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토니 모리슨: 미국 사회 흑백 문제의 조망토니 모리슨(Toni Morrison, 1931-  )은 현대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이다. 1993년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그녀는 버지니아 울프와 윌리엄 포크너의 모더니즘 영향을 받아 독특한 문체로 미국 사회 내 흑백 문제를 조망한다. 모리슨은 소설에서 난해한 의식의 흐름 기법과 다중화자 기법을 자유롭게 구사함으로써 독자를 곤혹스럽게 하지만, 여성인물에 대한 섬세한 묘사와 역사에 대한 새로운 성찰은 독자로 하여금, 그녀의 텍스트를 다시 읽도록 유도하는 미덕을 제공한다. 1931년 오하이오주 로레인에서 출생한 모리슨은 마흔 살에 첫 소설을 발표하여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그 처녀작이 바로 <가장 푸른 눈>(1970)이다. 이 작품은 파란 눈을 소원하는 흑인 소녀의 비극과 가치가 전도된 1940년대 미국 사회를 고발하고 있다. 그 후 모리슨은 <술라>(1973), <솔로몬의 노래>(1977), <타르 베이비>(1981), <빌러비드>(1987), <재즈>(1992), <파라다이스>(1997), <러브>(2003), <자비>(2008), <고향>(2012)에 이르기까지 10편의 소설을 출간하였다. 모리슨은 작품에서 17세기 말 미국 식민지 시대에서부터 20세기 후반 다문화 미국 사회까지 광범위한 역사적 스펙트럼 속에서 흑인의 고통, 특히 흑인 여성의 고통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녀의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은 한국 여성 소설가 박완서와 박경리를 떠올리게 한다. 박완서가 1931년에 출생하였고, 마흔이 되어서 첫 소설 <나목>을 발표한 후 여러 작품에서 한국 여성과 한국전쟁의 비극을 섬세한 문체로 형상화 했듯이, 모리슨도 흑인 여성의 고통과 전쟁으로 인한 흑인 남성의 고통을 다양한 관점에서 다루었다. 또한, 박경리가 대작 <토지>에서 일제하의 조선에서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한 맺힌 역사를 다루며 역사의식을 강조하였듯이, 모리슨 역시 미국 사회에서 한 맺힌 흑인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독자로 하여금 노예제로 인한 숨겨진 역사의 비극을 망각하지 말 것을 강조한다.  모리슨의 작품들은 대체로 흑인의 정신적 외상, 즉 트라우마를 드러내고 치유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퓰리처상 수상작인 <빌러비드>에서는 노예제로 인한 흑인의 트라우마를 다룬다. 즉, 세스라는 흑인 여자노예는 도망친 자신이 노예주에게 잡히면 자식들도 노예로 전락한다는 것 때문에 어린 딸을 죽이게 되고, 그로 인해 괴로워하며 트라우마 속에 살아간다. <파라다이스>에서는 서로 다른 경험을 한 흑인 여성들이 트라우마를 겪고 수녀원에 모인 후 그들만의 삶의 결속을 통해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몸짓을 보여준다. 한편 <자비>는 17세기 미국 사회에서 어린 딸을 좀 더 인간적인 백인 주인에게 보낼 수밖에 없었던 흑인 모정과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엄마를 원망하는 딸의 고통을 다루며 아프리카 땅에서 끌려와서 굴종을 강요받는 흑인 여성의 트라우마와 치유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II. <고향> 흑인의 트라우마와 그 치유  작년에 출판된 모리슨의 최신작 <고향>은 한국전쟁이 배경으로 나온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소설이다. <고향>은 150페이지 정도로 지금까지 발표된 모리슨의 소설 중 가장 짧은 소설이지만 미국 사회에 대한 모리슨의 문제의식이 선명하게 표출된 작품일 뿐만 아니라 흑인의 트라우마와 치유의 문제를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이다. 부연하면, <고향>은 1950년 전후의 미국에서 드러난 지속적인 인종차별 문제와 그로 인한 흑인의 트라우마, 흑인 주인공이 한국전 참전으로 겪는 전쟁 트라우마, 그리고 이러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데 있어서 가족, 고향, 공동체의 중요성과 의미를 역설하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프랭크 머니는 남부 조지아주 로터스 출신의 흑인 청년으로 어릴 적에 여동생과 함께 시골 마을에서 한 흑인 남자가 백인들에 의해 생매장 당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하고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생매장 당한 흑인은 백인들의 놀이에 의해서 개싸움처럼 죽을 때까지 싸워야만 했던 흑인 부자 중 아버지였다. 한 명을 죽여야 하는 “악마의 결정”에서 아버지는 아들 제롬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명한다. 아들은 살고 아버지는 죽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린치 장면이 여전히 미국 남부에서 발생하고 있었음을 모리슨은 폭로하고 있다. 프랭크는 작품 1장에서 자신은 그 매장 장면을 완전히 망각했고, 옆에 인간처럼 서있었던 말들만 기억난다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프랭크에게는  그 생매장 장면이 너무나도 큰 트라우마였기 때문에 언어로 상징화가 될 수 없는 사건이었던 것이다.프랭크의 가족은 인종차별로 인해 텍사스에서 쫓겨나고 결국 조지아주 로터스에 정착한다. 그 후 프랭크는 단조롭고 숨 막혀서, “어떤 전쟁터보다도 나쁜” 로터스 마을을 벗어나고자 친구 두 명과 함께 한국전쟁에 참전한다. 고향을 떠나 진짜 전쟁터인 한국 땅에 온 프랭크는 살을 에는 듯한 한국의 겨울을 고통스럽게 맞이한다. 그러나 남부 조지아와는 사뭇 다른 한국의 추위도 그가 전쟁에서 목격한 두 친구 마이크와 스터프의 죽음, 그 분노로 인한 한국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사살, 그리고 그로 인해 겪는 트라우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프랭크는 마치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델러웨이 부인>에 나오는 1차 대전 참전용사 셉티무스 워렌 스미스를 떠올리게 한다. 셉티무스가 포탄으로 친구를 잃고 런던에 돌아온 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에 시달리듯이, 프랭크도 두 고향친구를 잃고 미국 서부에 돌아온 후에도 여전히 트라우마를 겪으며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이기 때문이다. 두 친구의 죽음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는 죄의식보다 더 프랭크를 괴롭히는 트라우마는 자신이 죄 없는 천진난만한 한국 소녀를 총을 발사하여 죽였다는 사실이다. 먹을 것을 찾아 주기적으로 초소를 찾는 아이를 죽이는 장면을 설명하는 프랭크는 처음에는 자신의 동료병사가 아이를 죽였다고 했다가, 나중에 자신이 죽였다는 고백을 한다. 고백에 따르면 어린 한국 소녀가 손을 뻗어 먹이를 찾다가 우연히 자신의 사타구니를 만지게 되자 자신이 흥분되게 되었고, 그 아이에게 성추행을 하느니 차라리 죽이는 것이 낫다고 결정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것은 어린 아이에 대한 성추행을 억압하고자 하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합리화이기도 하고, 아무리 전쟁터라고 하지만 어린 아이의 살해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자신의 과오를 힐책하고 수치스러워하는 프랭크의 반성적 고백이기도 하다.전쟁 후 서부로 돌아와 릴리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져 새로운 삶을 사는 프랭크는 어느 날 교회 모임에서 눈이 치켜 올라간 아시아계 소녀의 웃는 모습을 보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그곳으로부터 도망가게 되는데, 바로 그 소녀가 자신이 죽인 한국 소녀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프랭크는 지속적으로 죽은 한국 아이에 대한 죄의식을 드러내고, 그 죄의식은 여동생 씨(Cee)가 더 이상 아이를 가지지 못하게 된 후 꿈속에서 나타난 아이의 모습과 연결된다. 프랭크는 전쟁 후 서부의 한 병원에 감금되어 있을 때 여동생 씨가 위험에 처해 있으니 속히 아틀란타로 오라는 편지를 받는다. 거의 다 죽어가는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아틀란타 백인 의사 집에 도착했을 때 프랭크는 백인의사에게 폭력을 가하기보다는, 죽어가는 여동생을 재빨리 데리고 나와 택시를 타고 로터스로 향하는 것을 택한다. 모리슨은 백인의사의 비인간적 모습을 마치 <빌러비드>에서 세스를 잡으러 온 학교선생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로 담담하게 묘사한다. 과학을 활용하여 인류의 행복을 위한다는 백인의사의 행동이 오히려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고 개인의 운명을 좌지우지 한다는 점에서 <델러웨이 부인>의 두 정신과 의사 닥터 홈즈와 윌리엄 브랫쇼 경을 떠올리게 한다. 울프 소설의 두 의사가 의학과 과학을 통해 비정상적인 환자를 격리하려 했듯이, 모리슨 소설의 백인의사 닥터 보(Dr. Beau)역시 프랭크 여동생 씨의 자궁 적출 실험을 통해 흑인 여성의 출산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프랭크의 용감한 행동으로 닥터 보의 집을 탈출하여 고향에 온 씨는 마을 여인들의 도움을 받는다. 에셀 포담을 포함한 마을 여인들은 씨에게 민간요법과 자연치유법으로 정신적, 육체적 상처를 치유해 주는데 이것은 이성과 과학에 근거한 백인의사의 치료법에 대한 불신과 저항을 보여주는 것이다. 만신창이가 된 씨의 몸을 햇볕에 쪼이게 하는 방법을 쓴다든지 아니면 씨로 하여금 퀼트를 배우게 하여 자신의 찢어진 상처를 상징적으로 봉합하게 하는 방법 등은 매우 유용한 치유법이라 할 수 있다. 프랭크는 작품의 마지막에 씨와 함께 10여 년 전에 생매장된 흑인 남자, 즉 제롬의 아버지가 묻혀있는 곳으로 간다. 프랭크는 여동생의 치유를 도울 뿐만 아니라 억울하게 죽어간 흑인 남자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하여 뼈를 다시 파헤친 후 퀼트 보에 잘 싸서 제대로 된 장례의식을 거행한다. 이는 억울하게 희생된 흑인 남자에 대한 올바른 애도의식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생매장된 한 명의 흑인 남자에 대한 애도를 넘어서서 억울하게 죽어간 모든 흑인 남성을 애도해 주는 모리슨 특유의 애도 방법이다. 모리슨이 <빌러비드>에서 무참히 죽어간 흑인 여성들을 애도했다면 <고향>에서는 무기력하게 죽은 흑인 남자들을 애도함으로써 무참히 죽어간 모든 흑인 영혼의 치유를 꾀한다. 한편 연꽃을 뜻하는 프랭크의 고향 로터스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즉, 더럽고, 숨 막히는 고향 로터스가 나중에는 안식을 주는 진정한 고향으로 변해 있다는 점을 볼 때, 우리는 모리슨이 흑인 공동체의 결속과 긍정적 힘을 강조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III. 흑인 문제에서 삶의 성찰까지모리슨의 대부분의 소설들은 흑인 주인공의 트라우마를 다룬 후, 그 주인공이 트라우마를 직면하게 하고, 나중에 그 트라우마가 치유되는 낙관적인 결론을 제시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고향>에서도 프랭크는 생매장 목격의 트라우마,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직면하고 극복하여 트라우마로부터 점차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작품 마지막에 그동안 따라다녔던 주트 복을 입은 남자의 환영이 없어지는 점은 프랭크의 트라우마가 극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향>은 흑인의 문제를 중심적으로 다루기도 하지만 고향으로의 귀환,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와 같은 인간의 보편적 문제를 다루기도 한다. 때문에 <고향>은 흑인이 처한 특수성으로 시작하지만, 서로 연결된 우리의 삶 속에서 인간의 보편적 문제, 즉 개인의 자유와 정의, 그리고 평등의 문제로 확대되는 것을 볼 수 있다. 21세기에 들어서도 끊이지 않고 지속되는 전쟁과 그로 인한 고통, 인종차별과 성차별 등을 고려해 볼 때 <고향>은 현재의 우리의 삶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제시해준다.

한재환 교수(인문대 영어영문)

▲미국의 여류 소설가 토니 모리슨

▲2012년에 출간된 소설 <Home>

▲한재환 교수(인문대 영어영문)

저작권자 © 경북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