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보관하던 낡은 건물이 문화예술 공간이 됐다.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품들이 전시돼 있고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무용수들이 춤을 춘다. 빨, 주, 노, 초, 파, 남, 보. 무지개 색으로 배열된 수천 권의 책 앞에서 누군가는 책을 낭송한다. 흔하디 흔한, 대구예술발전소의 오후 풍경이다●

중구 수창동에 위치한 대구예술발전소는 옛 KT&G 담배연초제조창 별관을 리모델링해 만든 건물이다. 대구연초제조창은 1927년에 만들어져, 1999년도에 폐관된 이후 10년 넘게 방치 돼 지역의 흉물로 전락할 처지였다. 그러던 중 KT&G가 별관 창고 건물을 기부 채납하면서 부지 4,613.2㎡에 달하는 건물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대구시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진행한 ‘지역근대산업 유산을 활용한 예술창작벨트조성사업’ 시범지자체에 당선돼 빠르게 리모델링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리모델링을 하기 전에도 대구예술발전소에서는 ‘문화씨뿌리기행사’로 이어령 전 장관, 창조도시의 권위자인 찰스 랜드리, 인디밴드, 작가 등을 초대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러는 사이 2012년 8월에 대구예술발전소가 준공됐다. 그러나 여전히 대구예술발전소를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대구예술발전소에서는 첫 번째 행사로 「대구사진비엔날레」를 개최했다. 홍보를 위해 이미 많이 알려진 행사를 개최키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 행사에 국내·외 총 9만 명이 다녀가면서 사람들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받았다. 그 다음 시작한 프로젝트가 앞으로 소개할 ‘만권당프로젝트’와 ‘북성로 축제’다.

수창동에 세워진 발전소의 두 얼굴

대구예술발전소를 멀리서 바라봤을 때는 가고 싶지 않은 공장이 우뚝 서 있었다. 발전소를 감싸는 수창동의 거리는 너무 조용했다. 공구거리가 펼쳐진 골목은 시대를 거슬러 온 느낌이었다. 회색빛의 거리에 느낌을 더 입히자면 공구골목에서 나는 기름 때 냄새정도가 전부였다. 4월 25일, 수창동에서 ‘VIEWZIC PARTY’가 열렸다. 기자가 신나는 마음으로 도착한 그 곳은 다소 우울한 모습의 공구거리였다. 그러나 대구예술발전소의 문이 열렸을 때 그 모습은 또 다른 얼굴이었다. 쿵쾅거리는 음악이 건물 전체를 채웠다. 음악을 따라 계단을 한 층 올라가니 음악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렸다. 음악을 따라 입구로 들어가니 그 곳은 여느 카페와 같아 보였다. 한 쪽 벽면이 책으로 채워져 있었다. 의자에 앉아 차분히 책을 보는 사람들이 군데 군데 있었는데도, BGM으로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체성을 알 수 없는 이곳이 어디냐 물으니 ‘만권당’이라 했다.

그들이 말하는 만 %의 가능성을 말한다.

3월 8일부터 진행된 「만권당프로젝트」는 만 권의 책을 모터로 하는 예술 공장으로서 가동을 시작했다. 만권당의 뜻을 풀자면, 예술가를 위한 만여 권의 문화예술관련 도서들이 가득 차 있는 만권강(萬卷江) 같은 것이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 만권당에는 매일 다른 작가의 강연이 열린다.

강연이 열리기 전에 초청한 작가에게 삼십 권의 책을 추천받고 세 권의 책을 작가로부터 기증받는다. 추천한 삼십 권의 책을 토대로 강연이 진행된다. 강연은 사진, 조각, 음악, 미술등 모든 분야의 예술작가를 모아 진행된다. 만권당의 강연을 계기로 작가와 시민의 만남이 이뤄졌고 작가와 작가의 인연을 통해 새로운 창조물이 만들어지는 만 가지의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만권당프로젝트」의 총 감독 장우석 씨는 “만권당프로젝트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첫 번째 목적은 시민과 대구 내의 작가들의 만남이다. 두 번째 목표는 각 분야의 작가들이 예비 예술가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을 소개하는 등 그들에게 살아있는 조언을 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더 재미있는 것은 작가들 간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창작물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정홍교 씨의 시를 연극배우인 민열 씨가 극으로 표현을 하고 도노반 인디밴드가 노래로 표현한다. 이런 활동은 우리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작가들의 자발적인 활동들이다. 이런 광경을 보고 있으면 만권당이 예술공장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만권당 늪에 빠진 시민들

대구예술발전소와 북성로 공구거리와 함께 북성로 축제가 열렸다. 축제에 참여한 대구대 권지현(25) 씨는 “전문가들이 파티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배운 것을 토대로 파티를 진행한다는 것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현재 2기 뷰직 워크샵에 참가하고 있는 조은세(23, 대구가톨릭대) 씨는 “전공으로 디지털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어서 더 관심을 가지게 됐는데,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전혀 새로운 것을 진행시켜 봄으로써 너무 색다른 매력을 알게됐다”라며 “주변 친구들한테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만권당프로젝트를 끝으로

4월 30일을 마지막으로 「만권당프로젝트」가 막을 내린다. 그 이후의 계획에 대해서 「만권당프로젝트」를 총 감독한 장 씨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저희 대구예술발전소 2013년 예산은 총 7억 원입니다.「만권당프로젝트」를 끝으로 그 뒤를 이을 실질적인 계획이 없습니다. 프로젝트 감독을 맡았던 입장에서 너무나 속이 상합니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기간에 시민들의 관심, 예술가들의 관심을 이만큼 모은 것은 대구 역사에 있어 전무한 일입니다. 그 만큼 시민과 예술가들이 예술에 대해 채우지 못한 목마름이 있었다는 것인데, 이 욕구들을 현실적으로 채워줄 기반이 하루 빨리 마련되기 바랍니다”라는 장 씨의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퇴근 후 만권당으로 오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는 김형철(회사원·30) 씨는 “만권당이 없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시에 민원도 넣었습니다. 다행히 만권당이 계속 유지된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지금까지  일회성 프로젝트로 진행되었던 행사들이 계속적으로 꼭 진행됐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입니다”라고 말하면서 「만권당프로젝트」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자생력과 실력을 갖춘 아티스트의 요람, 대구예술발전소

대구시청 문화예술과 김은영 주무관은 대구예술발전소를 “정말 특이한 분야의 예술가, 무던히 노력하는 예술가를 빛나게 해주는 곳”이라 표현했다. 그녀는 “이미 안정적이고 검증받은 전시를 기획하는 기존의 전시장과는 다르게, 대구예술발전소는 실험정신이 강하고 장르에 대한 개방성이 높다”고 말했다. 대구예술발전소에 대한 비판에 “공간이 죽었는데 발전소가 되겠나? 건물 하나 만들어놓고 문화도시다 문화공간이다 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생각은 잘못됐다. 한 도시가 문화공간이 되려면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고 스토리텔링으로 다져져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단기적인 성과를 가지고 일희일비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녀가 꼽은 대구 문화계의 발전 방향은 기획력과 자생력이었다. 그녀는 “예술인들은 작품만 잘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어필할 수 있는 기획력을 가져야 한다. 일을 하다보면 가끔씩 ‘공연 보러 오세요, 작품 전시해주세요’ 하는 예술인들이 있는데, 기본적인 기획서도 없이 무작정 해달라고 하면 기획하는 입장에서도 곤란하다. 이는 ‘예술가는 예술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예술가들은 항상 자기어필을 하기 위해 노력했고 자신이 할 수 없으면 도와 줄 사람을 주변에 두었다. 우리나라 작가들도 이런 생각을 해야 한다. 

또 다른 문제점은 문화적 자생력이 없다는 것이다. 전시회를 여는 것에서부터 작품을 사들이는 것까지 전적으로 국가 예산을 투입해서 움직인다. 문화적 자생력은 산업과 연계가 돼야 한다. 그래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구예술발전소에서는 ‘청년예술포럼’을 만들었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을 모집해 그 분야에서 정통한 사람과 연결을 시켜주고,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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