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지상 아래 방 한 칸, ‘쪽방’에 눕다.-‘쪽방촌’을 통해 바라본 노년층의 빈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2011년 기준으로 45.1%에 이른다. 노인 두 명 중 한 명은 빈곤에 찌들어 있는 셈이다. 이는 OECD 회원국 평균인 13.5%보다 3배가 넘는 수치이다. 이에 우리는 노인빈곤에 주목했다. 단, 뉴스 등에서 전해져 오는 텍스트적인 사실보다는, 생생한 삶의 공간 속에서 느껴지는 애환에 주목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에 지난 8월 8일부터 9월 3일까지 ‘대구쪽방상담소’와 함께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대구시 중구, 동구, 서구를 비롯한 여러 지역의 ‘쪽방촌’을 방문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리는 ‘쪽방촌’이라는 공간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쪽방? 쪽방촌?쪽방의 정의는 기관이나 단체에 따라 다르다. 보건복지부에서 정의한 쪽방이란 “숙식용으로 이용하는 공간이 너무 협소하여 불편하고 열악한 방”이다. 또한 전국쪽방상담소협의회에서는 “최저 기준 미만의 주택 이외의 거처이며 보증금 없이 일세, 월세, 사글세를 지불하는 부대시설(세면, 취사, 화장실 등)이 없는 방을 말한다. 단신, 가족, 취약, 주거불안계층이 거주하며, 수급권자나 비정기적인 일자리와 건설일용직과 같은 이직이 강하며 고용이 불안정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저렴한 주거공간”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주거공간으로는 여인숙이나 여관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쪽방들이 모인 하나의 공동체적인 구역을 쪽방촌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쪽방 거주인들의 인구규모는 얼마나 될까? 아쉽게도 5년마다 우리나라의 모든 국민들의 인구와 거주실태를 조사하는 통계청의 ‘인구 주택 총조사’에서도 쪽방 거주인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다.

쪽방 거주인의 특징과 실태는?대구시의 쪽방 거주민들의 거의 대부분은 남성(91.5%)이다. 이들의 연령대는 최저 13세부터 시작해서 최고령자인 94세까지 다양하게 나타났지만 대부분이 50대(36%)와 60대(18.4%)층에 집중되어 있다. 70대 이상 노인층도 7.9%에 이르러 비교적 상당히 높은 비율이라 할 수 있다. 이들 대부분은 배움의 기회를 전혀 얻지 못해 초등학교도 못나온 무학(11.3%)과 초졸(32.8)이 대부분이다. 특히 무학인 쪽방 거주민의 비율은 전국에서 대구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단독으로 거주하는 경우(97.8%)가 압도적이었으며, 이들 대부분은 쪽방으로 불리는 여관과 여인숙에 거주(87.7%)했다. 식사는 본인이 해결하는 경우(86.4%)가 많았다. 하지만 취사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부대시설 등이 갖추어지지 않은 쪽방에 거주하는 그들의 특성상 대부분 밥 대신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건강상태는 절반 이상이 불량한(55%) 것으로 드러났다. 끼니를 라면으로 때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단순히 쪽방이라는 공간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수입 또한 그들의 끼니의 질을 낮추는 데 한 몫 했다. 쪽방 거주민들의 월수입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50만 원 미만에 머물렀다.(69%) 이는 일정한 수입원을 얻을 뚜렷한 직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 대부분은 무직(49.5%)이거나 단순노무종사자(35%)에 종사한다. 이마저도 나이가 들어 일을 할 수 없는 경우에는 폐지를 줍는 등으로 생계를 이어나가야만 하는 실정이다.  참고문헌: 전국 쪽방거주인들의 생활실태 및 법적 지원 실태(영진전문대 이경희)쪽방 속 거주자들의 삶을 보다 서구의 쪽방은 팔달시장 맞은편에 모여 있다. 팔달시장 옆 4차선 도로위에서는 한창 대구도시철도 3호선이 공사 중이었다. 여인숙이나 여관들보다 한창 높은 시멘트 기둥 때문인지 해가 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쪽방에는 햇빛이 들지 않았다. 여인숙과 여관들은 빼곡히 모여 있었다. 그 때문인지 길이 복잡하고 열악했다.대구쪽방상담소 장민철 소장을 포함한 5명의 봉사자들은 대구은행 팔달지점에 오후 6시 반쯤에 모였다. “낮이 아닌 해가 저물어가는 오후에 모이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장 소장은 “여름이라 낮에는 너무 더워 쪽방 거주인들이 방에 없거나 일하러 가기 때문에 오후에 일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오늘 쪽방 거주민들에게 나누어 줄 물품은 레토르트 식품인 3분 곰탕과 에프킬러, 얼음물, 부채 등이다. 기자를 포함한 5명의 봉사자들은 양손가득 물품을 들고 첫 번째 목적지인 H여인숙으로 향했다. H여인숙에 들어가자마자 더운 공기와 함께 땀에 찌든 냄새가 났다. 몇몇 봉사자는 이미 냄새로 인한 불쾌감이 전해진 듯 얼굴을 찌푸린다. 환풍기하나 없는 H여인숙은 1층에는 여인숙 주인방이 있다. 창문을 통해 방안을 살펴보니 에어컨도 보인다. 장 소장이 얼굴을 내밀자 주인집 할머니는 익숙한 듯이 손으로 위를 휙휙 저으며 올라가라는 손짓을 한다. 봉사자들은 2층과 3층으로 나누어 올라간다. 시멘트로 대충 바른 듯 보이는 가파른 계단은 대학생 봉사자들도 올라가기 버거워 보인다.“계세요? 쪽방에서 왔습니다”      봉사자들 마다 방문을 두드린다. 2층의 경우 8개의 방중 3개만이 쪽방 거주민들이 나왔다. 대부분이 속옷차림이다. 방문 건너로 내부를 살펴보니 이불과 밥솥, TV, 선풍기, 냉장고 등이 보인다. 방안에서는 담배냄새와 함께 땀 냄새가 풍겨져 나온다. 봉사자들은 간단한 안부인사와 함께 가지고온 물품을 나누어드린다. 이곳 H여인숙은 각층마다 공용화장실이 있었다. 내부를 보니 지린내가 진동하고 바닥은 언제 청소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이끼가 끼어 미끄럽다. 가파른 계단을 다시 내려와 밖으로 나왔다. 조금도 쉴 틈 없이 바로 다음 여인숙으로 향했다. 이런 식으로 여인숙과 모텔 십 여 곳에 물품을 나누어주니 9시가 훌쩍 넘었다. 이날 봉사자로 활동한 김태영(행정 07) 씨는 “쪽방에서 거주하는 분들의 삶이 이렇게 열악할 줄 몰랐다”며 “버스로만 지나쳤던 대구 주변에 이러한 쪽방이 존재했다는 것에 놀랐다”고 말했다.

사회안전망에 벗어난 그들  대구역 근처 T모텔. 한 봉사자가 얼마 전에 입주했다는 202호의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뿌연 담배연기에 봉사자들은 기침을 연거푸 했다. 재떨이에는 이미 담배꽁초가 수북했다. 202호에는 B 씨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근처 R모텔의 C 씨가 놀러와 있었다. 봉사자는 B 씨를 새로운 쪽방 거주자로 등록하기 위해 간단한 인적사항과 상담을 했다. “기초수급자이신가요?”봉사자들의 질문에 B 씨는 벌컥 성을 냈다. “한 달에 24만 원정도 나라에서 돈을 주는데, 기초수급자라는 것 때문에 정상적인 일은 받아. 그런데 기초수급자만으로 주는 돈으로는 살 수가 없어. 정말 답답한 노릇이지. 하지만 어떡해, 그거라도 있어야지 먹고 잘 수 있는데”봉사자는 성난 B 씨를 진정시키며 쪽방거주자로 등록하고 가지고온 물품을 나눠주었다. 303호에 거주하고 있는 C 씨는 기초생활수급자에 해당하지 못한다. 봉사자가 조심스레 그 이유를 물어봤다. “뭐긴 뭐야 빚 때문이지. IMF때 파산하고 주민등록을 말소시켰어. 빚쟁이들이 따라다니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지”C 씨는 막노동을 한다. 언제까지 이 삶이 계속될 진 모른다. 이날 봉사자로 함께 활동한 곽홍섭(경상대 경제통상 07) 씨는 “기초수급자라고해서 쪽방 거주인들이 충분히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며 “비수급자 또한 우리가 아무리 곰탕과 라면을 가져다준다고 해서 삶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곽 씨는 “사회구조와 사회안전망이 변하지 않는 이상 쪽방 거주민들은 영원히 이곳에서 못 벗어날 것 같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대출조차 받지 못하는 쪽방인들“죄송합니다. 고객님께서는 담보가 없어서 대출이 어렵습니다.”은행원에게 벌써 11번 째 거절당했다. 달서구 쪽방에 거주하는 60대 A 씨는 삐뚤빼툴하게 종이에 적은 은행리스트를 펼쳤다. 방금 나온 은행 이름을 볼펜으로 쓱쓱 긁어 지운다. 신한은행, 우리은행, 국민은행을 비롯한 대형 금융 은행부터 대구은행, 상인지원센터같은 지역 금융권까지 은행이란 은행은 모조리 찾아가 단돈 50만 원을 빌리려했지만 모조리 거절당했다. 심지어 정부에서 서민들에게 연대보증이나 큰 담보가 없이도 돈을 빌려주는 햇살론까지도 A 씨에게 단돈 50만 원을 대출해주기를 꺼렸다. A 씨의 신용등급은 정상적이다. 빚 한 번 안지고 산 그이지만 그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은행은 없었다. 담보가 없기 때문이다.A 씨는 현재 대구시내 시장을 떠돌며 엿을 파는 엿장수다. 한때 서울 동대문에서 옷 장사를 하면서 사업을 크게 키웠지만 1997년 IMF외환위기 때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대구로 와서 10여 년째 쪽방에 거주하며 엿장수를 하고 있다. A 씨가 엿장수를 시작할 때만해도 엿장수는 전통시장이나 지역 축제에서 그나마 잘나가는 직업 축에 속했다. 하지만 대형마트가 활성화되고 전통시장이 점차 사그러들면서 A 씨는 점점 생계를 꾸려나가기 힘들어졌다. A씨는 “엿장수마저도 요즘은 경기가 어려워 하루에 서너판 파는 것도 어렵다”고 말했다.A 씨의 어머니는 9살 때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어린 여동생을 때렸다. A 씨가 제대로 된 정규 교육을 받았을 리 만무하다. 결국 여동생은 남의 집에 가사도우미로 보내버렸다. 그편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A 씨는 지금까지 여동생을 찾을 수 없었다. 유일한 혈육은 경북 영천에 있는 사촌누나뿐이다. 하지만 사촌누나 마저도 그를 도와줄 여력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A 씨에게는 단돈 50만 원조차 믿고 빌릴 곳이 없다. 그는 오늘도 다 팔지 못한 엿판을 들고 쪽방으로 향한다.

기초생활지원과 더불어 법안조정이 필요해…“쪽방 거주인들에게 가장 시급한 욕구는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쪽방 거주민 10명중 6명에 해당하는 66%가 라면이나 밑반찬 등을 제공해주는 주·부식 생계지원서비스를 원한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현재 대구시에서 지원으로 운영하는 대구쪽방상담소는 이러한 쪽방 거주민들의 요구를 충분히 만족시켜줄 만한 재정이 부족한 상태이다. 대구쪽방상담소 장 소장은 “많은 쪽방 거주민들이 라면과 같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부식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항상 부족하기 때문에 모든 인원들에게 충분히 제공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이러한 지원을 해주는 기관은 대구시에서 대구쪽방상담소가 거의 유일하다. 대구광역시 복지정책실 황찬욱 주무관은 “대구시에서는 직접적으로 쪽방 거주민들을 위한 생계지원을 하지 않는다”며 “대구쪽방상담소에서 대구시의 지원을 받아 운행하는 것이 전부”라고 답했다. 그렇다보니 대구쪽방상담소에서는 재정과 더불어 인력도 모자라는 상황이다. 장 소장은 “방학기간 때는 자원 봉사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그마나 상황이 나은 편이지만 개강하는 시기인 3월과 9월에는 인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법적인 제도도 문제점이다. 전국적으로 쪽방 거주인들의 35.2%가 사회안전망의 최단에 서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두 부류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는 일정한 거처가 없고 쪽방을 자주 옮겨 다녀 주민등록이 말소됐기 때문이다. 둘째는 해결할 수 없는 부채로 인해 개인파산 후 주민등록을 말소시킨 경우이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콜센터 긴급지원반 김인숙 팀장은 “사회안전망에서 벗어나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쪽방 거주민들에게 대해서는 안타깝다”며 “하지만 현재 법적 테두리에서 그들에게 국민기초생활 수급자로 인정해 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대구광역시 복지정책관실 최현경 주무관 또한 “쪽방 거주민들을 국민기초생활 수급자로 인정해주고 싶어도 부채로 오히려 주민등록재등록을 거부하는 분들이 많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영진전문대 이경희 교수(사회복지)는 ‘2011년 전국 홈리스 실태조사 결과 발표회’에서 “쪽방 거주민들은 사회복지사업법이나 국민기초생활제도 같은 현행 지원 체계에 소외돼 있다”며 “주거, 의료, 취업 등 복지 지원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상지 기자/lsj12@knu.ac.kr정인혜 기자/jih13@knu.ac.kr

"사회구조와 사회안전망이 변하지 않는 이상 쪽방 거주민들은 이곳에서 못 벗어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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