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신문 대학부는 창간 61주년을 맞아 ‘이야기가 있는 경북대’시리즈를 연재합니다. 후배기자들에게 요즘 대학생들의 관심사나 고민을 물어보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후배기자들은 “선배, 학생들이 뭐하는지 모르겠어요”, “가면 갈수록 학생들이 이야기도 잘 안 해줘요”라고 도리어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이야기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화수분 같이 이야기를 뿜어내던 캠퍼스는 이제 옛말이 되었습니다. 스펙과 아르바이트로 인해 캠퍼스 공동체가 무너졌기 때문 아닐까요? 이야기 실종의 캠퍼스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 ‘이야기가 있는 경북대’시리즈는 여러분 주위에 있는 ‘새롭지만 전혀 새롭지 않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캠퍼스’라는 친숙한 공간을 낯설게 보고 그 속에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의 경험을 빌려 재연합니다. ‘이야기가 있는 경북대’시리즈가 여러분들의 이야기꾼이 되겠습니다.가장 먼저 선보일 이야기는 ‘수의대 부속 동물병원’입니다. 학교 정문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건물인 수의대 부속 동물병원. 우리들은 그 건물을 하루에도 수십 번 지나쳐가지만 그 속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지금 새롭지만 전혀 새롭지 않은 수의대 부속 동물병원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너희들이 원하는 이야기는 없을 거야학교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소 동상 뒤에 위치하고 있지만, 의외로 그곳에 있는 건물이 동물병원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사람은 적다. 병원 앞 잔디밭 위에는 대형견 한 마리가 활기차게 뛰어다녔다. 병원의 내부는 좋게 말하면 깔끔하고, 솔직히 말하면 썰렁했다. 이른 시간 탓인지 대기자도, 환자도 없어 병원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나마 한 쪽에 진열된 치료용 개 사료 덕분에 동물을 다루는 곳임을 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키 크고 선량한 인상의 파란 옷을 입은 의사 분께서 맞아주셨다. 진태원 선생님은 마취의이자 동물병원의 담당자다. 가운을 입은 여자 대학원생 분들도 있었다. 어떻게 찾아왔냐는 진 선생님의 질문에 반려동물과 인간과의 절절한 교감을 취재하겠다는 야심찬 다짐을 적은 기획서를 내밀었다. 기획서를 받아든 진 선생님은 묘한 표정이었다. 우리를 앉혀놓고 달래기 시작했다. 뭘 기대하고 왔는지는 알겠지만 여기선 그만한 내용이 나오기 힘들다고 했다. 무엇보다 찾아오는 환자가 별로 없었다. 아직은 동물에게 비싼 치료비를 들여 치료하는 사람들이 적은 탓이다. 2차 진료기관인 대학 동물병원은 치료비가 만만찮다. 기획의도 대로라면 영화처럼 중상을 입고 급하게 수술 받는 반려견이 있고, 안타깝고 초조한 반려견의 주인이 있어서 그걸 취재해야 했지만 이곳은 너무 평화로웠다. 조금 당황했지만 일단 취재하겠다고 했다.

마침 스케줄에 목에 종양이 있는 개의 수술이 있었으며 곰의 발톱을 깎으러 달성공원으로 왕진을 간다고 했다. 기대했던 인간과 동물 간의 절절한 교감은 적지만 곰의 발톱은 결코 평범한 취재거리는 아니었다. 그렇게 ‘곰 발톱 깎기 관람권’을 얻었다.

최고의 간호사는 주인병원 잔디밭엔 털이 엉망으로 빠진 진돗개가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파보였는데도 즐겁게 뛰어다니는 모습이 짠했다. 낯선 이에게 코를 들이미는 개를 가볍게 토닥이고 병원에 들어섰다. 아침 아홉시, 늘 조용하던 병원이 분주했다. 수술을 받기로 예정된 강아지는 ‘그레이트댄’이라는 3개월짜리 강아지였다. 몸무게가 거의 50kg에 육박하는 대형견이라서 사실 강아지라고 부르기는 민망했다. 순해서 물지 않으니 만져보라는 말에 강아지의 목둘레를 쓰다듬었다. 커다랗고 딱딱한 덩어리가 서너 개 만져졌다. 강아지의 주인은 의사인데, 무릎 관절이 약해질까 직접 칼슘을 주사한 것이 잘못돼 종양이 됐다. 강아지를 아끼는 마음이 오히려 상처를 준 셈이었다.

동물은 자기 상처를 숨긴다. 아파도 살기 위해 억지로 밥을 먹으며 버틴다. 동물이 밥을 먹지 않는 경우에는 이미 중증이 된 상태다. 대부분의 주인들은 그 상태에서 데려오는데 그 때는 이미 늦었다. 다른 부위까지 병이 전이되면 구분해서 치료하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혈액 검사, 초음파 검사까지 하는데 비용이 제법 든다. 요즘은 주인들도 의식이 높아져서 고가의 수술을 많이 받는다. 장비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수술 수준도 높아지고, 심지어는 미용 성형까지 한다.

오전 10시로 예정된 수술은 10시 반 정도가 되어서야 시작했다. 6명의 수의사가 참여한 수술은 무균양압수술실에서 이뤄졌고, 담당 주치의는 내과와 피부를 전문으로 하는 오태호 교수(수의대 수의)였다. 무균양압수술실은 사람을 수술하는 병실보다는 훨씬 작고 간소했지만, 수술대의 크기만 작을 뿐 일반 수술실만큼 다양한 장비들이 구비돼 있었다. 수술을 준비하는 과정은 길었다. 다양한 장비를 준비하고, 개를 마취시켜야 했다. 불안한 듯 가만히 있지 못하는 강아지 때문에 마취에도 제법 시간이 걸렸다. 마취 다음은 제모였다. 감염 방지를 위해 수술 부위 주변까지 꼼꼼하게 깎아야 했다. 수술이 시작됐냐고 물을 때마다 여전히 준비 중이었다. 한 시간이 지나 주둥이에 호스를 끼우고 목에는 흉하게 털이 깎인 채 널브러져 있는 강아지가 보였다. 강아지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혹이 주변의 조직들과 유착이 심했던 탓이다. 혈관과 신경이 들러붙어 손상이 올 가능성도 컸다.

혹 한 덩어리를 제거하는 데 오전이 다 갔고 수술은 오후까지 연장됐다. 점심시간 따위는 없었다. 수술을 도중에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수술은 2시 반 쯤 끝이 났다. “힘들고 지치지만 수술이 끝나기 전까지 밥을 먹거나 쉴 수은 없어요” 배슬기 조교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입원한 애완동물은 적응력이 높은 동물이면 유연한 대처를 위해 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심리적인 안정감을 위해서는 집에서 쉬는 것이 가장 좋다. 반려동물의 가장 좋은 간호사는 결국 주인이기 때문이다.

말레이 곰의 발톱을 깎으려면달성공원에서 말레이 곰의 발톱을 깎으러 왕진을 가는 날이다. 병원 앞 잔디밭에서 병 때문에 털이 듬성듬성 흉하게 빠졌던 강아지를 만났다. 강아지는 잔디밭을 신나게 뛰어다니다가 반갑게 달려왔다. 조교의 제재에도 다가오려고 낑낑 댔다. 결국 머리를 토닥토닥 쓰다듬어준 뒤에야 강아지는 돌아갔다. 돌아가는 강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왜 사람들이 반려동물에게서 위로를 얻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며 가족 이상으로 소중히 여기는지 어렴풋이 느꼈다. 

곰 발톱을 자르러 가는 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다. 수의대의 학생들과 조교들도 함께 참관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설레는 왕진길이었다. 오늘 발톱을 깎을 말레이 곰은 몸무게가 35~40kg밖에 되지 않는 작은 곰이지만 성질이 사나운 위험한 곰이라서 접근하려면 블로우건으로 마취를 시켜야 했다. 이런 위험한 야생 동물을 구조하기 위해 일 년에 5~10번 정도 왕진을 나간다. 권영삼 교수(수의대 수의)는 “한 번은 설사와 피부병에 걸린 허브힐즈의 물개를 치료하러 간 적이 있어요. 150kg에 육박하는 커다란 물개였죠. 물개는 포악하고 힘이 세요. 치료하기 굉장히 무서웠어요.” 얼마 전에는 싸움소를 치료했다. 싸우다가 십자인대가 끊어졌는데 800kg에 가까운 자신의 몸무게를 지탱할 수 없어 서지 못했다. 권 교수는 겁을 주려는 듯 고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싸움소가 어찌나 사나운지, 그날도 인부 한 명이 다치셨어요.”

달성공원에 도착하니 오늘의 주인공인 말레이 곰은 원숭이와 너구리 가운데에 있었다. 다 큰 곰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작은 곰이다. 그렇게 작은데도 사나워 120kg의 사람을 던질 수 있다는 녀석의 발톱을 자르기 위해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말레이 곰 우리의 이중문 중 겉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지독한 분뇨 냄새가 났다. 어두운 우리 안 그물 같은 철창문 너머로 겁먹은 듯한 말레이 곰이 빠끔히 고개를 들었다. 둥글둥글한 눈과 전구 같은 몸이 무섭기보단 귀엽게 느껴졌다. 곰이 흥분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인원만 남기고 물러섰다. 마취를 하기 위해 다른 동물까지 몰아낸 뒤 블로우 건을 쐈다. 마취 후 넓은 장소에서 보니 길게 자라난 발톱이 발바닥을 자극해 상처가 많이 나 있었다. 준비해 간 절단기로 발톱을 자르고 파우더로 지혈했다. 어려 보여도 20살 이상 먹은 녀석이라 다른 질병은 없는지 추가로 혈액 검사와 기생충 검사를 했다. 말레이 곰은 흔한 종이 아니라서 더욱 잘 치료해야 한다.

권 교수는 “사자와 재규어, 곰 같은 야생동물은 구조하기 가장 힘들어요. 힘이 무척 세고 사납기 때문이죠. 경계가 심해 마취를 할 때 약을 놓기도 쉽지 않고 돌보는 것도 어려워 치료 후 처리도 쉽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주는 만큼 사랑을 받죠수의대 병원의 하루는 입원한 동물을 검진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동물의 상태를 검진하고 나면 예약을 체크한다. 그날 잡혀 있는 진료를 하고, 보호자들에게 설명한 뒤 동물의 상태를 점검한다. 치료가 끝나면 입원한 동물을 돌본다.

박사 수료과정 중인 대학원생 윤성호 씨는 외과 중에서도 안과를 전공한다. “수의(獸醫) 분야에서 눈이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백내장에 걸리는 경우도 있고 이런 저런 이유로 많이 다치는 부위가 눈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중요해요.” 힘들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다 공부해야 하는 것이 힘들어요. 외과 출신이지만 외과 전문의가 될 수는 없어요. 기르는 것부터 진료까지 모두 담당해야 해요. 우리나라는 수의학의 전문 분야가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죠. 여러 가지를 배워 놓아야 나중에 병원을 차릴 수 있어요.” 여러 가지를 공부하다보니 11년째 학생이다.

임상 대학원 석사 2년차인 최성원 씨는 작년에 수의사 자격증을 취득해 올해부터 병원에서 근무했다. “수의사라면 돈을 떠나 동물과 사람에 대한 사명감이 있어야 해요. 수의사는 성취감이 큰 직종입니다. 물론 언제나 동물이 완치돼 가는 건 아닙니다. 아픈 동물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최선을 다해 치료한 동물이 돌아가는 걸 보면 굉장히 뿌듯합니다.” 최 씨는 수의사로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동물을 못 고친 적도 있냐고 물었다. “대학 동물병원을 찾는 동물들은 종양 환자가 많아요. 사람도 암이 걸리면 체력을 포함한 신체의 기능이 떨어지듯 동물들도 마찬가지에요. 수술을 하기 힘들 정도의 상태로 온 동물들은 수술도 못하고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어요. 마음이 아프죠.”

학부시절을 들었다. “수의학과는 시험이 많고 워낙 공부량이 방대해요. 교수님께서 잘 가르쳐주셔도 세부적인 것들은 따로 공부를 해두어야 하죠. 1학년 때는 축제 한 주를 빼면 다 시험이 있었어요.” 힘들었겠다고 말하자 최 씨는 “그래도 공부하는 것은 즐거웠어요. 그 때는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니 다 추억이네요.”라고 말했다.

치료 중에 다친 적이 있냐고 묻자 최 씨는 당연한 듯이 대답했다. “수의사들이 다치는 경우는 비일비재해요. 특히 치와와처럼 작은 동물이나 진돗개처럼 충성심이 강한 개는 주인이 아닌 사람이 자신을 만지는 것을 불안해하죠.” 최 씨는 진로를 결정하는 건 쉬웠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동물을 많이 키웠고 동물을 좋아했으며, 성취감이 높은 직업을 가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경험을 많이 쌓아 훗날 제 병원을 운영하는 것이 목표”라는 최 씨는 “지금은 예전과 달리 주인들의 의식이 높아졌어요. 애완동물 대신 ‘반려동물’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 증거죠. 여기 있다 보니 정이 많아졌어요. 원래 감정적이지 않았는데 내가 사랑을 주는 만큼 동물이 사랑을 주는 것을 겪다보니 정이 많아지더라고요.”라며 푸근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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