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률’, 이름에서부터 진중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이 단어는 오늘날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며 추구해야 할 가치로 자리매김했어. 과거 군사정부가 행했던 악행들이 ‘경제성장’ 하나로 덮여지는 것처럼 말이야. 이번 박근혜정부도 창조경제를 통한 경제 성장을 핵심 국정과제로 설정했어. 정치인에게도 경제 성장은 단골 공약이지.
오늘날의 성장 중심주의는 무한한 성장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냈어. 그러나 우리는 결코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없어. 지속적인 성장은 지속적인 생산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이는 지구의 자원이 한정돼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불가능해. 과거에는 공급과 수요만으로 모든 경제현상을 설명했어. 하지만 그건 마치 요리사와 손님만 있으면 스테이크를 만들 수 있다는 것과도 같은 얘기야. 요리사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고 손님과 돈이 아무리 많아도 고기가 없으면 식당도 운영될 수 없듯이 말이야. 경제도 마찬가지야. 화폐(금융)경제도 근본적으로 실물경제와 유리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해. 가장 중요한 건 요리 재료인 지구의 자원이 한정돼 있다는 거지. 즉, 경제 성장은 눈에 보이는 한계가 존재하는 개념이야.
지속적 성장은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해.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에너지는 언제나 감소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산출되는 에너지는 절대로 투입된 에너지보다 클 수 없어. 결국 우리가 사용하는 지구 자원이 우주로부터 날아 들어오지 않는 이상 ‘무한한 성장’은 불가능한 것이지. 고전경제학자 맬서스도 『인구론』에서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며 언젠가 경제 성장은 한계에 도달할 것이라고 말했어.
그러면 지금 당장 생산과 성장을 멈추고 손가락만 빨자는 말이냐고? 아니, 단지 추구하는 방향을 바꿔보자는 말이야. 경제의 ‘성장’이 아닌 ‘발전’으로 말이야. 무조건적 성장이 아니라 탈성장과 발전으로 경제의 뱃머리를 틀어야 할 때야.
이를 위해선 우선 효율성의 개념을 재정의해야 해. 경제에서 효율은 ‘편익과 비용의 비율’로 정의돼. 여기서 편익은 ‘우리가 얻는 인공 서비스’이고, 비용은 ‘희생되는 생태 서비스’라는 것이지. 즉, 효율성이 높다는 것은 생태의 희생은 최소화하면서 인공 서비스의 획득은 최대화하는 상태를 말해. 기존의 경제 개념과 ‘환경과 생태계’를 함께 고려해 보자는 거야. 환경세나 배출권 거래제 같은 현실적인 방법론의 실행도 경제관념의 변화가 선행돼야 해.
발전을 위한 첫 단추는 우리들의 의식 변화야. 성장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성장도 비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 말이야. 열역학 제2법칙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그 진행 속도를 늦출 수는 있어. 우리는 이제 성장의 종말을 준비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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