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의 신입사원 채용방식이 눈에 띄게 바뀌고 있다. 며칠 전 ‘직무적성검사’를 치른 S그룹은 1차 합격자들을 대상으로 '열린 면접'을 실시한다고 한다. 획일화된 스펙이 아닌 지원자의 잠재능력을 보겠다는 것이다. 지난 8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180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대졸 신규채용과 스펙의 연관성’을 조사한 결과는 그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전체의 46.1%가 ‘도전정신과 열정’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은 반면, ‘다양한 스펙’은 1.1%였다. 실제로 작년(2012) K은행은 입사지원서에 스펙 난을 없애고 ‘문학·역사·철학 등 인문 분야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통해 상상력·통찰력·창의력을 향상시킨 경험을 써라’고 요구하였다. 지원자의 잠재능력과 도전정신, 열정을 중시하는 이런 경향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잠재능력과 도전정신, 열정을 기르는 확실한 방법은 무엇일까? 그 답은 역시 풍부한 독서경험의 함양이다. 최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책이 일자리다’라는 기치 하에 마련했다는 ‘독서면접 매뉴얼’은 대학의 독서교육 방식에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을 요구한다. 이 매뉴얼의 핵심은 읽기 역량 강화이다. 한 마디로 ‘많이 읽어라’는 것이다. 투입(input)이 있어야 산출(output)이 있듯이, 잘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어야 한다. 시카고 대학의 유명한 ‘시카고 플랜’이라는 것도 결국 많이 읽히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 대학이 노벨상 수상자를 80명 넘게 배출한 명문대학이 된 데에는 인문·사회 고전 100권을 달달 외울 정도로 읽히는 ‘시카고 플랜’ 덕이었다고 한다. 근년 들어 국내 대학들도 ‘독학’(독서하는 학생)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가동하고 있다. 영남대는 2010년부터 「명저 읽기와 글쓰기」를 교책과목으로 지정, 재학생 전원에게 고전 읽기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현재 우리 학생들이 책을 읽는 -이른바 ‘고전’은 더욱 그렇다- 목적은 독후감을 쓰기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책읽기는 이미 즐겁고 재미난 일이 못된다. 독서삼매경에 빠져 즐거워야 할 책읽기가 피곤한 숙제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다. 대학교육은 급변하는 작업현장과 사회현실에서 학생들이 중심을 잃지 않고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지적 내공을 키워주어야 한다. 이 지적 내공을 키워주는 것이 바로 폭넓은 독서이다. 그러나 이 지적 내공은 숙제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하에서는 키워지지 않는다. 자유롭고 풍부하게 읽어야 지적 내공이 키워지고, 지적 내공이 커져야 좋은 글이 나온다. 하늘에서 곤륜산을 타고 내린 차가운 물이 사막 한가운데 몇 천리 잠류하여 없어진 듯하지만 마침내 황하 9천리의 대역사를 이루듯이, 깊이 있는 생각과 독창적인 콘텐츠, 훌륭한 글은 이 몇 천리의 잠류처럼 깊고 넓은 독서에서 나온다. 이것이 21세기 진정한 경쟁력의 원천이요, 종지 같은 인재가 아닌 항아리 같은 인재의 원천이 된다.  읽기 운동을 혁명적으로(!) 확산·심화시키는 방안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예컨대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는 문구를 재해석하여 인문·사회·자연 등 각 영역별 총합 100여 책의 요약본이나 해설서가 아닌 원본을 통독하게 한 뒤 전체를 다 읽었느냐의 여부만으로 독서인증을 해 주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독서인증 교수/강사는 해당 서책의 전공자를 포함하여 그 서책에 특별한 관심이 있거나 조예가 깊은 교수/강사로 위촉하면 될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법리적인 관점에서 읽을 수도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독서의 계절 가을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이제는 봄·여름·가을·겨울 두루 독서의 계절이 되어야 한다. 대학 독서교육의 획기적인 혁신은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학생들의 노력뿐만 아니라 대학당국의 비상한 정책적 분발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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