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학 서문 근처의 ‘어색하지 않은 창고’를 아시는가? 이곳에서는 경대를 졸업한 두 남자가 조용히, 브라질 나비의 날갯짓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사람과 사람의 가능성 사이에 다리를 놓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사회적기업 ‘아울러’의 두 남자 박성익 링커(농생대 임학 04), 김재훈 링커(공대 금속신소재 04)를 만나보았다. (LIinker: 사람과 사람사이를 연결시키는 사람)●

‘사람도서관’을 아시나요?책을 빌렸는데 책이 스스로 말도 하고 걸어다니기도 한다면?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사실 ‘사람도서관’ 이야기다. 사람도서관은 덴마크 출신의 사회운동가 로니 애버갤이 ‘LIVING LIBRARY’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도한 프로젝트로, 책 대신 ‘사람’을 대여해주는 도서관이다. ‘아울러’에서는 현재 ‘사람책’을 대여해주는 사람도서관을 운영중이다. 사람책은 대여섯 사람과 함께 자신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를 이야기한다. 사람과의 상호 대화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사람도서관의 가장 큰 장점이다. 현재 ‘아울러’에서는 80명의 사람책이 활동하고 있으며, 주로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의 멘토가 되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람도서관 문을 열다박성익 링커가 한순간에 사람도서관을 생각해낸 건 아니었다. 10대 때 잠깐 방황을 했던 박 링커는 책에 관심을 가지면서, 책과 관련된 곳을 여행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그는 교육이나 상담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람에 의한 변화를 느꼈다. 그리고 이걸 나누고 싶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박 링커는 한 권의 책을 만나게 됐다. 바로 ‘런던에서 사람책을 읽다’. 이 책은 그에게 ‘사람책’이라는 흥미진진한 소재를 제공했다. 그리고 그는 2011년 4월 1일 본교 사회대 학생회실에서 인도 오르빌 공동체에서 4년을 보낸 사람, 생태적인 삶에 대한 애정을 가진 미국인 영어강사, 여성 인권의 회복을 주창하는 사람 등 다섯 명의 사람책으로 최초의 사람도서관을 개장했다.

사람도서관 2년, 달라진 사람들박 링커가 정말 놀랐던 건, 사람책을 들었던 사람들이 갑자기 여행을 떠나고 뜬금없이, 자퇴를 하기도 하고, 공동체를 만들고 전혀 의도치 않은 선택들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는 “그 사람(책)들을 만날 때, 자기와 전혀 다른 영역의 사람들을 만나거나, 혹은 자기 영역에 있지만 듣지 못했던 속깊은 이야기를 들으니까 그걸 통해서 새로운 자극이 되었던 것 같아요. 멀리 연단 위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그 속에서 새로운 변화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나도 할 수 있겠다 나도 새로운 걸 느껴보고 싶다라는 게 더 와닿았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사람도서관, 사람책이 좋은 이유는?박 링커는 사람책의 가장 큰 매력으로 현장감과 감성의 교감을 꼽았다. “저는 이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화법이라고 불러요. 당사자가 본인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당시 이야기를 할 때 좀 더 현장감 있는 액션과 목소리 톤, 눈빛 이런 것들이 살아있으니까 더 와닿는 측면이 있어요” 사람책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상민(사회대 사회복지 11) 씨는 “책은 글자가 항상 똑같잖아요. 근데 사람책은 주제는 같지만, 항상 상황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져요. 제 경우에는 독자층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여자분들이 많으면 다이어트 이야기를 많이 하고, 남자분들에게는 군대 이야기, 고등학생들에게는 저의 편입이야기를 통해 수능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요. 이렇게 말하는 포인트가 달라져요. 이런 ‘생동감’이 장점인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이 사람책이 될 수 있을까“누구나 될 수 있다. 다만 출판 시기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말 그대로 사람책은 누구나 될 수 있다. 자신은 평범하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에겐 새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자기 이야기를 오픈할 준비가 되어 있고,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만큼 정리가 잘 되어 있어야 한다. 사람책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박 링커와 사전 미팅을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확인해 보는 작업이다. 이때 자신의 책 제목 목차 머리말을 쓰면서 자신의 인생을 한번 되돌아보게 된다.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거나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출판 시간은 길어진다. 아울러의 역할은 개인의 공개되지 않는 스토리들을 이끌어내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누가 이야기를 듣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듣는 사람보다 말하는 사람이 더 좋아지는 사람책사람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듣다 보니 오히려 사람책을 듣는 사람보다 사람책이 되는 사람이 더 의미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책으로 활동중인 은창배(공대 화학 08) 씨는 “여태까지 살아온 걸 한번 짚어보고, 옛날에 느꼈던 감정을 되새김질하면서 내가 받은 좋은 느낌들을 사람들한테 전달할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박 링커는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 생각하는 것과 표현하는 것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어요. 표현을 하려고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게 변형을 시키다 보면 좀 더 정돈되고, 객관적으로 보게 돼요.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돼요.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람책을 읽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하다보니까 ‘사람책’ 본인들이 더 좋아하는 경우를 많이 봤죠” 또 “여담이긴 한데, 대부분의 20대들은 자기의 삶을 미래에다가 맞추는 것 같아요. 자기를 이루는 건 내가 뭘 경험했고, 좋아했는지 그런 과거의 것들로부터 오는 건데 말이죠”라고 말했다.

사람책은 사람책을 낳는다‘아울러’는 사람을 통해 다른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가는 힘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람도서관에서는 사람책을 통해 ‘이 사람의 가능성은 무엇일까?’ ‘우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우리가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내 마음만 기분좋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을 찾아나가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이 사람들을 이어주는 것이 Linker인 박성익 씨와 김재훈 씨의 일이다. 사람책을 경험했던 이들은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또다시 사람책이 되곤 한다. 당신도 한번 ‘사람도서관’에 와서 사람책을 대여해본다면 언젠가 사람책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해주고 있지 않을까?

박진 기자/pj12@knu.ac.kr

우리 대학 서문 근처, ‘어색하지 않은 창고’

‘어색하지 않은 창고’는 어떤 공간일까?어색하지 않은 창고는 ‘아울러’의 사무실 겸 카페로 운영되고 있는 공간이다. 처음에는 경북대 연극부가 쓰던 공간이었는데. 주인이 계속 바뀌면서 결국 지금 ‘어색하지 않은 창고’의 멤버는 박성익 링커와 김재훈 링커 씨가 됐다. 그러다가 2013년 9월 9일 일반 음식점으로 변경하면서 본격적으로 술도 마시고, 차도 마시면서 공연하는 공간으로 변화했다. 현재 창고의 고정적인 프로그램은 매주 넷째 주 목요일에 하는 ‘사람도서관 정모’가 있다. 사람책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모시고 좀 더 규모를 크게 해서 뒷풀이처럼 모이는 모임이다. 또 매주 월요일에 ‘인문학 스터디’를 한다. 참가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환영이다. 얼마전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에 출연해 3개월 동안 다양한 경험을 하고 온 김 링커는 또 새로운 것들을 구상중이다. 예를 들면 ‘학교 밖 학교’ 같은. 누구나 배우고 싶은 것, 혹은 가르치고 싶은 것들을 들고 오면 그 강좌가 개설되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만남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시간이 멈춰 있는 곳’, 서문에 위치한 창고사실 경대 서문은 상권이 많이 위축된 동네다. 김 링커는 그 점을 긍정적으로 활용했다. 상권을 활성화시키고 싶은 마음이 생긴 거다.(물론 안되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도서관도 좋고, 상인들에게도 좋은 일이니까. 금전적인 이유도 있다. 서문이 다른 곳보다 임대비가 저렴하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기도 했다. 북문의 경우에는 사람도 많고, 북적북적하다. 금전적으로도 비싸고. 북문 같은 번화가에 비해, 서문은 어찌 보면 ‘시간이 멈춰있는 곳’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아날로그적인 향수를 간직한 곳. 그가 생각하는 서문만의 느낌이다.

사회적 기업인 ‘어색하지 않은 창고’의 수익은?현재 고정 수익의 대부분은 방과 후 프로그램에 들어가서 얻는 수익과 카페다. 후원에 대한 부분도 생각하고 있다. 개인사업자지만 사회적 지원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사실 사회적 기업이기 때문에 수익창출 부분에 관해서는 부족할 수 있지만, 김 링커는 여러 방면에서 기획하고 있는 것이 많다.‘사람도서관’ 수업을 여는 사람이 대관비를 마련한다든가, 공간의 임대비를 받는다든가 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 참가하는 사람들이 참가비 명목으로 차를 마셔서 수익을 발생시킬 것, 또는 강의하는 강사진과의 협의 등. 일종의 커리큘럼으로 개발해서 학교의 취업이나 캠프로 연대해서 하루 짜리 프로그램 연결하면 또 다른 수익구조가 될 수도 있겠다. 더 많은 생각을 해봐야 될 것 같다. 나중에는 월드컵 때 빔 프로젝터로 영상을 창고에서 관람하면서 서포터즈 활동도 기획하고 싶다고 한다. ‘수익을 우선해야 할지 가치를 우선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어느 것을 우선시 하느냐에 따라 형태가 많이 바뀔 것 같다. 기대가 되는 3월이다.

‘어색하지 않은’ 창고, 사실은 좀 어색해!사실 ‘어색하지 않은’ 창고의 또 다른 이름은 ‘어색창고’다. 다른 카페와는 다르게 어쩌면 필연적으로 어색함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냥 커피만 마시고 나가면 되는, 주인과 손님 사이에 아무 관계도 형성되지 않는 가게가 아니라서이다. 살짝은 좁고 무슨 아지트처럼 꾸며진 가게는 들어오는 사람을 당황하게 하기도 한다. 김 링커는 아직도 생각하면 정말 미안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작년 9월쯤, 간판도 걸고 카페처럼 꾸며 놓았는데, 어른 두 분이 오셨다. 그때 하필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오셔서 굉장히 어색했다. 그래서 ‘커피 드시고 가시라’고 했지만, 내심 놀랐다. ‘커피집인 줄 알고 들어왔는데, 죄송하다. 나가겠다.’ 해서 나가신 분들이 기억에 남는다. 다시 오시면 잘해주고 싶다.

하지만 누구나 처음은 어색한 법 아닐까? 어색하지 않기 위해 어색한 것을 정면으로 부딪치는 ‘어색창고’는 그래서 기대를 하게 만든다. 이곳에서 하려는 새로운 시도들은 전부 처음 접해보는 것이니 낯설고 어색하다. 과연 앞으로 어떤 ‘어색함’을 통해 ‘어색하지 않은 창고’가 될까?

기희경 기자/khk13@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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