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연관된 단어를 뽑아본 결과, 그동안 부동의 1위였던 ‘지식’이 밀려나고 ‘삶’이 1위에 올랐다. 삶이 지식을 밀어낸 것이다. 2013년 여름, 대학생이 인문학을 통해 책 속 지식이 아닌 그들의 삶을 체험하고 공유하기 위해 모였다. 본지는 ‘전국대학생인문학활동’을 함께 체험하고 그 의미와 인문학에 대한 그들의 메시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전국대학생인문학활동은 인문학 도시를 꿈꾸는 칠곡군과 전방위 독립예술단체를 표방하는 대구의 문화단체 ‘인디053’이 만나 함께 진행하는 인문학프로젝트이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92명의 대학생들이 칠곡군의 5개 마을(북삼읍 숭오2리, 지천면 영오1리, 가산면 학상리, 가산면 가산리, 약목면 남계3리)에서 먹고 자며 마을 주민과 4박5일을 함께한다. 벽화를 그리고, 노래하는 시집을 발간한다. 마을의 역사를 주민들의 입을 통해 마을책을 만들고, 마을사진을 찍어 전시회를 연다, 마지막으로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마을신문을 제작했다. 

마음의 눈으로 남계리를 취재하다.

5개 마을 중 남계리 마을은 미디어 마을로 선정되었다. 4박5일 동안 남계리 마을 안에 있는 이야기를 학생들이 듣고 신문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최종 과제이다. 

“사각콘크리트 박스 안에서 통제당하고 강요당하며 지내왔을 학생들, 이곳에서 나무 이파리 하나 나무 들취 하나 한번 쳐다봐라. 모난 게 하나 없다. 자연을 느끼고 즐기면서 자연의 모나지 않은 진리를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뜨고 가거라”

남계리 신현우 이장의 말이다. 신문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인문학과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물어보려던 찰나 신 이장의 말씀이 먼저 답변이 되었다. 신 이장의 말에 따라 나뭇잎을 쳐다보는 학생들을 보면서 “학생들이 이미 이 자리에서 인문학 배워가고 있구나” 하며 기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미디어마을에 참가한 학생들은 미디어 전공학생을 중심으로 미디어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구성되었다. 마을과 관련한 몇 가지 주제를 가지고 팀 별로 각 자 하나의 주제를 맡아 취재하며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 미디어 마을의 전체 일정이었다. 선정된 주제에는 마을에 사는 최장수와 최연소, 마을에서 가장 오래 머무신 노인, 역사 속 인물 세 가지 주제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참가자 하지윤(23) 씨는 “저는 마을에서 가장 장수하신 어른신과 장구를 치는 어린이를 만났어요. 정말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다들 자기 나름대로 보람 있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 놀라웠어요. 서로 다른 두 사람이지만 어떤 상황에도 여유가 있어 보인다는 것만은 같았어요. 이 마을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에너지를 얻고 가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참 닮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강사 하미옥 씨는 “일본에서 처자식을 다 포기하고 한국으로 넘어오신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어요. 친구들이 취재 해온 결과물을 봤는데 그런 내용을 제외하고 좋은 내용만 가져왔더라구요. 학생들과 할아버지와 다시 의견을 조율하면서 있는 그대로 현장의 이야기를 싣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어요. 학생들과 같이 있는 그대로를 담으려 노력했어요”라고 말했다. 마을을 취재과정에서 학생들 나름대로 느끼고 의미를 가지는 것, 그것이 미디어마을 남계리의 인문학이었다.

4박5일 동안 신문을 만들기까지 여유 있는 일정이 아니었음에도 학생들이 입을 모아 말했던 것은 여유가 있다는 말이었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는 문제원(24) 씨는 “평소 기사 작성을 위해 적지 않은 인터뷰를 하면서 어렵고 스트레스 받는 부분이 많았는데, 마을 어르신들과의 만남은 만남 그 자체로 즐거움이었다”며 밤샘 작업에도 불구하고 기운이 넘쳐보였다.

신현우 이장은 의 말이 “학생들이 첫 날 서로 자기소개를 하면서 서로를 알아 갈 때 하는 말이 기껏 해봐야 자기 학교,학과 소개가 전부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들이 밝아지고 서로 장난끼 가득하게 지내더라. 처음과 달리 학생들의 밝아진 마음 자체가 인문학인 것”이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신문을 처음 만들어 본 다는 박현지(22) 씨는 “처음 마을 주민들의 사연들을 가져오라고 할 때 이야기 들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원하는 답변을 받기가 쉽지 않았어요. 어려움이 있었지만 같은 조의 미디어 전공 친구가 많이 도와줬어요. 제가 전혀 모르는 분야를 체험해보고 이미 경험해본 친구들과 경험을 공유하면서 얻어 가는 것이 많은 것 같아요”라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4박5일 중 마감으로 피곤한 3일째의 하루에도 누구 하나 탓하지 않고 동기를 칭찬하고 열심히 하는 모습에 미디어마을의 인문학이 담겨있었다.

“인생은 책 한 권 그 이상입니다”

숭오리는 칠곡 최북단에 있는 금오산 자락에 안겨있는 마을이다. 아름다운 숭오리는 마을에 들어섰을 때 산을 지고 있어 바람도 선선하게 불었다. 옹기종기 모인 금곡마을의 사연은 구술채록으로 담아내게 됐다. 참가자 이동엽(20) 씨는 “흔히 역사라고 하면 암기 과목이라 생각하지만 넓은 의미로 봤을 때 인간의 생애가 곧 역사이고 이런 개인들의 인생사를 들어본다는 것도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사실 할아버지가 안 계셔서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궁금했어요”라고 참가 동기를 밝혔다.

구술 마을에 참가한 학생들의 역할은 어르신과 함께 책 한 권, 도서관 하나를 만들기 위한 시간의 기록자로 활동하는 것이다. 미디어마을과 마찬가지로 정해진 주제에 따라 구술이 진행됐다. 참가자 김예은(21) 씨는 “저희 팀은 마을 유래와 전설에 관한 주제를 받았어요. 주제 자체가 대단한 이야기라서 구술로 풀어내는 것은 아니에요”라고 했다. 그 의미에 대해 묻자 그녀는 “어떤 글을 읽거나 듣기 위해서는 기록을 볼 수 있는 거잖아요”라며 “마을 어르신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어요”라고 말했다.

구술프로그램 강사 정은진 씨는 “백 명의 사람이 있다면 백 개의 역사와 이야기가 있습니다”라며 “숭오 2리에 사는 1백 여 명의 주민이 가진 1백 여 개의 이야기가 모여서 다시 숭오 2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러한 활동을 통해 개인의 삶과 이야기가 결코 하찮은 존재가 아님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라고 말했다.

구술을 채록한 기록은 참여한 학생들의 시점에서 책으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여태껏 정리되지 않고 흘러가던 마을의 역사와 이야기를 참가한 학생들이 이야기로 이끌어내 기록하여 책으로 남김으로써 마을의 이야기와 역사가 맥이 단절되지 않고 이어져 기억될 수 있도록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다. 참가자 이현정(24) 씨는 “도시나 시골이나 다 같이 아침을 맞이하고 일을 시작해요. 다 같이 바쁜데도 단지 시골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음에 여유가 생겨요. 그 이유가 단지 장소 차이는 아닌 것 같아요. 단순히 도시와 농촌의 차이라기보다는 사람 마음가짐의 차이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4박5일간의 일정들을 함께 해나가면서 학생들 각 자의 방식대로  숭오리가 알려주는 인문학의 참 뜻을 배워가고 있었다. 

인문학으로 채색된 영오리.

영오리는 벽화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마을이다. 마을 입구부터 벌써 형형색색의 벽들이 반긴다. 16명의 대학생들이 뜨겁게 달아오른 벽 앞에서 벽화를 그리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학생들을 지휘하고 전체적인 작품을 진행 중인 시각디자인팀 이인석 씨는 “영오리는 3년 전부터 시작한 천왕제가 있는데, 이번 벽화에도 천왕제을 표현하는 벽화가 있습니다”라며 “무의미한 벽화가 아닌 스토리가 있는 벽화가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스토리가 있는 벽화를 그린다는 그의 말처럼 벽마다 영오리의 천왕제, 기찻길 옆 마을에 걸맞은 기차 벽화가 점차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전 작업을 마친 학생들의 점심을 챙겨주는 마을 주민 하덕순 씨는 “TV나 신문에서 나오는 벽화마을을 보고 많이 부러웠는데 이제는 부럽지 않아요”라며 “도시에 나가 있는 우리 가족들이 보면 좋아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정성 가득한 점심을 먹고 다시 작업을 시작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본교생 은성욱(경상대 경영 12) 씨에게 이번 프로그램의 의미를 묻자, 그는 “학과별로 가는 농활과는 다르게 다른 지역, 다른 사람들이 처음 만나 같은 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경험이고 또한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을 얻을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돌아오는 길, 하나둘씩 채워져가는 벽화를 보면서 마을을 그린다는 그들의 뜻이 깊이 새겨졌다. 

우리가 담지 못한 곳들.

이밖에도 사진을 통해 마을을 담고 마을을 위한 갤러리를 만든 가산면 학상리, 시 읽는 마을 매원마을에서도 마을 주민과 소통하는 인문학이 이뤄졌다. 다섯 마을을 모두 담아내지 못했지만 우리가 가보지 못한 마을 역시 인문학 향기로 온 마을이 채색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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