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는 건조하다. 윤전기를 통해 나오는 글자는 사실 잉크를 적당한 모양으로 뿌려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 때문일까? 활자로 나오는 인쇄매체 속 우리사회의 20대 청년들의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무미건조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활자 속의 숨겨진 청년들의 노동현장을 직접 찾아갔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들과 생살로 부딪히며 그들의 현실을 기록했다. 이 기사는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3일 간 기자가 ‘막노동’을 하면서 만난 20대들의 이야기다. 또한 기사에 나온 20대 청년들의 이름은 전부 가명임을 먼저 밝힌다●

첫째 날10분 만에 구한 일자리“지금 당장 나올 수 있어요? 안 그래도 추석연휴라 그런지 사람이 많이 필요한데… 얼른 추리닝만 대충 껴입고 빨리나오세요. 장소는 문자로 보내드릴 테니까요”‘10분이나 걸렸을까?’ 인터넷 구인구직 사이트를 통해 연락한 H인테리어공장에서의 과장은 이름과 나이만 물어보고 재빨리 나오라고 재촉했다. 20대들이 막노동 현장에 접하는 것은 생각보다 아주 쉬웠다.

일급 주는 사람 따로, 일 시키는 사람 따로?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H인테리어공장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8명의 20대 청년들이 보였다. 그리고 전화로 나를 고용한 H인테리어 과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를 불렀다. “조금 있으면 바로 일 시작할 것이니까 여기 관리자 오면 그 사람의 지시대로 일 하면 되요. 그리고 일 다 끝나면 다시 나한테 전화주시고요”. “아까 인터넷을 봤을 때는 여기 과장님이신 것으로 알았는데 아니신가 봐요?”. “나는 용역업체 사장이고 여기 관리인은 다른 사람이에요”.당황스러웠다. 나를 고용한 줄로 알았던 H인테리어 과장은 사실 용역업체 사장이었다. 이른바 간접고용인 셈이다. 다른 청년들도 다른 용역업체 사장들과 제각기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몇 분 뒤, 이곳의 진짜 관리인이 나타났고 서로 다른 용역을 통해 들어온 9명의 20대 노동자들과는 한 마디 인사도 나누지 않은 채, 관리인은 조를 짜기 시작했다. 그리고 같은 조로 배정 받은 한 명의 청년과 함께 건물 B동의 현장으로 걸어갔다.

“근로계약서요? 여기서는 그런 것 안 써요”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용역업체와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갑자기 조바심이 났다. “저 혹시 근로계약서 쓰셨어요?” 청년에게 내가 먼저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근로계약서요? 이런 막노동 현장에서는 근로계약서 따위는 쓰지 않아요. 그냥 주어진 일하고 나서 처음 연락했던 용역업체 사장님께 전화하면 알아서 입금해주세요”. “그러면 혹시 오늘 일한 것 일당 못 받으면 어떻게 하나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어요. 제가 이런 일을 8년째 하고 있는데 아직까진 못 받은 적 없었거든요”. 청년의 말을 들으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머릿속에선 ‘근로계약서 미작성은 근로기준법에 명백하게 위배되는 불법행위인데…’라는 말이 맴돌았다. 하지만 이 청년은 전혀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그런 것을 묻는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 했다. 그리고 그와 곧바로 일을 시작했다.

“자키로 들고 와서 저기 파렛트에 쌓아올리면 돼”수현이라고 이름을 밝힌 스물아홉살의 청년은 일을 잘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정도껏 잘했다. 처음 일하는 것이라 계속 버벅거리는 나를 잘 가르쳐주었다.“저기 보이는 자키 보이지? 저것을 이용해서 이 B동 건물 전체에 있는 각종 물건들을 저기 보이는 넓찍한 파렛트에 전부 쌓아올리면 돼”‘자키’, ‘파렛트’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들이었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자키’는 손으로 끌 수 있는 간이 지게차를 말한다는 것과 파렛트는 화물을 쌓는 넓은 나무나 플라스틱 틀을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은 비교적 간단했다. 수현이 형과 맡은 B동 전체에 있는 각종 수백 개의 책걸상과 컴퓨터를 15개의 파렛트 위에 쌓아올리는 일이었다. 오후 1시부터 시작된 작업은 7시까지 이어졌다. 본래는 6시까지였지만 5시 쯤 관리자가 나타나 오늘은 일이 많으니 1시간 정도 더 일해야한다고 말했다. 우리들 중 그 말에 대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6시간 동안 수현이 형과 나는 몇 마디 대화도 못 나눈 채 B동 건물 전체에 있는 물건들을 파렛트 위에 쌓아올렸다. 그리고 7시가 되자 집으로 돌아왔다. 온 몸이 쑤셨지만 곧 바로 잠에 들었다.

둘째 날한 달 꼬박 일해야 받는 150만 원 둘째 날도 첫째 날과 일은 별다르지 않았다. 오늘은 수현이 형과 맡은 구역은 C건물이다. B건물보다는 일할 분량이 조금 적어보였다. 그 덕분일까? 한 숨 돌릴 여유조차 없었던 첫날과 다르게 내가 이것저것 물어보자 수현이 형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실업계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할 일이 없더라고… 집안에서는 대학 보내줄 생각도 없고 나도 대학에 가봐야 기껏 지방 사립대나 겨우 들어갈 성적이었거든. 내가 기껏해야 할 수 있는 일이 아르바이트뿐인데 막노동은 일은 힘들지만 시급은 다른 일보다 좋으니 이 일을 시작했지. 하지만 어제 시급 받아봐서 알겠지만 기껏해야 하루 일하고 받는 일당이 많아야 7~8만 원이야. 비가 오거나 일이 없는 날도 간간히 있다 보니 한 달에 150만 원 내외로 벌더라. 이마저도 생활비 빠지고 하다보면 통장에 남는 돈이 없어. 혹자는 150만 원이면 많이 받는 것 아니냐고 묻는데, 난 8년 째 150만 원으로 살아가고 있어. 매년 물가는 올라가는데 내가 한 달에 버는 돈은 올라가질 않잖아…” 수현이 형과 비슷한 다른 또래나 이곳 청년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물어보았다. 그들도 수현이 형과 상황은 비슷했다.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사정은 거의 다 비슷해. 너도 몇 일정도 더 일하면 느끼겠지만 20대 초·중반은 너처럼 연휴기간이나 방학 때 돈이 필요해서 잠깐 아르바이트하는 애들이 대부분이고, 나처럼 20대 중·후반대 사람들보면 지방 사립대도 졸업 못한 사람들이 많아. 대학중퇴자들도 은근 있어.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지만 일단 먹고는 살아야하니까 취업이고 뭐고 다들 그냥 하루하루 벌어서 살아가는 거지” 수현이 형의 말대로 3일 간 친분을 맺은 13명의 사람들은 10명이 20대 후반의 나이 대였고, 3명은 20대 초반이었다.

그들도 평범한 삶을 꿈꾼다.오후가 되자 다른 조에 속해 있던 민현이 형이 우리 조로 편성됐다. 민현이 형은 활발한 성격이라 말이 많았다. 민현이 형은 먼저 “어제도 게임으로 밤을 지새서 힘들다”는 말로 대화의 물꼬를 틀었다. 그러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가 이어졌다. “형들은 나중에 꿈같은 것이 없냐”고 내가 먼저 물었다. 민현이 형이 답했다.  “벌써 서른 살인데 아직도 뭐해먹고 살지가 막막하다. 솔직히 막노동 같은 일은 나이 먹으면 못하잖아. 지금 자동차 할부 값도 밀리게 생겼는데, 꿈 같은 것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는 것 같아” 수현이 형도 민현이 형의 말에 동감하는 듯했다.“나도 하고 싶은 것은 많았지. 그래도 현재는 힘들어도 나중에는 평범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또 막노동이지만 현재 열심히 살아가고 있잖아. 언제까지 이 일을 할지는 몰라도…”형들의 미래는 언제까지 저당 잡혀 있어야 할까? 비록 고시텔에 거주하며 저녁을 라면으로 때우고, 힘든 몸을 이끌고 게임에 밤을 지세는 그들도 다른 20대들처럼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꿈은 많았다. 하지만 그들의 현재는 힘에 부쳐보였다.   

셋째 날연휴조차 없는 그들노동기획 마지막 날인 18일은 추석연휴기간이었다. 이 날 출근한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 6명이었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또래인 20대 초·중반의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전부 민현이 형과 수현이 형 같은 20대 후반의 사람 뿐들이었다. 이 날은 구역을 나눠서 공장 지하를 쓸었다. 깜빡거리는 형광등 불빛 속에서 빗질을 하니 먼지가 올라왔다. 우리 중 마스크를 지급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대자루로 10포대 가량 모았을 쯤 민현이 형에게 오늘 같은 연휴에도 일하는 이유를 물었다. 이유는 간단했다.“추석이나 설날 때 일하면 시급을 더 주잖아. 이런 날 일해야지 언제 일하니? 어차피 친척들 모여 있는 곳에 가봤자 좋은 얘기 못들을 것이 뻔한데, 차라리 이곳에서 먼지 마시며 일하는 것이 훨씬 나아”옆에 있던 수현이 형도 말을 거들었다.“나는 올해로 설날 추석 때 친척들 안본지 5년차인데, 민현이처럼 나도 좋은 말 못 듣고 ‘언제 취직할 것이냐’는 등의 잔소리만 들으니까 차라리 이곳이 낫지. 차라리 명절이 아닌 비오거나 일을 못하는 날에 조부모님 댁을 찾아뵌 적은 몇 번 있어. 하지만 너 같이 20대 초반 아이들이야 용돈 벌이하려고 나오는 것이니 명절날 이런데서 일하고 싶지 않겠지.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 일이 생계나 마찬가지니까 일하기 싫더라도 나올 수밖에 없더라고…”

“마스크 달라고? 그냥 일해”마대자루 14포대 째를 채웠을 쯤,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곧장 관리자에게 달려가 “먼지가 너무 많으니 마스크를 달라”고 했다. 하지만 관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마스크를 달라고? 어차피 마스크를 써도 먼지 계속 마실 수밖에 없어. 쓰나마나라니까. 좀 있다가 점심 먹고 구해다 줄게 그때까지 그냥 일해”내 말에 거들어줄 것이라 예상했던 수현이 형도 나를 쏘아붙였다.“나는 오히려 마스크 쓰면 갑갑해서 싫던데 안 쓰는 게 더 편해. 그런 식으로 몸 생각하려면 이런 일 하면 안 되지”점심시간이 되고 화장실에서 코를 푸니 먼지가 섞인 새까만 콧물이 나왔다. 5분 동안 코를 풀었지만 새까만 콧물은 계속해서 나왔다. 오후에도 묵은 먼지가 쌓인 바닥을 계속해서 쓸었다. 다들 이제 목이 막혀 가는지 물병을 점점 빨리 비우기 시작했다.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한 시간 가량 샤워를 했지만 먼지로 막혀 갑갑한 목은 나아지지 않았다.“청년 실업? 우리랑은 딴 얘기”  올해 8월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실업률은 7.6%로 전체 실업률인 3%에 비해 2배가 넘는다. 하지만 수현이 형이나 민현이 형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이다. 대학진학률이 70%가 넘어가는 이 시대의 언론에서는 “대학을 졸업한 20대들이 대기업만을 바라보며 중소기업에는 취직하기 싫어해 실업률이 올라간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며, 주류의 대졸자 20대들에게만 관심을 갖는다. 정부의 정책 또한 대학을 졸업한 20대들의 취업률을 올리기 위한 정책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대학조차 졸업하지 못한 이들이 사회의 아래 계층에서 올라가기란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보다 어렵다. 수현이 형과 민현이 형과 같은 고졸 20대들이 대한민국의 노동 사회에서 살아가기란 어렵기만하다.  이상지 기자/lsj12@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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