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상 이성질체’는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거울상의 다른 한 부분이 의도치 않은 표적기관에서 작용해 최악의 경우 사망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울상 이성질체를 발견한 것은 파스퇴르였지만 정작 이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촉발시킨 것은 ‘탈리도마이드’라는 의약품이다.
1957년 10월, 세계 약 40여 개의 국가로 판매된 약 하나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이름하야 ‘탈리도마이드 비극’의 시작을 알리는 움직임이었다. 약이 시판된 국가를 중심으로 소위 ‘탈리도마이드 베이비’라고 불리는 팔·

다리가 짧거나 아예 없는 기형아가 태어나기 시작한다. 거울상 관계에 있는 탈리도마이드의 한 종류는 임산부의 입덧 완화 효과가 있지만, 다른 한 종류는 유전자 변형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거울상 이성질체의 무서움을 전 세계에 알리는 희대의 사건이었다. 임산부의 입덧을 예방하기 위해 복용한 약이 이토록 참혹한 결과를 나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탈리도마이드는 거울상 이성질체의 양면성을 더욱 도드라지게 했다. 왜냐하면 ‘탈리도마이드 비극’ 사건 이후로 계속된 실험의 결과, 이 약이 항암효과는 물론 한센병의 치료와 다발성 골수종, 급성 골수성 백혈병 등에도 효과가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한편 탈리도마이드를 계기로 ‘미국식품의약국(이하 FDA)’은 의약품 검별에 대한 신뢰성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었다. 탈리도마이드의 미국 내 판매 허가 신청이 접수되자, FDA에서 이 약의 안전성을 연구한 프랜시스 캘시는 안전성 자료가 부족하다고 판단해 탈리도마이드의 미국 내 판매를 승인하지 않았다. 따라서 미국은 탈리도마이드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자문: 황길태 교수(자연대 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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