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2014년 3월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싱그러운 웃음소리가 일청담 분수처럼 솟아오르고, 교정에는 생동감 넘치는 젊음이 가득하다. 봄빛 감도는 3월의 대학은 빛나는 열정으로 달아오른다. 구조개혁이다, 취업 전쟁이다, 부대끼는 삶의 현실 속에서 경북대학교는 청운의 꿈을 품은 청년들을 맞이하여 또 하나의 새로운 봄을 열었다. 교정의 온갖 나무들도 이들에게 마음을 열고 봄 햇살을 받아 새싹을 금방 틔울 듯하다. 

우리 학교 교정에는 소나무, 느티나무, 회나무, 양버즘나무, 벽오동나무, 벚나무, 마로니에, 은행나무, 왕버들, 느릅나무, 삼나무 등 이러저러한 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다. 그런데 학교가 깔고 앉은 지반은 퇴적암인 청석이 대부분이어서 표토층의 토심(土深)이 아주 얕다. 거름기를 안은 흙이 얕다보니 나무뿌리가 넓고 깊게 퍼져나가지 못하는 곳이 많다. 이런 지질 탓으로 나무들이 거목(巨木)으로 자라기가 쉽지 않다.

이런 사정은 우리 대학뿐 아니라 대다수의 타 대학도 마찬가지다. 교정에 거목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대학을 찾기란 쉽지 않다. 거목이 자라려면 깊은 토심뿐 아니라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의 대학들은 거의 대부분 그 역사가 100년을 넘지 못한다. 대학 교정에서 거목이 자랄 만한 세월이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한국의 많은 대학들은 캠퍼스를 새로 조성하거나 옮기는 바람에 유서 깊은 역사의 향기와 웅숭깊은 품새를 가진 교정을 가꾸지 못하였다. 

우리 경북대는 그나마 옛 터전을 지키며 한 자리에서 성장해 왔다. 건물은 많이 바뀌었고, 초창기의 옛 기품을 간직한 건물은 본관과 박물관 건물뿐이다. 사범대 구관은 많이 변형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옛 정취가 남아 있다. 야외 박물관의 남쪽 잔디밭에 서 있는 느티나무, 교내 도로변의 벚나무와 양버즘나무들은 학교와 세월을 같이 한 나무들이다. 출판부 건물 주변의 소나무, 쥐엄나무, 참나무들은 우리 학교가 들어서기 이전부터 그 자리에서 자라고 있었던 소중한 나무들이다. 

경북대와 세월을 같이 한 나무들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의 눈길을 잡아끌며 마음속에 각인되는 거목이 없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사람의 눈길을 뺏으며 당당한 자태로 묵직하게 뿌리내린 거목. 이런 나무가 우리 교정에 있었으면 좋을텐데.” 우리는 이런 바람을 갖고 있다. 

인문대학 건물 2층 중앙 통로에는 서예가이자 사진작가이신 오동섭 교수의 작품, 노거수(老巨樹) 한 그루가 심겨져 있다. 이 사진 속의 거목은 불그레한 새벽 햇살을 받으며 우리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여명의 햇살이 굵다란 몸통 줄기와 크고 작은 가지들 사이로 퍼져나간다. 깊이 뿌리박아 흔들림 없는 노거수의 묵직한 기상이 보는 이의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경북대의 거목이 어찌 이 사진에서 그치랴. 우리 경북대는 나무[木]를 가꾸는 수목원이 아니라 사람[人]을 기르는 대학이다. 큰 나무가 없음을 아쉬워만 하랴. 2014년 3월, 경북대 교정에서 빛나는 젊은이들이야말로 미래의 거목으로 성장할 듬직한 나무들이 아니겠는가. “내가 거목이 되자. 경북대의 거목은 곧 세계의 거목이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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