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만에 대학가요제가 폐지됐다. 하지만 진짜 대학가요제는 진작 끝났었고, 이제서야단순한 프로그램이 끝난 것 뿐이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대학가요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사라진지 오래다. 대학가요제가 세상을 울리던 그 시대 그 열정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이젠 과거가 돼버린 대학가요제를 다시 추억해보고 ‘대학가요제’의 마지막 페이지를 채워본다●

문화의 암흑기를 깨우다.

70년대 대학가요제는 ‘젊은이의, MBC에 의한, 전국을 위한’ 가요제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유신정권 아래 놓인 가요계는 억압과 태동의 두 가지 힘이 충돌하고 있었다. 당시는 전태일의 분신, 유신체제의 등장과 같은 사회적 모순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고, 동시에 대학가를 중심으로 통기타·청바지·생맥주로 대변되는 ‘청년문화’가 퍼지고 있었다. 기성세대에 반발하며 자유와 평화, 낭만을 찾는 ‘청년문화’는 자연스럽게 억압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1975년 5월 13일 오후 3시, 유신시대 문화 억압의 상징 ‘긴급조치 제9호’가 취해졌다. ‘긴급조치 제9호’는 수많은 금지곡 지정과 탄압으로 ‘청년문화’의 암흑기를 가져왔다.

1977년 9월 3일, 어둠이 드리운 대학가에 한 줄기 빛과 같은 사건이 벌어졌다. MBC에 의해 대학교에서 유행하던 노래자랑이 전국적인 규모로 기획된다. 바로 ‘대학가요제’이다. 제 1회 대상 수상자 서울대 농대 출신 밴드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는 곧바로 전국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대학생이 부르는 노래가 전국의 유행가로 퍼져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그 이후 계속되는 대학가요제 흥행은 당시 억압받던 70년대 청년문화의 새로운 출구가 된다. 대학가에는 밴드와 통기타 열풍이 불었다. 본교의 대표적 기타동아리 <청음반> 또한 이즈음인 1979년에 탄생했다. 대중음악평론가 권오성 씨는 “당시 대학생들의 음악이 지닌 아마추어리즘과 신선함이 대중들에게 적중했다”며 “70년대 대학가요제는 사회의 억압에 대한 표출구와 해방구의 역할을 담당했다”고 말했다.

‘조용필’과 ‘광주민주화운동’

1980년 조용필의 ‘단발머리’와 1980년 5월 18일 광주. 아무 연관성 보이는 두 사건은 80년대 대학가요제의 두 가지 흐름을 가져오게 된다. 첫 번째 흐름은 기존 가요계에 편입하기 위한 노래의 등장이다. 조용필의 등장과 더불어 대학가요제가 대중들의 사랑을 받자 대학가요제를 통해 ‘제2의 조용필’을 꿈꾸는 학생들의 참가가 늘었다. 대학가요제에 기존의 가요나 별반 차이 없는 노래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참가곡들의 장르의 변화로 살펴볼 수 있다. 1970년대 주류를 이루던 포크, 락 밴드를 제치고 보컬 팝이 1980년대 대학가요제 장르 중심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흐름은 대학가요제의 참의미를 해친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대학가요제가 만들어 낸 또 하나의 흐름은 ‘노래운동’의 등장이다. ‘노래운동’은 1970년대부터 시작됐지만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대학가요제에서도 메시지를 담은 노래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예컨대 1981년도 제 5회 대상곡 ‘바윗돌’을 부른 정오차(당시 한양대 1학년) 씨는 ‘바윗돌’의 의미를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광주에서 죽은 친구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만든 노래고 ‘바윗돌’은 친구의 묘비를 의미한다‘고 대답했다. 이후 ‘바윗돌’은 대학가요제 대상곡 중 금지곡이 됐지만 민주화의 메시지를 담은 대표적인 ‘노래운동’에 속하는 곡이다. 이와 같은 뜻을 가진 세력들이 노래 서클이나 밴드와는 또 다른 그들 나름대로의 새로운 모임을 가지고 그들의 목소리를 가지기 위한 노력을 했고, 그 노력은 대학가요제로 이어졌다. 권 평론가는 “기성가요에 편입하기 위한 시도도 있었지만 동시에 ‘노래운동’이라는 흐름이 있어 오직 대학문화에서만 가질 수 있는 그 의미가 살아있었다”고 말했다.

대학가요제 ‘죽다’

90년대에 접어들면서 ‘대학가요제’는 기로에 서게 된다. 서태지 이후 가요계의 흐름이 아이돌 문화로 넘어가면서 7·80년대 가지고 있던 ‘대학가요제’의 의미는 완전히 상실됐다. 어느새 대학가요제는 대학생이 참가하는 가요경연장에 가깝게 변해버렸다. 그리고 이것이 대학생과 대중의 관심을 멀어지게 만들었다. 2000년대 들어 다양한 문화 콘텐츠 및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서바이벌프로그램 등과 같이 대학가요제를 대체하는 프로그램이 늘면서 설 자리를 잃다가 결국 2013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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