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예술로서의 음악은 시간의 흐름 동안에 음들의 조화와 그 조화 속의 질서로 만들어진다. 또한 이 시간의 흐름 동안에 표현되는 소리에는 함축적인 내용들이 담겨져 있다. 서양음악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면 음악에는 종교, 문학, 연극, 회화 등의 음악 외적인 요소가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음악은 아름다운 소리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지만 그 소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 또는 의미를 이해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이제 음악에 포함된 음악 외적 요소들을 역사 속에서 살펴보자.음악의 기본 재료가 되는 음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원리는 고대그리스에서부터 전승된 것이다. 실제로 서양음악에서 고대 그리스의 유산은 영원한 보물창고이기도 하다. 이 시대에 신화 속의 음악을 벗어난 철학자들에겐 음악이 우주의 조화로운 질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예술이었다. 음악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한 최초의 인물은 피타고라스(기원전 580-500)이다. 수를 사물의 본질로 규정한 그는 “음악과 천체는 수적 조화를 이룬다”고 설명하면서 음들의 관계 역시 수학적 비율에 의해 결정되는 조화라고 설명한다. 결국 피타고라스에게 음악은 귀로 들을 수 있는 우주의 하모니였으며, 후에 피타고라스의 수적 비율은 음들 사이의 규칙을 설명하는 음악 이론의 기초가 된다. 피타고라스의 조화론에 덧붙여 플라톤(기원전 427-347)은 음악의 역할을 주장한다. 그는 음악과 인간 영혼의 조화라는 윤리적 성격을 강조하면서 음악교육이 사람의 성격을 형성시킨다고 그 중요성을 언급했다.중세시대는 무엇보다도 음악이 종교와 만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나라별 또는 언어별로 음악이 발달하기보다는 유럽 전체의 교회를 하나의 공동체로 보는 종교음악이 발달한다. 고대 그리스의 음악이론과 미학이 중세(8-14세기)에 전해지기는 하였지만 중세는 기독교의 시대였던 만큼 이 시대의 사회, 문화, 예술의 중심에 기독교와 그 교회가 있다. 특히 음악의 일차적인 의미 역시 종교적인 이유에 있었다. 기독교의 교회에서는 성경의 말씀을 전달할 수 있는 성악음악을 주로 라틴어로 불렀으며, 예배의식에서는 기악음악을 거부했다. 특히 하느님의 말씀을 노래의 가사로 사용하면서 문맹이 많았던 시대에 종교에 대한 교육적 효과도 크게 거두었다. 따라서 음악은 즐기고 향유하는 대상이기보다는 종교적, 교육적으로 실용적인 목적을 갖는 예술이었다.반면에 인문주의, 인본주의가 발달하는 르네상스시대(15-16세기)가 되면 음악이 문학과 만나면서 세속음악이 발달한다. 이 시대가 그리스의 재탄생 시기였던 만큼 음악적 표현 대상은 종교적 내용이나 신앙심을 떠나 자연, 감정 등으로 옮겨간다. 이에 따라 감정을 표현하는 시에 선율을 부쳐 노래하는 세속음악이 발달하는데 민족의 정서에 따라 음악적 특징이 나라별로 다르게 나타난다. 이탈리아의 마드리갈, 프랑스의 샹송 등이 이 시대의 대표적인 성악음악이다.음악이 문학과 만나는 또 한 번의 역사적인 시간을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만날 수 있다. 문학에서 시작된 낭만주의 운동은 당시의 음악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특히 작곡가 슈베르트는 괴테, 쉴러 등의 작가로부터 받은 시적 영감을 그의 작품세계에 깊이 반영해 리트를 작곡했다. 특히 그의 리트는 음악이 시의 분위기를 살리거나 내용을 그대로 묘사하는데, 예를 들면 리트 마왕에는 음악과 가사가 일치되도록 표현하기 때문에 “음악과 시가 공존하고 있다”고 설명한다.그리스의 유산으로부터 받은 영향의 또 다른 예는 음악이 연극과 결합하는 오페라이다.르네상스 시대 말기에 성악음악에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장르, 오페라가 이태리에서 출현한다. 오페라는 언어와 감정을 동시에 강조하는 것인데, 그 시작은 피렌체에서 옛 그리스의 비극을 음악을 통해 재현하고자 한 예술가들의 모임에서부터이다. 몬테베르디는 오페라에 청중의 관심을 끌어들인 작곡가이다. 초기 오페라에서는 그리스 신화가 음악적 소재로 사용되었는데, 예를 들면 신화의 이야기들 중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는 여러 작곡가들에 의해 오페라로 작곡된 인기 있는 대본이었다. 오페라는 음악의 어떤 장르보다도 대중적인 호응을 크게 얻으며 유럽 전역으로 확산된다. 기악음악의 대중화가 활발했던 낭만시대에는 가사를 동반할 수 없는 악기를 위해서도 내용이 있는 음악을 만들게 된다. 그 내용들 중 중요한 하나가 시각적 요소이다. 음악에 시각적인 내용이 포함되는 것은 이미 오래된 전통이다. 르네상스시대에 가사가 표현하고자는 내용 그대로를 선율과 화성으로 표현되는 가사그리기를 만날 수 있다. 예를 들면 가사의 내용 중 ‘하늘’은 높은 음으로, ‘땅’은 낮은 음으로, 그리고 ‘지옥’은 더 낮은 음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마치 가사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눈앞에 보는 듯이“ 생생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무지카 레세르바타라고 불리기도 한다. 다시 말해 가사의 의미가 음악에 함축되어있다는 것이다.결국 가사그리기는 시각적인 감각을 전제로 해서 소리를 표현한 것이다. 서양음악에서 유사한 내용을 빈번하게 만날 수 있는데, 특히 19세기의 기악음악에서 그러하다. 예를 들면 러시아 작곡가인 무쏘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작곡가가 자신의 친구인 화가 하르트만의 유작 전시회를 다녀온 후 만들어진 작품으로 이 작품은 ‘눈으로 감상한 예술이 어떤 소리로 환원되어 표현되는지’를 보여준 하나의 예이다. 악곡은 마치 전람회장에 들어선 관람객이 전시장 입구부터 천천히 걸어가며 작품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감상하는 듯이 쓰여 있다. 이와 같이 서양음악의 발달에서 음악과 음악 외적 요소들이 다양하게 만나는 과정은 음악이 그 인접학문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음악과 수학, 음악과 문학, 음악과 연극, 음악과 회화 등은 각 시대의 주요한 장르와 양식-미사곡, 마드리갈, 오페라, 표제음악 등-을 통해서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음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고자 하는 철학과 음악의 관계를 살펴보자. 역사에서 살펴보면 미학을 논하는 철학자들이 음악을 그 논의 대상으로 삼을 때에 크게 두 가지 상반된 견해를 보여준다. 그 하나가 음악이 “어떤 것을 모방하고 표현한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음악은 순수하게 “음악 그 자체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적 모방이론을 고대그리스에서 찾아볼 수 있기는 하나 “예술은 자연을 모방한다”라는 논제는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예술론의 토대로 발전하고, 바로크 시대에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인간을 하나의 자연적 존재로 보고, 인간이 느끼는 감정 역시 자연으로 본다면 음악이 감정을 모방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모방미학의 관점인데, 이 관점에서는 음악이 감정을 모방한 것을 표현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음악은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는 논제 또한 타당하다. 다만 19세기 낭만주의가 되면 이 감정이 객관적이고 공동체적인 것보다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정표현을 더 중요시하는 경향의 감정미학으로 발전한다.반면에 음악이 감정과 관계를 갖는다는 입장을 비판하는 철학가들에게 음악은 소리를 구성하는 멜로디, 화성, 리듬 등의 음악적 재료로 만들어진 음악 그 자체이다. 또한 음악은 감성이나 사상을 전달하지 않고 종교적, 교육적 역할을 하지도 않는 것으로 오로지 그 자체를 향유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주장에서는 음악이 문학적 요소와 결합되는 것도 거부되기 때문에 성악음악이 아닌 기악음악이 절대적인 미학적 가치를 갖는다. 이와 같이 음악이 목적 또는 역할에 의미를 두지 않고, 가사 등의 표현에도 의존하지 않는 순수한 기악음악을 절대음악이라고 부른다. 더욱이 기악음악을 옹호하는 19세기의 미학자들에게 음악은 예술 가운데서 가장 우월한 것으로 평가되는데, 특히 한슬릭과 같은 철학자는 가사에 의존적인 성악음악보다는 언어로부터 분리되어 순수 음악적 요소가 강조되는 기악음악에 독립적 예술로서의 가치를 부여한다. 니체 역시 기악의 추상성을 높이 평가한 철학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철학자들의 상반된 견해들 사이에 ‘어떤 것은 옳고, 어떤 것은 그르다’라고 판정할 수 없다는 것을 역사가 가르쳐준다는 사실이다. 이미 철학자들의 논의에서 예로 삼았던 좋은 음악뿐만 아니라 나쁜 음악까지도 모두 역사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이미 그 가치가 인정받은 것이다.

이내선 교수(예술대 음악)

리트: 19세기 낭만파 서정시의 자극을 받은 독일의 가곡

▲페데리코 세르벨리의 작품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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