, 동아리... 계란 하나와 사과 한 쪽을 먹고 동네 한 바퀴 돌고 학교로 향한다. 걸어서 15분이다. 지나가다가 같은 과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특채로 합격발표를 받고 마지막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다. 이번 시즌에 기업에서 전기과만 동기 3명이 특채로 붙었다.

“걔가 열심히 해서 된거지.

나는 열심히 안했고.

내가 가고 싶던 회사는 아니야.

그래도 마지막 대학생활

재밌게 즐기는 거 보면

부럽긴 하지.”

쿨하게 얘기하지만 말 끝이 씹힌다. 가볍게 걷지만 별별 생각이 든다.

공대 도서관 지정석에 앉아 가방을 내려놓는다. 오늘 저녁에는 4학점짜리 전공수업 하나와 동아리 후배들과의 저녁 약속이 있다. SSAT문제를 푼다. 언어가 약한데 이번부터 언어영역 비중이 늘어서 걱정이다. 시간을 재면서 풀고 펜을 놓는다. 잠깐 페이스북을 본다. ‘뭐 재밌는 건 없나, 오늘 저녁은 뭘 먹나.’ 생각한다.

눈을 떠서 밥을 먹으며 신문을 보는데 이번 KT의 공채 경쟁률이 1000대 1이라는 기사가 먼저 보인다. 6백 명 뽑는데 2만 명이나 지원했다는 내용을 보니 힘이 빠진다. 취업준비생은 기사도 그런 기사만 보인다. 신문을 덮고 일어난다. 다시 똑같은 하루의 시작이다.

유독 오늘따라 도서관이 커 보인다. 휴일인데 사람이 많다. 신관 지하 열람실에 자리 잡고 오전 내내 자리를 뜨지 않는 그는 대구대 금융보험학과 학생이다. 그의 고향은 밀양이고 아래에 6살 차이나는 동생이 하나 있다. 두꺼운 SSAT 문제지에 적힌 그의 이름은 최윤석(27)이다. 지금은 휴학을 하고 경북대 북문에서 자취를 하며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주섬주섬 정리하고 일어난다. 11시쯤 아점(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보통 정보센터식당에 가거나 집에 가서 먹는다. 요새는 집에 가면 나오기 싫어져서 그냥 학생식당에서 사먹는다. 사람을 만나 먹는 것도 시간이 많이 걸려 일부러 혼자 먹는다. 먹으면서 오전에 공부한 경제 용어를 실생활에 비교해본다. 경제적인 마인드를 기르기 위해 수요공급 효과를 다양하게 연결시켜 본다. 밥이 맛이 없다. 

다시 도서관에 들어와 앉는다. 아까 풀던 문제지를 덮고 자기소개서를 펼친다. 남들은 서른 개씩 낸다고 하는데, 최 씨는 열 개도 내지 않았다. 쓰는데 걸리는 시간도 아깝고 서류 넣은 곳이 탈락하면 마음이 흔들려 집중이 안 될 것 같아 그렇게 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부터 골프장, 막노동, 호프집 서빙까지 오만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기업 인턴 활동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던 일들을 떠올리는데 도대체가 한 줄기로 모아지지 않는다. 경험이 자산이라는 컨셉을 잡았는데 생각만큼 글이 잘 풀리지 않는다. 머리가 아파 밖으로 나온다.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여자 친구는 부산에 위치한 병원에 있다. 3년 조금 더 사귀었는데 올 초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얼마 전에 조혈모세포이식을 받았는데 다른 사람 것을 넣은 거라 많이 힘들어 한다. 어제 여자 친구를 보고 왔다. 하루 갔다 오면 생활 패턴이 다시 잡히기까지 시간이 걸려서 자주 못 간다. 오랫동안 아프니 ‘힘내’라는 말을 싫어해서 괜히 장난을 친다. 애정표현도 한다. 전화를 끊고 더 열심히 해야지 더 잘해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힘은 빠진다.

다시 들어와 책을 펼친다. 금융권에 취직하려 하는데 왜 중·고등학생 때 하던 공부를 다시 하는 느낌인지 모르겠다. 오전에 푼 문제를 풀이 하다 시계를 보니 4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잘될 때는 2~3시간을 정신없이 하는데 안 될 때는 자꾸 시계가 보인다. 토익공부도 미리 해놓지 않으니 이제 오니까 발목을 잡는다. 최 씨는 토익이 취업 말고 본인에게는 필요 없는 점수라고 생각했었다. 그때부터 회의감이 들더니 토익책만 펼치면 너무 싫었다. 그런데 막상 취업준비를 하려니까 커트라인으로 들어가는 현실이 와 닿아 조금은 후회한다. 토익도 면접 준비도 자기소개서도 할 게 많다.

‘만약 취업이 안 되서 학교를

일 년이나 한 학기 더

다니게 되면…’

하는 걱정이 자꾸 든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아놓은 돈으로 지금까지는 집에 손을 안 벌렸지만 이제는 그것도 끝나간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노력하는 만큼 성과가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최 씨는 생각한다. 이상적인 자신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끊임없이 지금의 자신을 비교해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려고 하지만 한 번씩 지친다. 자기와의 싸움이지만 앞이 너무 불확실해 센 척이 쉽지 않다.

새벽 1시 반. 온 학교가 깜깜하다. 집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이 세상만큼 어둡다. 억지로 어깨에 힘을 주고

“나는 이 세상 누구보다 

똑똑하다. 다 잘 될 것이다” 

소리 내서 주문을 외운다.

“말을 하도 안하다가 하니까 입이 꼬이네” 하며 작게 웃는다. 찬바람이 분다. 이젠 밤공기가 차다.

그는 합격을 하고 나면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여행을 다니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야기를 하고 그 내용들을 블로그에 담을 것이다. 그가 쓴 개개인의 스토리는 그 사람들에게 선물이 될 것이다. “불안하지만 불안하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그의 블로그 제목이 꿈이 있는 세상 모든 취업준비생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다.

김보현 기자/kbh12@knu.ac.kr

저작권자 © 경북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