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사마 야요이

1929년 3월 22일 폐쇄적인 지방도시 나가노 마츠모토시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쿠사마는 전쟁의 상황 속에서도 비교적 부유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가족 분위기는 그렇지 못했다. 엄격한 훈육가였던 어머니는 쿠사마를 때리고, 창고에 가두고, 쿠사마가 그리던 그림을 찢어버리는 등 매우 엄한 사람이었다.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쿠사마 야요이는 어릴 적 10살까지 계속적으로 점, 그물, 꽃의 형상들이 그녀 자신과 모든 사물들을 뒤덮어 버리는 환영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다. 쿠사마에게 있어서 오로지 그림을 그리는 것만이 혼란스러운 환영의 세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길이었다. 그녀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병을 극복하기 위한 치료요법이었던 것이다.

답답한 일본을 벗어나다

그녀는 1948년 교토 시립공예미술학교에서 1년 반 동안 전통적 일본화인 니혼가를 배웠다. 그러던 중 전시회에 걸린 쿠사마의 그림을 본 한 정신과교수에 의해 쿠사마는 자신의 정신적 질병을 알게된다. 쿠사마는 많은 그림을 그려나갔다. 하지만 전후 전쟁을 겪은 일본에서 그녀가 활동하기엔 사회적 벽이 높았다. 그녀는 당시 미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던 조지아 오키프에게 도움을 청해 뉴욕으로 건너갔다.

뉴욕에서 정체성을 다지다

쿠사1959년 미국에 온지 18개월이 지나 쿠사마는 첫 개인전을 갖는다. 이 전시에서 <무한 망 ‘infinity nets?>가 선보였다. 쿠사마의 전형적 트레이드 마크인 물 방울과 무한망으로 시작된 쿠사마의 회화는 다양한 형태의 환경 설치작품, 퍼포먼스로까지 옮겨갔다. 그러나 쿠사마 야요이는 자금난과 심해진 신경증으로 인해 다시 고국으로 돌아간다. 고국으로 돌아간 1983년에는 <크리스토퍼 거리의 사기꾼 동굴>이라는 소설로 신인문학상까지 받는 등 다양한 활동으로 자신을 알렸다. 1977년부터는 세이와 정신병원에서 생활하기 시작해서 그 옆에 쿠사마 스튜디오를 열고 정신병원과 스튜디오를 오가며 창작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참고문헌: 「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 작품세계의 특성연구」(김효정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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