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치유로서의 문학 

“시인은 영혼의 기술자 Der Dichter ist der Ingenieur der Seele!”

영화, <타인의 삶 Das Leben der Anderen>에서 햄프 장관이 시인 드라이만에게 하는 말이다. 과연 그런가? 영화 <타인의 삶>에서 그에 대한 답을 찾는다면 “사람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Menschen verandern sich nicht”라는 햄프 장관의 말로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원래 잘 변하지 않지만 그나마 영혼을 움직이는 시인의 혼을 통해 그것이 가능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장관의 발언은 영화의 초반부터 예상치 못한 누군가가 시인 드라이만으로 인해 변화될 것이라는 강한 반전을 기대하게 한다. 이 영화에서 햄프라는 인물은 (구)동독의 사회주의 체제를 자신의 권력추구의 발판으로 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무고한 시민들과 예술가들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인물이다. 한마디로 감정은 살아있으나 감성이 부재한 인물이라 하겠다. 그에 반해 시인 드라이만은 자신이 가진 예술적 재능을 연극, 피아노, 그리고 시를 통해 표현하는 매우 감성적인 인물이다. 이러한 그에게 햄프 장관은 그가 처음으로 무대에서 선보이는 극작품을 관람하며 “인간을 바꿀 수 있는 사랑”, “좋은 사람들”, 그리고 “사랑의 얼굴”에 대한 예술 활동을 해 달라고 강요한다. 그렇다면 취조와 도청이 전문이던 또 다른 인물, 비슬러가 어떻게 감성적 자아, 즉 타인의(여기서는 시인의) 삶에 전이되어 변화되어 가는지를 실제 변화의 이미지들을 통해 한번 짚어보도록 하자. 비슬러는 “국가의 적은 오만하다”, “진실을 말할 때까지 심리적 고문을 가해야”한다는 등의 주장을 설파하며 국가안보국 Stasi에 충성을 다하는 인물이다.

2. ‘좋은 사람’을 통한 착한 변화

일반적으로 공감과 관련된 이론들은 인간의 도덕성이나 공감의 발달이 인지적 측면을 포함한 정서적 측면이 병행하여 일어나는 것을 강조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공감은 - 물론 개인과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 매우 적극적인 실천 개념으로 발전될 여지가 많다. 왜냐하면 결국은 공감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변화하는 실천적 자아를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가 비슬러의 행동들을 관찰하면서 그가 드라이만의 행동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드라이만이 연인과 사랑을 나누자 비슬러는 집으로 창녀를 청함)과 실제로 드라이만의 삶의 공간으로 진입(드라이만의 집에 들어가 브레히트 시집을 가지고 나옴)하는 장면에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드라이만의 집을 함께 도청하는 기술자 우도는 물론 관객에게도 평소의 비슬러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서적 혹은 감성적으로 이미 몰입되어 가는 단계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도청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드라이만의 삶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삶에 약간의 변화의 조짐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가령 그가 세수를 하면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거울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장면과 엘리베이트 안에서 공을 든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드라이만이 거리에서 아이들과 자유롭게 공놀이를 하는 영화 시퀀스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다시 말해 그는 드라이만의 표정은 물론 행동까지도 받아들여 무의식적으로 그를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공감의 변화 양상을 뇌과학 이론가이자 정신과 의사인 요아힘 바우어는 “우리의 표정이나 몸짓의 감염은 물론 그것과 관련된 느낌들까지도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감염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 외에도 공감이 가진 문화현상들을 인간의 인지적 공감이론을 통해 분석한 프리츠 브라이트하우프트 또한 공감의 감염에 있어서 주요 요인들로 “재현 Re-Prasentationen”과 “동일한 행동들 adaquate Handlungen”등을 꼽고 있다.위에서 이미 언급한 바처럼 직장에서는 물론 일상에서조차 한 치의 감정을 드러내 보이지 않던 비슬러가 감성적 자아로 변화해 나가는 과정은 예리한 관객이 아니면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서서히 일어난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이 자신도 모르게 어떤 것을 받아들이는 행동과 동일한 것으로써, 우리가 의식하지 않은 채 매 순간 수많은 지시 사항과 자극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뿐만 아니라 이 이론에 따르면 이렇게 인지된 내용들은 특정한 감정에 속하는 태도나 행동을 자신도 모르게 그대로 따라한다거나 재생산하게 유도하는 작용을 한다. 다시 말해 비슬러는 드라이만의 행동이나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재생산함으로써 결국 그와 동일한 양태 속으로 전이된다는 것이다.      

<표정이미지: 변화과정 Ⅰ>그렇다면 영화에서 보여지는 비슬러의 실제 모습을 알아보는 것이 영화 후반부의 변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매우 필요하겠다. 도청과 취조에 관한 강의를 하는 비슬러는 매우 지적이면서도 냉철한 인물로 부각되고 있으나 도청장치를 설치하는 그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공허한 느낌마저도 들게 한다. 예를 들어 그가 도청 설치를 마치고 서 있는 모습, 드라이만의 책상서랍을 열어보는 모습, 그리고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은 개개의 장면을 하나하나 따로 분리하여 볼 때 관객으로 하여금 도청과 취조의 전문가로 바라보게 하기보다는 무엇인가 상념에 젖어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그 밖에도 영화의 시작부터 비슬러는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쓰고 있다. 그의 직업은 취조기술과 도청 장치 전문이다. 다른 사람을 고문하고 도청하여 감옥으로 보내는 것이 그가 하는 일이다. 따라서 그는 늘 메모지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감시한 내용을 보고서로 작성하거나 녹취를 한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광범위한 의미에서의 글쓰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문학치료나 글쓰기치료에서 말하는 글쓰기 활동과는 다르다. 전자가 일종의 강요된 타인의 일상통제를 위한 활동이라면 후자는 무의식적 자아의 발견이다. 적어도 치료적 글쓰기에서는 글을 써내려 가는 사람만의 특별한 정서가 요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슬러의 이러한 행동은 점차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러한 변화의 모습은 드라이만이 연주하는 피아노 음악을 듣는 장면과 그가 드라이만의 집에서 브레히트의 시집을 훔쳐오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물론 그가 드라이만의 육성으로 듣는 브레히트의 시는 마치 치료의 과정에서 참여자들이 자신이 쓴 텍스트를 읽고 눈물을 흘리는 과정과 동일한 치유적 효과를 가져다준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감성적 자아의 정서적 감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3. 매체에도 치유의 힘이 있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마치 감성도 욕구도 없던 비슬러가 점차 자신의 감성적 자아를 찾아가는 데에는 무엇보다도 다양한 표현 예술 매체들이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아 이러한 매체들은 비슬러의 감성을 되찾아주는 치유적 매체로 정의할 수 있겠다. 우선 공간 loci이라는 매체는 비슬러에게 삶의 의미나 여유를 가져다주는 분위기적 기능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비슬러라는 인물은 드라이만이 살고 있는 공간으로, 즉 내면의 공간으로 들어감으로써 스스로의 욕구를 찾아가게 되고 점차 자신만의 정서를 찾아가는 치유적 공간을 얻게 되는 것이다. 또한 본 영화에서는 문자라는 매체가 가지는 치유적 힘이 브레히트의 시「마리 A.에 대한 회상 Erinnerungen an Marie A.」을 통해서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특히나 이 시는 드라이만의 목소리로 오버랩되면서 마치 관객은 드라이만이 비슬러만을 위해 낭송을 하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가 시를 듣는 순간 관객들 또한 영화 전반에서 그동안 결코 찾아볼 수 없었던 기쁨과 환희의 표정을 짓는 그의 모습을 목도하게 된다. 그런 그의 얼굴은 전체 화면이 회전하면서 그가 이 순간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고 있음을 암시해 준다. 편안하게 누워 미소를 머금은 그의 표정은 이제 더 이상 비밀경찰관으로서의 표정이 아닌 보통 사람의 모습이다.

<표정이미지: 변화과정 Ⅱ>

그 밖에도 ‘무엇이 그를 치유적 과정으로 이끌었을까’ 라고 묻는다면 단연 드라이만이 연주한 피아노 음악으로 인한 소리의 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자 예술동지였던 예르스카의 죽음을 전해 듣고 드라이만은 그가 생일날 선물로 준 “좋은 사람의 소나타”라는 피아노곡을 연주한다. 이처럼 음악이라는 소리 매체는 비슬러의 내면의 감각을 활성화시키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시 텍스트의 낭송으로 이어지면서 그는 몸과 마음을 통합하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끝으로 치유적인 매체의 힘으로는 드라이만의 책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HGW XX/7 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HGW XX/7, gewidmet, in Dankbarkeit”라고 기술된 문구를 들 수 있다. 드라이만은 자신의 타자기를 숨겨주었던 생명의 은인인 비슬러에게 감사의 표시로 그 책을 헌정하게 되는데, 여기서 그러한 문구, 즉 “형상화된 표현”은 문학치료에서 비슬러 자신이 스스로의 과거를 언어로 보상받게 되는 화해의 의미를 띠게 되는 것이다. 그가 드라이만이 그에게 헌정한 책, “좋은 사람의 소나타”라는 책을 사는 모습과 그리고 “그 책은 나를 위한 것이에요”라고 말하는 모습은 이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거듭난 모습이라 하겠다.

<표정이미지: 변화과정 Ⅲ>

4. 문학/영화 읽기 - 일상에서 만나는 치유 체험

앞서 언급한 바처럼 영화, <타인의 삶>에서의 비슬러라는 인물은 관객들에게(치료에서는 치료사에게) 자신도 모르게 변화해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그는 분명 영화의 초반부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영화의 시작에서 “인간을 바꿀 수 있는 사랑”, “좋은 사람들”에 대해서 글을 써 달라는 햄프 장관의 말은 드라이만이라는 시인을 통해 비슬러라는 사람에게 전이되고(문학치료에서 말하는 공감과 느낌 나누기) 또 그것은 그가 새로운 삶(국가보안국의 비밀경찰에서 우편배달부로)을 일구어나가는 데 활력이 된다. 이와 같이 비슬러라는 인물의 감성적 자아가 치유적 과정으로 완전히 진입하여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기까지는 오랜 과정을 거치게 된다. 여기서 그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움직이게 한 치유 요인들을 살펴보면 1) 드라이만의 편안하고 아늑한 집 2)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생일파티와 생일선물(재경험화 과정) 3) 다정다감한 연인(재부모화 과정 reparenting) 4) 음악과 영상 텍스트를 통한 시인과의 동일화 등을 들 수 있겠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햄프 장관이 “사람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라고 말을 한 것처럼 사람은 쉽게 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행여 변화하게 된다면 그 변화의 요인이 매우 개인적이고도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소소한 일상 혹은 문학텍스트속에서 매순간 치유적 체험들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바로 이것이 ‘치유로서의 문학’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채연숙(사범대 유럽어교육, 대학원 문학치료학과 참여교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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