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즘’이란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 그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마키아벨리의 저서인 ‘군주론’에서 유래된 이 말은 “나라를 지키려면 때로는 배신도 해야 하고, 때로는 잔인해져야 한다. 인간성을 포기해야 할 때도, 신앙심조차 잠시 잊어버려야 할 때도 있다. -중략- 하지만 필요할 때는 주저 없이 사악해져라. 군주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나라를 지키고 번영시키는 일이다. 일단 그렇게만 하면, 그렇게 하기 위해 무슨 짓을 했든 칭송 받게 되며, 위대한 군주로 추앙 받게 된다”라는 대목에서 그 뜻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땐 바티칸의 금서(禁書), 지금은 근대 정치학의 정수
앞서 언급했듯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쓴 이유는 메디치 가문에 잘 보여 복직되기 위함이었다. 마키아벨리 자신은 이 목적이 실패해 불우한 노년을 보냈지만, 그의 책 군주론은 이후에도 파란만장한 과정을 겪게 된다.
윤순갑 교수(사회대 정치외교)는 “군주론의 정치사상사적 공헌은 르네상스의 시기에 종교뿐만 아니라 윤리에서도 분리된 정치학을 수립하고자 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통적인 도덕이나 종교를 타파하고 이에 구속되지 않은 강력한 리더의 상을 그렸다.
이 때문이었을까? 아직 종교의 힘이 강성하던 1559년, 군주론은 로마 교황청에 의해 금서목록에 포함된다. 도덕과 종교의 부정적인 부분이 강조된 측면이 마키아벨리의 사상 전체를 비난하는 요소로 작용했기 때문이리라.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군주의 이기심을 최고의 법률로 봤고, 군주의 자의를 행위의 준칙으로 봤으며, 궁정의 영광을 위하여 인민의 희생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하면서 혹독하게 비판했다.
이에 반해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은 “마키아벨리는 인간이 현실적으로 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묘사했다”고 극찬한다. 그 뒤 18세기 무렵 군주론은 새로운 평가를 받기 시작한다. 마키아벨리의 주장이 조국의 암담한 현실을 타개해보려는 의지로 이해되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대혁명의 단초가 됐던 루소의 정치사상 역시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참고해 엮어진 것들이다.

때론 여우처럼 기민하게, 때론 사자처럼 무섭게


“사랑의 대상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일반적으로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알면서도 모른 체 하거나 일부러 숨기도 하고, 위험이 닥치면 재빨리 도망치기 때문이다”


조직을 잘 이끌기 위해서 군주론은 조직원들에게 두려움의 존재가 되라고 말한다. 이 두려움과 공포는 조직원들이 배신하지 못하는 결속의 끈으로 작용한다. 또한 외부의 적이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패의 역할도 수행한다. 리더 한 사람의 강력한 카리스마로 조직 내·외적인 불안요소를 없애 조직의 평화를 가져다준다는 생각이다.

“현명한 잔인함이 진정한 자비다”


그럼 군주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싸움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한 가지는 인간의 싸움법인 법에 따르는 싸움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짐승의 싸움법인 힘에 따르는 싸움법이다. 이 두 가지 싸움을 동시에 교묘하게 쓸 줄 아는 능력이 군주에게 필요하다고 군주론은 말한다. 이를 형상화한 것이 바로 ‘여우’와 ‘사자’다. 여우가 되어서 함정을 간파해야 하며, 사자가 되어서 짐승들을 놀라게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군주론이 바라본 진정한 군주의 자세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집필할 때 영감을 준 사람은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전제 군주인 ‘체사레 보르자’이다. 그는 강력한 무력과 군대로 이탈리아의 여러 지역을 정복했다. 그리고는 폭력적인 성격을 가진 그의 부하 ‘오르코’에게 통치를 맞긴다. 역시 오르코는 폭정을 일삼았고 보르자는 오르코를 죽여 백성들의 민심을 산다. 모두 철저히 계산된 행동이었다.

“현명한 통치자는 약속을 지키면 자신에게 해가 되거나 약속한 이유가 사라졌을 때는 신의를 지킬 수도 없고 지켜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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