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 문제로 시끄럽다. 학계, 교육계, 언론계, 정치계가 역사 교과서 문제에 올인 하며 이전투구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갈등은 이미 학술적 논쟁의 단계를 훌쩍 뛰어 넘어 정치적 대결로 치닫고 있다. 역사학은 더욱 더 정치화하고 정치는 다시 역사화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어떠한 사회든 역사 해석을 둘러싼 갈등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한 사회의 구성원이 모두 똑같이 생각할 수 있겠는가? 민주적인 사회라면 다양하게 해석하고 서술하게 하되 서로 다른 해석과 서술 사이에 공통분모가 확대되도록 갈등을 제도화해야 할 것이다. 한국사 교과서가 국정에서 검정 체제로 바뀐 것도 우리 역사에 대한 다양한 서술과 풍부한 해석을 가능케 하려는 것으로, 개발독재시대의 국가주의 역사학을 극복하는 민주화 과정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검정 체제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검정 통과가 보여주듯 대단히 불완전한 제도로 판명되었다. 교학사 교과서는 사실 관계의 오류, 사료의 잘못된 인용, 출처의 부정확성 등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심지어 인터넷 자료를 베껴다 쓴 표절 의혹도 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일제의 수탈보다는 개발을 더 높게 평가하고, 친일행위를 미화하며, 분단국가의 수립과 이승만 독재를 건국의 불가피한 과정으로 옹호하고, 5.16군사쿠데타와 유신독재를 정당화하는 서술 태도다. 이것은 독립정신과 민주주의라는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러한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교학사 교과서는 이러한 상식을 깨고 버젓이 검정을 통과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인가? 먼저 한국사 교과서 검정 과정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있지 못한 점이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사 교과서 검정 권한은 형식적으로는 국사편찬위원회에 위임되어 있지만 교육부는 언제라도 검정 과정에 개입할 수 있다. 국사편찬위원장은 임명권자인 교육부장관과 대통령 등 권력의 의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의 집권세력은 역사교과서 문제를 정권 안보 차원에서 바라보고 있다. 이들은 기존의 한국사 교과서가 모두 좌편향이고 교학사 교과서만이 우리 근현대사를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고 본다. 집권세력이 역사 서술을 정권 안보의 수단으로 취급하는 상황에서 교과서 검정은 역사 외적인 정치적 결정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검정 과정 자체의 제도적 결함도 지적되어야 한다. 전문가들이 시대별로 사실 오류나 서술의 편파성 등을 꼼꼼히 검토하는 연구과정의 결과가 이후 검정과정에서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 교학서 교과서는 연구위원들의 검토 과정에서 400건의 수정보완사항이 지적되고, 서술의 편파성 때문에 국론의 분열을 가져올 것이라는 위험성이 지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검정 심사를 통과했다. 검정위원들이 연구위원들의 연구결과를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최종 결정이 이루어지는 검정심사 과정이 공정하게 관리되지 못한 것도 문제다. 검정위원의 선정과 검정결과 등을 일정 기간 공개해서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생략된 것이다.한국사 교과서 문제를 둘러싸고 주기적으로 우리 사회가 지불하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문제의 핵심은 역사적 논쟁이 역사학자들과 역사교사들의 학술적 토론의 장을 넘어 정치화된 데 있다. 정치권력은 역사학을 정치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치로부터 독립된 공정한 검정 제도가 확립되어야 한다. 뉴라이트 역사학자들도 정치권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사회화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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