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2·28기념공원은 아침부터 마라토너들의 열기로 한껏 달아올랐다. 세계 정상급 엘리트 선수들부터 부모님 손에 이끌려 온 어린아이들까지… 1만 4천여 명의 참가자들은 1만 4천개의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그날 만큼은 모두들 ‘완주’라는 같은 목표로 하나가 됐다.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회자의 간절한 당부의 멘트가 끝나고 마침내 2만 8천여 개의 발들이 대구의 지면을 울리기 시작했다. 프로 선수들의 표정은 사뭇 비장하다. 전국 각지에서 취재차 방문한 사진기자들 또한 역사적인 ‘2013 대구 국제마라톤’의 출발 장면을 찍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몇 분간의 정적이 흐르고, 프로 선수들의 출전을 환영하는 빵빠레와 함께 대회의 막이 올랐다.

이번 대회는 국제마라톤대회임에도 남녀노소 다양한 참가자들이 함께해 더욱 의미가 있었다. 그 어떤 국제대회에도 일반 시민들이 자유롭게 참가해 선수들과

같이 뛸 수는 없다. 오로지 마라톤 대회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맨발로 세계기록을 세우며 아프리카 흑인 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딴 전설의 마라토너 아베베 비킬라는 “나는 다만 달릴 뿐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번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모든 마라토너들 역시 ‘다만 달릴 뿐’이었다. 개중에는 에는 진지하게 완주를 위해 달리는 사람들부터 동료와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천천히 코스를 즐기는 사람, 음악을 감상하며 경보를 하는 사람도 보였다. 어쩌면 그들은 숨 막히는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마라톤을 통해 한 숨 돌리며 휴식을 취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코스가 진행될수록 사람들의 표정은 굳어갔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한계에 도달해 레이스 도중 멈추거나 포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코스 중간 중간에 위치한 시민응원단은 참가자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단순히 박수치고 소리 지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작은 무대를 마련해 풍물 공연이나 난타, 사물놀이 공연도 곳곳에서 선수들이 지나가는 시간에 맞춰 이어졌다.

이날 대회의 남자부 우승은 2시간 8분 33초를 기록한 케냐 출신의 프랑스 국적 마라토너 아브라함 키프로티치가 거머쥐었다. 그가 우승을 확정짓고 나자 관중들은 여자부 선두에 관심을 기울였다. 여자부 선두에 그의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키프로티치의 아내 아그네스 제루토 바르소시오는 여자부 우승자에 35초가 뒤져 ‘부부 우승’은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결승선에 도달한 아내에게 달려가 포옹하는 남편의 모습은 그 어떤 우승보다도 감동적이었다. 

선두의 선수들이 결승선을 통과하고 나자 부슬비가 내렸다. 아직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는 참가자들에게는 응원의 의미가, 이미 코스를 완주한 선수들에게는 축하의 단비가 됐다. 두 주먹 불끈 쥐고 환호하는 사람들과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들어오는 사람들까지 결승선이 일순 분주해졌다. 스스로의 완주를 동료들, 가족들과 함께 축하하며 포토타임이 이어졌다. 이 순간 참가자들은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또다시 삶의 마라톤을 시작했다.

* 대구국제마라톤대회

2001년에 개최되어 올해 12회 대회를 맞이한 대구국제마라톤 대회는 엘리트 풀, 마스터즈 풀, 마스터즈 10KM, 건강달리기의 네 개 코스로 운영되며, 대구 육상을 대표하는 권위 있는 국제대회다. 2012년 9월 IAAF 인증 「실버」등급 라벨을 획득했는데, 이는 세계를 통틀어 유례 없는 속도의 등급 상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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