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말썽이다. 고이즈미-아베로 이어지는 보수우경화의 노선이 급기야 이웃국가 한국을 ‘적’으로 만들고 있다. ‘적대감 보존’이라는 정치적 냄새가 진하게 풍기지만 중요한 것은 무관심하던 일본시민들이 현혹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변에서도 우려가 크다. 최근 G20정상회의에서 시진핑도 아베에게 ‘역사를 똑바로 보라’고 잔소리했다. 다혈질 아베가 묵묵히 듣고 있었던 것을 보면 일본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반하장, 좌충우돌 시비를 거는 것은 일본이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다.당장 드러난 문제 중의 하나가 일본열도에서 발생하는 자연재해들이다. 동 일본 지진 이후 후지산 이상 징후, 사쿠라지마 화산폭발에 이어 간토지역에서 ‘일본 토네이도’까지 발생했다. 문제는 이들 자연재해로 인한 영향이다. 지진으로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누출로 한국, 중국, 대만, 유럽 등이 일본수산물 금수조치를 취했고, 2020년 올림픽 유치전에서도 방사능처리문제가 이슈였다. 중요한 것은 누구든 을(乙)이 될 수밖에 없는 자연재해 앞에 일본도 속수무책이라는 점이고, 더 잦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인접국관계 역시 미궁에 빠져있다. 역사 이래 도서국가 일본의 생존방식은 약탈이었다. 절정에 달한 것이 한반도 점령과 만주침략, 그리고 태평양전쟁이었다. 무수한 인접국 양민들이 희생되었다. 문제는 최근 그 업보가 독도문제, 위안부문제, 조어도 분쟁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고 아베내각이 정치적 목적으로 이를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일본은 아시아국가 모두를 상대해야 하는 중과부적,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그 동안 전범국 일본이 누렸던 ‘면죄부’가 무용해지고 있다. 한국전쟁 와중에 ‘반공의 전초기지’ 역할을 자청하면서 받아들인 샌프란시스코체제의 틀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붉은 적’ 소련이 해체되고, 중국이 개방되고, 마지막 남은 명분인 북한마저 변화조짐을 보이고 있다. 결국 소련방어, 중국봉쇄의 전략기지로서 가치가 소멸되면 일본은 홀로서기를 하든지 새로운 주인을 찾아야할 처지가 되었다. 한때는 아시아 최강제국을 꿈꾸던 일본, 참으로 답답하고 자존심 상하는 노릇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차대한 문제가 있다. 바로 일본 자신의 문제이다. 침묵 속에 잠재된 죄의식이 자연재해의 원인과 결부되어 ‘업보’라 인식하게 되는 우려이다. 이것은 자칫 궁지에 몰리고 겁에 질린 일본을 자학, 자포자기로 몰고 가서 공격적 패륜을 저지르게 할 수도 있다. 일본에 실망한 일본인들, 특히 자긍심과 정체성을 상실한 젊은 세대들의 일본이탈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면 일본열도는 폐허, 무인도가 된다.이러한 상황은 우리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 우선 일본은 우리의 동해, 독도의 방파제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고, 건실한 경제파트너이다.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의 경험을 반추하면 여전히 일본은 우리에게 중요한 환경조건이다. 당면 문제가 역사청산이라면 사안을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국가와 국가의 관계는 ‘이익’이 핵심이다. 정상적인 국가관계는 정치적 ‘이익’이 아니라 경제적 ‘이익’을 거래하는 것이 정석이다. 이번 G20정상회의에서 아베가 오바마, 푸틴, 시진핑을 비롯한 BRICS의 대표들을 가리지 않고 만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일본에게 남은 것은 자존심도 체면도 아니다. 오직 ‘이익’이다. 우리 대한민국도 ‘한강의 기적’을 넘어 ‘한국의 기적’을 만들려면 최소한 인접환경 일본을 ‘적’이 아니라 ‘도구’로 활용하는 배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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