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폐 속에서 보던 세종대왕의 용안, 드라마에서 흔히 등장하는 선조 이전의 궁중 유물이 모두 판타지라는 것을 아는가? 임진왜란 당시 궁중 유물은 모두 훼손되거나 왜병들에게 탈취돼 근거 자료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달 27일 사라졌던 궁중 유물의 실체가 드러났다. 이 유물이 진품으로 확인될 경우 TV 속의 사극 드라마의 복장부터 지폐의 디자인까지 큰 변혁이 예상된다. 본지는 세종이 정무를 볼 때 썼던 모자로 추정되는 익선관의 1차 고증 결과를 발표한 본교 이상규 교수(인문대 국어국문)를 만나봤다●

사진: 홍태양 기자/hty12@knu.ac.kr

▲ 이상규 교수 (인문대 국어국문)의 모습

Q. 익선관을 연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A. 국어학자로서 훈민정음을 연구하려는 취지였습니다. 한글은 영어에 전혀 뒤지지 않는 문자로, 데이터 구축에 활용되거나 해외에 수출되고 있습니다. 사실 한류의 중심에 한글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익선관 내부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제자해는 한글의 과학적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입니다. 그동안 고대일록을 제외하고,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과정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전무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연구 중인 익선관이 세종의 모자로 밝혀질 경우 소장자가 국가 기관에 기증하겠다고 했으므로 국가 보물의 절차를 밟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Q. 현재 연구 중인 익선관, 어떤 가치가 있나요?

A. 익선관이 세종이 쓰던 모자로 입증될 경우에는 여러 가지 이득이 있습니다. 우선 임진왜란 때 일본이 유물을 탈취했다는 증거가 되므로 추후 일본에 유물 송환 요구를 할 때 무척 유리해집니다. 또한 상상으로 그린 세종의 용안 ‘세종어진’과 외형을 조각한 동상 등이 실제 모자의 등장으로 큰 변화를 갖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훈민정음 제자해는 원본으로 알려진 훈민정음 해례본의 창제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라는 것입니다. 일반 언론사에서 해당 훈민정음 제자해를 활자본일 것이라고 잘못 추측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의 입장에서 이는 최초의 훈민정음 제자해 목판본으로 보여 더 가치 있는 유물이라 여겨집니다.

Q. 유물을 연구할 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A. 학술적인 고증이 우선돼야 합니다. 고증이란 과거의 사물들의 시대, 가치, 내용을 옛 문헌 또는 물건을 근거로 해서 판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익선관에서 고증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익선관에 그려진 용의 발톱을 보면 4개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세종 26(1444)년 3월, 명나라로부터 발톱 5개의 용이 그려진 오조용의를 하사받은 뒤부터는 4개의 발톱의 용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익선관이 세종 26년 이전 시대의 모자임을 고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헌을 통한 고증 외에도 다양한 측면에서의 고증이 존재합니다. 유물 연구는 고증 뿐만 아니라 학자의 상상력도 중요합니다. 가령 세종이 국가 기반을 닦은 후 이를 한문으로 적으니 백성에게 전달되지 못할 것을 안타까워 해 훈민정음의 창제를 고심했던 흔적이 익선관 안의 훈민정음 제자해일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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