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캐럴의 ‘거울나라의 앨리스’에서 주인공 앨리스가 고양이에게 “거울에 비친 우유는 몸에 나쁠거야”라고 말하는 구절이 나온다. 이 말은 단순히 소설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실제 할 수 있지 않을까? 바로 ‘거울상 이성질체(Enantiomorph: Mirror image isomer)’를 통해서 말이다. 루이스 캐럴이 집필 시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이 구절은 화학에서 보면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거울상 이성질체와 거울에 비친 우유, 도대체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엘리스의 우유를 살펴보기 전에, 간단하게 우리의 양 손을 보자. 왼손과 오른손을 마주 대 보면 꼭 겹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거울에 손을 댔을 때도 거울 속의 손과 자신의 손이 꼭 겹치는 것을 보고도 알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순간은 한 손을 다른 쪽 손 위에 완전히 포갤 때이다. 포개지는가? 왼손과 오른손은 손바닥과 모두 다섯 개의 손가락으로 구성돼 있지만 두 손을 겹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때 우리는 두 손을 서로 ‘거울상 관계’에 있다고 한다. 이러한 성질을 ‘카이랄성’이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분자들의 세계에서도 카이랄성을 찾을 수 있다. 바로 네 방향으로 결합이 가능한 탄소를 중심으로 각각의 방향에 다른 분자나 작용기가 붙었을 때이다. 그러면 오른쪽의 ‘그림 1’과 같이 두 가지의 분자를 만들 수 있게 된다. 마치 왼손과 오른손의 관계처럼 같이 말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두 분자는 끓는점이나 녹는점 같은 물리적 성질과, 다른 물질과 접촉했을 때 반응하는 화학적 성질까지 모두 동일하다. 바로 분자의 기본 구성 요소가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일한 분자로 구성돼 있는 이 물질은 우리 몸속에 들어갔을 때에는 각각 다르게 작용하게 된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몸속의 효소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효소란 생물체의 몸속에서 생체 촉매 역할을 담당하는 단백질이다. 입의 침 속에 있으며 녹말과 다당류를 분해하는 역할을 하는 아밀라아제도 아마 중·고등학교 과학시간 때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 아밀라아제도 효소의 한 종류이다. 그리고 이런 효소들은 대부분 카이랄성을 띤다. 또한 효소뿐만 아니라 몸속의 여러 물질도 이런 카이랄성을 띠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카이랄성을 갖는 두 물질(예를들면 외부에서 투여된 의약품과 체내의 효소)이 몸속에서 만났을 때 서로 작용할 수도 있고, 작용하지 않을 수도 있게 된다.
아래의 ‘그림 2’를 보자. 왼쪽 그림의 경우 분자가 효소에 딱 맞게 들어가 반응을 하는 반면, 오른쪽 그림의 경우에는 분자가 효소에 들어가지 못해 작용하지 못한다. 각 분자와 이에 작용하는 효소가 서로 일치하지 않을 경우 정상적으로 작용하는 효소에 방해를 일으킬 수도 있다. 또한 특정 기관에서는 아무런 현상을 일으키지 않더라도 다른 신체 기관에 들어가 비정상적인 작용을 할 수도 있다. 이 경우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약물의 부작용 현상이다. 아마 이런 이유로 인해 엘리스도 거울에 비친 우유가 몸에 나쁠지도 모른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자문: 황길태 교수(자연대 화학)

용어 설명
- 이성질체: 분자식은 같으나 분자내에 있는 구성원자의 연결방식이나 공간배열이 동일하지 않은 화합물을 말한다. 이성질체는 크게 구조 이성질체와 입체 이성질체로 분류된다. 거울상 이성질체는 입체 이성질체에 속한다.
- 작용기: 어떠한 특정 조건에서 반응성을 지니는 분자 내 한 원자 또는 원자무리를 말한다.
- 촉매: 어떤 반응에 참여하여 반응 속도를 변화시키지만 반응에 참여한 자신은 반응 후에도 그대로 남아 있는 물질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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