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旅行). 나그네(旅)처럼 다니는(行) 것을 여행이라고 한다. 바쁜 한국사회에서 그 누가 나그네가 되려 할까? 대학생이 나그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진 않을까? 하지만 이것도 녹록하진 않다. 스펙에… 취업에… 어학연수에… 그럼 일주일 중 두 시간만 나그네가 되어보면 어떨까? 오천원으로 선비놀음을 즐기는 ‘신기자의 오천원 뽀개기’를 지금 시작한다.
오후 5시 45분 수업이 끝나고 후문을 나와 ‘합동서점’으로 향한다. 선비놀음에는 책이 들려져야 하는 법! 후문에서 대로변으로 나와서 북구선관위 건물 쪽으로 살짝 가보면 한강 이남 최대 헌책방이라는 합동서점을 만날 수 있다. 서점으로 들어가 보면 문경새재에서 낭군을 기다리는 기생처럼 화려한 책표지들이 내 눈을 현혹한다. 표지를 넘기면 쿰쿰한 냄새가 난다. 헌책에 있어 쿰쿰한 냄새는 묵은지의 곰삭은 내와 같다.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묵직한 냄새가 사방에 진동한다. 시집을 집는다. 1,000원이다. 옛날에는 200원이었단다. “경대생들 책 좀 읽으라”는 주인장을 뒤로하고 706번을 타러간다. 나그네 행세가 시작된다.

행장을 시집으로 꾸리고 버스를 20분정도 타서 명덕역 앞에 내린다. 골목을 내달려 성모당 앞에 선다. 미사시간에는 불빛을 쏘아서 성모당 주변을 밝혀준다.(6시 30분부터 가서 기다리자) 혹자는 성모당을 ‘남산의 갓바위’라고 한다. 하지만 갓바위의 그것보다 더 은은한 미소와 자애한 모습으로 북동쪽을 향해있다. 팔공산이 있는 쪽이다. 진짜로 팔공산 갓바위와 조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1918년에 완공된 이 성모당. 나라 잃은 슬픔을 ‘성모’라는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었던 수많은 구도자들이 스쳐지나간다. 소원을 담아 초 하나를 켜본다. 초의 향내가 은은하다. 향기마저 신성하다. 초는 개당 500원이다. 예수 핍박을 새긴 동판을 지나 수녀원을 힐끔 구경한다. 남산을 빠져나와 근대골목을 향한다. 나그네에서 구도자로 변신해 관덕정을 찾는다.

가는 동안 거리는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다. 관덕정에서 염매시장을 거치고 영남대로를 지나 제일교회를 찾는다. 담쟁이 넝쿨이 벽면을 가득 채웠다. 예배당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싶지만 일요일 오전에만 예배를 드린단다. 종탑 구경은 실컷 할 수 있다. 골목골목마다 약내가 진동한다. 정신을 차려보니 약령시다. 제일교회와 약내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제일교회가 있던 자리가 대구 최초의 병원인 제중원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양·한의학 통합치료의 선두 주자가 대구였던 셈이다.
대구 근대골목의 상징이자 자랑인 계산성당으로 향한다. 커피 냄새가 계산성당을 휘감는다. 옆 커피명가로 향해 아메리카노를 시킨다. 향기로운 커피향. 가지고 왔던 시집으로 한껏 똥폼을 잡는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는 거리의 음유시인이다.

자유롭게 선택하라. 집에 가든지 커피명가를 나와 길 건너 3·1운동 만세계단을 가든지. 여기까지가 딱 두 시간 코스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추가 코스로 진짜 음유시인 박태준이 자주 올라왔던 청라언덕으로 향한다. 동산병원 현관을 재현해놓고 있으며 동산선교사 주택과 순교한 선교사들의 묘가 모여 있는 은혜정원은 빠질 수 없는 순교성지다.
집으로 향하는 길. 네온사인이 혼란스럽다. 지하철은 입을 벌려 나를 삼키려한다. 두 시간 동안 다른 세상에 다녀온 듯 진짜 나그네가 돼 있는 나는 이제 경북대의 김삿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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